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直觀)명상
서론
이 책자의 목적은 테라바다(Theravada) 불교의 전통에 기초한 명상, 즉 직관혹은 통찰(insight) 명상의 실제를 소개함이다. 실제로 직관명상을 행함에 있어서 붇다의 가르침에 익숙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붇다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지만 그러한 이해는 또한 명상의 실천을 통해 분명하고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관명상의 목적은 어떤 신념체계를 형성 또는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성질 혹은 본성(nature of the mind, 보다 구체적으로는 두뇌의 작용)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방법의 제시 내지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제 당신은 소위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을 - 지금까지 머리속에 알게모르게 넣어둔 신념체계, 견해, 이론, 전통 등에 의존하지 않고 - 직접 이해하고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의혹을 넘어 스스로 어떤 것을 앎으로써 얻어지게 되는 깊은 희열과 안정이 주어진다.
직관명상은 붇다가 제시한 인간 즉 ‘당신’의 행복, 안녕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다. 그 열쇠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소책자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련의 명상 수행 방식들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신이 이 책의 안내를 따라 실제적으로 하나하나 실행해 나간다면 효과는 만점이다.
‘직관명상’(팔리어로 samatha - vipassana. 테라바다불교 전통 내에서는 여전히 팔리어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팔리어에 대한 지식이 물론 명상의 수행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테라바다전통 내에서 공부한 많은 이들이 팔리어 용어들에 알맞은 영어 표현을 찾지 못해 여전히 팔리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테라바다불교에 대한 폭 넓은 지식적 이해는 여전히 팔리어에 대한 지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할 수 있다)이라는 용어는 지속적인 주의집중(attention)을 통한 마음(mind)의 안정(samatha)과 심사숙고·반성(reflection)을 통한 직관적 통찰(vipassana)의 훈련 실행을 지칭한다. 지속적인 주의력을 기르기 위한 기본적인 기법은 신체의 인식 즉 신체(혹은 신체의 움직임)을 알고있음 알아차림(awareness)이다. 이 기법은 전통적으로 앉아서 혹은 걷고 있는 동안 수행되어왔다. 이 기법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의 처음이다.
한편 심사숙고·반성은 신체에 대한 알아차림·앎에 뒤이어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하겠다. - 즉 명상수행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질 때 편안함·이완됨(ease)과 동시에 관심(interest 어디론가 주의를 돌리고자 하는 마음 상태)이 존재하고 이제 명상자는 뭔가 찾기 시작하고 또 명상하고 있는 그 마음과 친숙하게 된다. 이 뭔가 찾기(looking arround)가 심사숙고·관조(contemplation)라 이름 붙여진 ‘개인적인·직접적인 봄(seeing)’이다. 따라서 언어적 나눔을 떠난 간접적 표현만이 가능한 체험이다. 여기에 대한 안내 및 설명이 이 책의 후반을 구성한다.
지속적인 주의(집중)
좌선 혹은 앉기
시간과 장소
앉아서 우리는 쉽게 마음(mind)을 신체에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당신이 방해받지 않고 차분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조용한 방이 이상적이다. 방이 밝고 공간이 넓으면 효과적이다. 밝고 투명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지럽혀져 있고 어둡고 칙칙한 방은 반대효과를 가질 것이다. 시간대 또한 중요하다. 특히 대다수 사람들의 하루 일정이란 것이 꽉짜여진 일상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할 일이 있거나 시간에 쫓기는 압박이 있을 때 명상을 시도함은 특별히 생산적(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정시간대를 따로 마련하는 것이 - 가령 아른 아침이라든가 혹은 일과후 저녁 한때 등 당신의 완전한 주의 혹은 관심을 오로지 명상에 쏟을 수 있는 시간대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15분간 혹은 20분간의 명상으로 시작하라. 그리고 그 시간에 주어진 에너지를 최대한 사용하라. 단 명상을 또하나의 일상으로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명상하지 않도록 하라. 기꺼이 자신을 탐구하고 평화를 찾겠다는 의지로 수행하는 명상만이 진보가 있다.
