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오세암의 전설 (부처가 된 5세 동자)
캄캄한 방 안엔 향내음뿐 아무도 없었다. 스님은 그제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꿈을 꾸었음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오색구름을 타고 와 자꾸 흔들어 깨우던 이는 관세음보살이었구나..] 이상한 꿈이다 싶어 망설이던 설정 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친 후 고향으로 향했다.
30여년만에 찾은 고향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큰댁, 작은댁 등 친척들이 살던 마을은 잡초만 무성할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속명부르며 노부모님들이 쫏아 나오실것만 같은데 인기척이 없었다.
젠장~? 대꾸 대신 마루틈에서 자란 밀과 보리싹만이 보였다.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관세음보살님은 왜 고향엘 가 보라고 하셨을까..?]
그때였다. 아랫마을에 산다는 노인이 나타났다. [허, 시주를 오신 모양인데 잘못 오셨소이다. 이 마을은 얼마 전 괴상한 병이 번져 모조리 떼죽음을 당하고 오직 한 사람 세 살된 어린아이가 살아있을 뿐이오.]
설정 스님은 아이를 찾아 등에 업고 설악산으로 돌아왔다. 잘 키워 가문의 대(代)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게 바로 관음보살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산짐승 소리도 무서워하지 않고 다람쥐와 장난도 하며 잘 자랐다. 스님따라 조석 예불도 하고 염불도 곧잘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기는 다섯 살이 되어 제법 상좌 구실까지 해냈다. 그 해 늦은 가을.. 겨울살림 준비를 하던 설정스님은 겨우내 먹을 식량을 구하러 설악산을 넘어 양양에 가야 했다.
겨우 다섯 살밖에 안된 조카를 혼자 두고 나가자니 그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스님은 조카를 앉혀 놓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설정 스님은 몇 번을 단단히 이른 후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구비구비 산길을 돌아 몇개의 산을 넘으며 걸음을 재촉한 스님이 숨을 몰아쉬며 양양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식량을 구해 돌아가려니 이미 캄캄한 밤중이 되었다.
혼자 암자를 지키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여 밤길을 떠나려 했으나 동네 사람들은 한사코 만류했다. [험한 산길에 산짐승도 많거니와 바람이 유난히 날카롭고 세차니 오늘밤은 쉬시고 내일 새벽 떠나십시오.]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양양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새벽 길을 나서려 하니 밤새도록 내린 눈이 지붕에 닿게 쌓여 있었다. 마을이 이러하니 산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초가을에 이런 심산유곡이 한길넘는 눈으로 덮힌다.
못하는 터다. 그러나 스님은 미친 듯 배낭을 짊어진 채 문을박차고 나섰다.
[스님 아니되옵니다. 못 가십니다.] [놓으세요. 내 어찌 다섯 살짜리 조카를 암자에 홀로 두고 그냥 있을 수 있겠소.] 스님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눈 속에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므로 마을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말렸다.
그토록 아름답던 대청봉, 소청봉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몇 번이고 설악산을 향해 치달렸지만 번번이 눈 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설정 스님은 자연의 섭리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었음을 뉘우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스님은 그만 병석에 누웠다.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기 한 달..
신도들의 극진한 간호에 병세가 호전되면서 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어느덧 설악산의 산이 변해갔다.
마을 장정들이 스님을 부축하여 대청봉에 올라서니 저 아래 골짜기 관음암에서 이상한 서광 한줄기가 짙게 하늘로 뻗어 있었다.
법당 안에서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염불소리가 낭낭하게 들렸다.
순간 웬 여자가 오색 치맛자락을 끌며 밖으로 나와 하늘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법당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스님~!] 반가움에 벼락같이 달려나와 안기는 조카의 모습에 스님은 그만 뒤로 물러섰다. 왈칵 눈물이 앞을 가리고 뭐라고 해야할지 할말을 잊고 나온 한 마디는..
[아니 네가..]하고는 어린조카를 바라보기만했다. [제가 왜요..? 스님 오시기만 기다리며 관세음보살을 외웠더니 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돌봐주셨어요.] 설정 스님은 와락 조카를 껴안았다. 조카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다섯 살짜리가 지킨 암자라는 뜻뿐 아니라 동자는 그때 이미 불법을 깨쳤음을 시사하는 이름이다.
이는 고려말엽의 일이라 한다. 그 후 오세암은 수차의 중창을 거쳤으나 6·25동란 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옛날 건물은 조그만 방 한 칸이 이 전설과 함께 남아 있고 아래 건물은 다시 복원된 것들이다
만해 선생은 이후 10여년 동안 백담사와 이곳을 오가며 사시다가 깨닳음을 얻어 1905년에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으셨다고 한다.
▒ 오도송(悟道頌) / 만해 한용운
오세암에서 좌선을 하던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무엇인가를 떨구고 가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갑자기 풀렸다. 이에 시 한 수를 짓는다.
2013/08/25 - 휘뚜루 - sinmyojanggudaedalani01 bumne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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