가) 삼국시대
한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중국의 전진왕 부견이 순도스님과 불상, 불경을 고구려에 보냄으로써 비롯되었고,
백제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마라난타가 인도로부터 들어옴으로써 전파되었습니다.
신라는 제19대 눌지왕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옴으로써 전래되었으나 법흥왕때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 국교로 인정되게 되었습니다.
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불교도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고승대덕이 배출되었으니, 교종(敎宗)은 열반종(涅槃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법성종(法性宗)의 오종(五宗)이 흥성하여 이를 오교(五敎)라고 합니다.
선종에 있어서는 신라 선덕여왕 당시 당나라에 건너가서 4조 도신(道信)선사의 법을 이은 법랑(法郞)스님을 들 수 있으나 그의 귀국년대가 확실치 않아 그 다음에 선(禪)을 우리나라에 전래한 도의국사(道義國師)를 해동선(海東禪)의 초조(初祖)로 삼게 됩니다.
도의국사(道義國師)는 법명이 명적(明寂)으로 선덕왕5년(서기784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강서(江西)의 개원사에 이르러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전해 받고 법호를 도의(道義)로 받았으며 백장회해(百丈懷海)께 나아가 뵈오니 "강서의 선맥이 모두 해동의 스님에게로 돌아간다"라는 격찬을 들었습니다.
이후 헌덕왕13년(서기821년)에 귀국하였으나 교종의 융성으로 선(禪)을 신봉하는 이가 없어 강원도 진전사에 은둔하시다가 법을 염거화상(廉居和尙)에게 전하시고 입적하셨습니다.
또한 도의국사(道義國師)와 동시대인으로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전해 받은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계시며, 홍척국사(洪陟國師) 이후에 선종(禪宗)에서도 고승대덕이 배출되어 흥덕왕조부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약 130여년간 선(禪)의 구산(九山)이 형성되었으니 교(敎)의 5宗과 함께 신라불교를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九山은 모두 6조 조계혜능(曹溪慧能)선사의 법손에 해당하므로 조계종(曹溪宗)이라고도 합니다.
다) 고려시대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구산(九山)은 점차 쇠퇴해 가다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수입한 천태종이 선의 재부흥을 일으켜 바야흐로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뒤 해동선(海東禪)의 중흥조 보조지눌국사(普照知訥國師)가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종지를 내세워 종풍을 회복하였으며,
혜충왕때 가지산문의 법손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는 선의 구산문을 통일하여 조계일종(曹溪一宗)을 만들었으니 한국의 수행자들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의 법손(法孫)이 아닌 이가 없다할 것입니다.
라) 조선 및 현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부의 배불정책으로 불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다시 나뉘어졌고 일제시대에 이르러 전국 31본산이 통합되어 조계종(曹溪宗)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니 우리 해동선(海東禪)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를 종조(宗祖)로 삼고 총본산 사명(寺名)도 태고사(太古寺)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60년대 비구·대처의 대립으로 총본산이 조계사(曹溪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와같이 한국불교는 오교구산(五敎九山) → 오교양종(五敎兩宗) → 선교이종(禪敎二宗)에서 조계일종(曹溪一宗)으로 변해 왔습니다.
한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중국의 전진왕 부견이 순도스님과 불상, 불경을 고구려에 보냄으로써 비롯되었고,
백제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마라난타가 인도로부터 들어옴으로써 전파되었습니다.
신라는 제19대 눌지왕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옴으로써 전래되었으나 법흥왕때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 국교로 인정되게 되었습니다.
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불교도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고승대덕이 배출되었으니, 교종(敎宗)은 열반종(涅槃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법성종(法性宗)의 오종(五宗)이 흥성하여 이를 오교(五敎)라고 합니다.
선종에 있어서는 신라 선덕여왕 당시 당나라에 건너가서 4조 도신(道信)선사의 법을 이은 법랑(法郞)스님을 들 수 있으나 그의 귀국년대가 확실치 않아 그 다음에 선(禪)을 우리나라에 전래한 도의국사(道義國師)를 해동선(海東禪)의 초조(初祖)로 삼게 됩니다.
도의국사(道義國師)는 법명이 명적(明寂)으로 선덕왕5년(서기784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강서(江西)의 개원사에 이르러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전해 받고 법호를 도의(道義)로 받았으며 백장회해(百丈懷海)께 나아가 뵈오니 "강서의 선맥이 모두 해동의 스님에게로 돌아간다"라는 격찬을 들었습니다.
이후 헌덕왕13년(서기821년)에 귀국하였으나 교종의 융성으로 선(禪)을 신봉하는 이가 없어 강원도 진전사에 은둔하시다가 법을 염거화상(廉居和尙)에게 전하시고 입적하셨습니다.
또한 도의국사(道義國師)와 동시대인으로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전해 받은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계시며, 홍척국사(洪陟國師) 이후에 선종(禪宗)에서도 고승대덕이 배출되어 흥덕왕조부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약 130여년간 선(禪)의 구산(九山)이 형성되었으니 교(敎)의 5宗과 함께 신라불교를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九山은 모두 6조 조계혜능(曹溪慧能)선사의 법손에 해당하므로 조계종(曹溪宗)이라고도 합니다.
다) 고려시대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구산(九山)은 점차 쇠퇴해 가다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수입한 천태종이 선의 재부흥을 일으켜 바야흐로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뒤 해동선(海東禪)의 중흥조 보조지눌국사(普照知訥國師)가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종지를 내세워 종풍을 회복하였으며,
혜충왕때 가지산문의 법손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는 선의 구산문을 통일하여 조계일종(曹溪一宗)을 만들었으니 한국의 수행자들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의 법손(法孫)이 아닌 이가 없다할 것입니다.
라) 조선 및 현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부의 배불정책으로 불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다시 나뉘어졌고 일제시대에 이르러 전국 31본산이 통합되어 조계종(曹溪宗)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니 우리 해동선(海東禪)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를 종조(宗祖)로 삼고 총본산 사명(寺名)도 태고사(太古寺)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60년대 비구·대처의 대립으로 총본산이 조계사(曹溪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와같이 한국불교는 오교구산(五敎九山) → 오교양종(五敎兩宗) → 선교이종(禪敎二宗)에서 조계일종(曹溪一宗)으로 변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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