신체의 인식(알아차림)
안정되고 지속적이면서 무리하지 않는 노력에 의해 차분함(마치 바람이 잦아들 듯 마음이 가라앉음)이 생겨난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평화로움은 없다. 즉 주의깊은 노력이 없이는 백일몽을 꾸기 십상이다. 바람이 없는 수면의 잔잔함과 같은 고요·적정(stillness)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꽉찬 에너지의 적절한 배합·결합을 가능케하는 가장 효과적인 자세 가운데 하나가 좌선 곧 앉기이다.
등뼈를 곧추세우되 긴장하지 않는 자세가 좋다. 의자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혹은 통칭 연꽃자세라고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해보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자세들에 특유한 부드러운 견고함의 균형속에서 신체적 피로 없이 명상을 해나갈 수 있다. 턱을 약간만 아래로 당기면 좋다. 그렇다고 머리까지 앞으로 수그러지면 졸기 십상이다. 손은 바닥을 위로 배 앞, 포개진 다리 위에 한쪽 손을 가볍게 놓고 다른 손을 엄지 끝이 닿도록 살포시 포개 얹는다. 시도해 보라. 균형되게 앉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제대로 앉았으면(자주 앉다보면 스스로 자세를 교정해나갈 수 있다) 당신의 주의를 모으라. 그리고 천천히 당신의 주의·관심을 신체로 이끌어가기 시작하라. 신체의 감각들을 주시 혹은 알아차리라. 전신의 특히 얼굴과 목 그리고 손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라. 모든 근육을 이완시켜라. 눈꺼풀이 내려가면 그대로 두라. 굳이 반쯤 뜬 눈을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느낌을 관찰하라. 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가, 여전히 긴장됨을 느끼는가? 그러면 당신의 주의력을 약간만 이완시켜라. 더불어 마음도 진정되기 시작할 것이다. 동시에 어떤 생각들이 찾아드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공상(혹은 백일몽) 반성(돌이켜 생각함) 추억 기억 혹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게 제대로 하는건가 하는 의심 등등. 이런 생각들을 좇거나(계속 전개해나가거나) 맞붙어 싸우거나(어떤 식으로든 처리하려 들거나) 하지 말고 신체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는 식으로 나가라. 이 방식이 방황하는 마음을 묶어두기에 유용한 수단이다.
명상태도로서 탐구정신을 길러라. 여유를 갖고 당신의 주의를, 이를테면, 머리끝에서 체계적으로 차례차례 전신을 훑어라. 각 손가락의 마디마디들에서, 손바닥에 나는 땀과 손목의 맥박에서 느껴지는 서로 다른 감각들 - 온기, 맥박침(피의 요동), 민감성 등을 알아차려라. 어쩌면 특유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들, 이를테면 앞팔이라든가 귓볼 같은 부분조차도 주의하는 방식으로 훑어나갈 수 있다. 감각의 ‘결여’조차도 마음이 인식할 수 있는,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것임을 알라. 이와같은 지속적인 관찰을 마음씀 혹은 알아차림(mindfulness; sati)이라 하고 직관명상의 1차적인 도구가 된다.
숨의 관찰(알아차림)
‘전신 훑기’대신에 또는 후에 호흡에 주의함으로써 ‘알아차리는 의식’은 더욱 발전될 수 있다. 우선 평상시 쉬는 숨결을 느껴보자. 숨은 콧구멍을 통해 가슴과 그리고 배를 채운다. 그런 다음 어느 한 지점, 횡경막(숨을 들이쉴 때 가슴이 올라오는 부분)이나 - 보다 섬세한 부분으로 - 콧구멍에 주의를 유지하도록 해보라. 숨결은 당신이 강제하지 않는 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결같으며(규칙적이며) 조급하지 않은 특질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바른 자세 즉 등뼈를 똑바로 하는 자세의 중요성이 있다. 당신의 마음은 아마도 여전히 산란할 것이다. 허나 인내를 가지고 거듭 거듭 호흡으로 되돌아가라.
오로지 모든 것을 배제하고 호흡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는 없다. 집중함으로써 몰아(trance) 즉 일종의 잠자는 상태로 주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지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단의 개발이 여기서의 목적이다. 이러한 전과정 - 주의를 모으고, 호흡을 알아차리며, 방황하는 마음을 알고(알아차리고) 다시 당신의 주의를 모으는 - 이러한 전과정이 마음씀 혹은 알아차림(mindfulness), 인내, 직관적 이해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된다. 그러니 실패를 자책해서 포기하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는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보면 결국 마음은 진정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신경질적이거나 불안해지면 그저 긴장을 풀고 이완되도록 하라. 마음의 소리에 - 반드시 마음의 소리가 있다고 믿을 필요는 없지만 -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과의 화해 즉 평화로움에 젖어드는 연습을 하라. 혹 졸음이 오면 주의와 노력을 더욱 신체와 자세에 두도록 하라. 이때 더 이상 나아가려 하거나 평정을 추구하면 사태가 악화될 뿐이다.
걷기와 서있기
‘호흡의 알아차림’과 같은 적잖은 명상수행방법들은 주로 앉아서 행해진다. 그러나 명상의 한 형태로 ‘걷기’는 주로 앉아서 하는 명상과 번갈아 사용될 수 있다. 즉 좌선을 통한 마음 가라앉히기가 지루해짐을 느낄 때 이 방법은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공터가 있으면 약 25∼30보 거리 또는 그 정도 거리의 오솔길을 걷기 명상에 이용한다. 출발점에 서서 마음을 육체의 감각기관들에 맞춘다. 우선 양팔을 자연스레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볍게 앞 또는 뒤로 하여 쥔 상태에서 똑바로 서있는 신체의 느낌에 주의를 둔다. 눈은 이것저것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전방 3m 지점(즉 발끝에서 앞으로 땅위 3m 지점)을 응시한다. 자 이제 서두르지 않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정상적인’ 걸음걸이 속도로 한쪽 끝까지 걸어간다. 멈추고 두 세번의 호흡 시간 동안 서있는 신체에 초점을 맞춘다. 즉 집중한다. 돌고 다시 걸어간다. 걷는 동안 육체적인 감각들(다섯 가지 감각들에 의해 느껴지는 것들)의 일반적인 흐름·변화를 알아차린다. 또는 당신의 주의를 보다 직접적으로 발에 두거나 헤매는 마음을 붙들어매기 위해서는 그 마음의 관심·주의를 거듭 땅에 닿는 발의 촉감, 보폭, 서고 출발하는 신체적 감각에 두도록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내심을 기르고 다시 시작하는 결단력이 중요한 것이다.
걸음걸이 속도를 마음상태에 맞추는 것이 좋다. 잡생각이 끊이질 않거나 졸음이 오기 시작할 때는 빠른 걸음을, 불안하거나 조급증을 느낄 때는 분명하고도 부드러운 걸음걸이를 적용해보라. 저쪽 끝에서 멈추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러면서 모든 불안, 걱정, 심지어는 안정, 기쁨, 자신에 대한 기억들 혹은 견해·의견들을 더불어 내보내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속살거림(inner chatter)이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라. 이런 식으로 계속 마음을 새롭게 하고 저절로 안정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보다 한정된 공간에서는 걷는 거리를 짧게 하여 걷기 명상을 시도해보라. 혹은 방안을 돌 수도 있다. 한바퀴 돌때마다 잠시 서서 신체에 주의를 돌리고 나중에는 ‘잠시’가 수분(分)까지 연장되어 서서 ‘전신 훑기’가 가능할 수도 있다.
걷기는 명상에 활력과 유동성을 준다. 따라서 걸음걸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변화하는 내외적 조건들을 바로바로 마음을 통해 걸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즉 좌선을 통해 가능할 수 있는 만큼의 ‘잔잔한’마음을 기대하기보다는 일어나는 현상들의 흐름을 관조하는 것이다. 얼마나 자주 우리가 이어지는 생각의 굴레속으로 함몰되어 버릴 수 있는지 - 그렇게 한쪽 끝까지 가서 다시 깨어있는 의식을 회복하고. 허나 길들여지지 않은 우리의 마음이 생각과 감정에 지배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겠다. 그런고로 나는 안돼 하는 식의 조급증에 굴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떨쳐내는 혹은 내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편안함과 차분함이 찾아오고 더불어 마음은 자연스레 강제되지 않은채 투명하고 빈 모습을 드러낸다. 즉 마음이 열리고 깨끗해진다.
눕기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쉴 때, 모로 누워 몇분간만 명상에 투자하자. 몸을 쭉 편채 한쪽 팔로 팔베게를 한다. 긴장을 풀면서 전신을 훑어내리거나 그날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억과 내일에 대한 기대를 의식적으로 떨쳐버리면서 호흡에 주의를 모은다. 몇분이 지나 당신의 마음은 투명해지고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자비심의 배양
남에게 친절하고 이로움을 베푸는 선의(goodness, metta)를 키움은 명상수행의 또 다른 면이다. 명상은 자연스레 인내와 관용을 심어주고 혹은 최소한 그 중요성을 인식케 한다. 따라서 자신과 타인에 대해 보다 우애적이고 보살피는 태도를 가지려고 함은 당연하다. 명상을 통해 당신은 ‘선의’를 보다 사실적으로 배양시킬 수 있다.
호흡에 주의를 집중하는 방법을 이용해 친절 자비와 선의를 함양할 수 있다. 우선 자신과 자신의 신체부터 시작하자. 숨을 하나의 빛으로 떠올려라. 혹은 당신의 알아차림, 깨어있는 의식을 따스한 한줄기 광선으로 보라. 그리하여 점진적으로 온 몸을 쐬어나가라. 당신의 주의를 가슴의 중앙, 심장의 근처에 가벼이 집중하라. 숨을 들이쉬면서 ‘내가 안녕(행복)하길’ 혹은 ‘평화롭기를’기원하면서. 인내와 자비가 자신에게 향하도록 한다. 숨을 내쉬면서 그러한 기원이 혹은 알아차림의 빛이 심장으로부터 전신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자신을 넘어 퍼져나가도록 하라. - 다른 모든 것들도 안녕하기를 기원하면서. 만약에 부정적인 혹은 내키지 않는 마음상태를 경험한다면 관용과 용서의 숨을 들이쉬라. 그리고 그 숨이 치유의 색을 가진 것으로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숨을 내쉬면서 모든 긴장과 걱정 또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더불어 내보내라. 그리고 그 내보내는 느낌을 앞에서처럼 신체와 마음과 자신을 넘어서까지 확장하라. 명상수행의 일부 혹은 전부로 이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어느 것이 좋은지는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자비심을 함양하는 명상으로 마음을 진정시킴은 좌선의 처음에 효과적이다. 물론 이 방법을 거기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고 시간을 늘리거나 심장의 보다 깊은 부분으로 들어갈 필요도 종종 있을 것이다.
늘 당신이 알아차리고 있는 것,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비록 그것이 사소하다거나 선명하지 않다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이 차분히 거기에 머물도록 하라. - 그것이 지루함이든, 무릎의 통증이든 혹은 특별히 자비를 느끼지 못하는 당황함이든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두라. 그리고 화해하고 더불어 있는 법을 배우라. 게으름, 의심, 혹은 죄의식으로 흐르는 경향성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부드럽게 한쪽으로 밀쳐두라. 평화로움은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자신을 향한 친절과 자비심으로 성장한다. 당신의 주의 관심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향해 가슴을 열어라. 이것은 부정적인 사태들의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태들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공간, 여지의 허용을 말한다.
자기자신을 넘어 세상을 향한 선의의 발현도 같은 과정을 따른다. 우선 자신부터 시작하라. 호흡에 자비심을 싣고 ‘내가 안녕하길’. 그리고는 당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을 떠올리고는 차례차례 그들의 인녕을 기원하라. 계속해서 친척 친지들로 옮겨가고 당신이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로 확대해가라. 마지막으로 당신이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으로 불러 안녕의 기원을 보내라. 이 명상은 동정심(compassion)의 형태로 이 세상에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당신이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기원하는 대상 모두를 ‘사랑한다’고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친절과 동정은 선의 (혹은 자비)라는 같은 근원을 가진다. 그리고 그 둘은 ‘나의’이해관계에 갇혀있던 나의 마음을 넓혀준다. 만약에 당신이 매사가 당신이 원하는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시도를 멈춘다면 그리하여 당신이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타인을 포함)을 좀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동정은 저절로 생겨난다. 동정(자비)은 가슴(심장)의 본래적 감수성이다.
심사숙고 또는 반성
선택없는 알아차림
명상은 순수관조의 형태로 직접적인 대상(가령 호흡 등)이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 즉 ‘대상의 선택없는 알아차림’이다. 앞서 설명한 명상방법들 가운데 하나를 이용해 마음을 진정시킨 후 그 대상을 의식적으로 제거한다. 그리고 정신 혹은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그림들 즉 이미지와 감각들의 흐름을 일어나는 그대로 관찰한다. 물론 비난이나 좋다는 판단기준을 가하지 않은 채. 마음이 이끌리거나 떨쳐버리고 싶은 것들을 그대로 알아차려라. 불확실성, 행복, 불안 혹은 고요함이 찾아드는 그대로 관조하라. 마음의 이러한 현상을 분명하게 살피기 힘들때나 혹은 강렬한 인상(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감정)에 압도된다고 느껴질 때는 명상의 구체적 대상 즉 호흡으로 되돌아감이 좋다. 다시 평정감을 되찾으면 그 대상을 포기할 수 있다.
이러한 ‘대상 없는 직접 알아차림’의 명상은 우리의 정신적 작용과정 즉 마음의 작용을 관조하는데 아주 적절하다. 마음의 특수한 ‘재료들(소재들)’의 관찰과 더불어 그 재료들을 담고 있는 용기의 성질(성격?)에도 주의를 돌릴 수 있다.
마음에 관해서 붇다의 가르침은 특별히 3가지 가장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특질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변화무쌍함(anicca)이다.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시작되고 끝난다. 그렇게 마음의 내용도 끊임없는 운동변화속에 있다. 이러한 마음의 대상(내용)은 즐거운 것일수도 불쾌한 것일수도 있지만 결코 정지된 상태(at rest)에 있지 않다.
둘째로 불만족감(dukkha)이 종종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지속적으로 따라다닌다. 불쾌한 감각은 쉽게 그러한 감(불만족감)을 야기시키지만 심지어는 즐거운 경험조차도 사라지면서 당신의 가슴에 미련을 남긴다. 그래서 마음이 경험하는 최상의 순간에 있어서조차도 불확실성 즉 다소간의 불만족감이 여전히 존재한다.
경험과 감정상태의 끊임없는 생멸에 익숙해지면서(잘 알아차리면서) 분명해지는 것은, 그것들이 영속성 혹은 지속성을 결여한 까닭에 당신이 아니라는 즉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역자 주: 여기서 ‘당신’이라 함은 조건지워지지 않은 불변의 실체로서, 우리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음이 즉 생각이나 감정의 대상이 가라앉거나 사라질 때 마음의 밝고 드넓은 공간이 드러나면서 거기에는 순수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사실상 ‘나’, ‘나의 것’은 없고 이것이 ‘무아(no-self)’ 혹은 ‘주체없음(impersonality: anatta)’의 특징이다. 위의 세 가지 특질이 어떻게 모든 것들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철저히 탐구하고 자각하라. 당신의 경험이 신나는 것이든 혹은 지속성을 결여하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명상적 숙고만이 흥분되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균형잡힌 시각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란 점이다.
수행의 점검
지금까지의 모든 명상수련은 (사람을 포함한)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 혹
은 알아차리는 능력의 확보에 기여하고자 함이다. 마음을 온전히 경험에 밀착시킴으로써 당신은 마음 그 자체의 상태를 더욱 분명하게 알아차릴 것이다. 예를 들면 명상을 수행함에 있어서 게으른지 아니면 지나치게 열중하고 있는지. 조금만 솔직해진다면 명상의 질이, 어떤 명상법을 사용하는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명상하는가에 달렸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런 식의 반성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성격(됨됨이)과 습관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명상할 때 염두에 둠으로써 유용한 몇 가지 점들이 있다.
매번 신선하게 시작을 하는지 - 또는 다음번 호흡이나 걸음을 할 때마다 진보하고 있는지 판단해보라. 만약 열린 마음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지난 경험을 되풀이하려는 혹은 실수로부터 배우기를 꺼리는 당신을 발견할 뿐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밀어부치지 않고 해나가는, 올바른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실제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혹은 지루하고 기계적·습관적으로 명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집중을 위해서는 다급하지 않은 관심사를 한쪽으로 제쳐두고 있는지 또는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자신을 그저 맡겨놓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보는게 유익하다. 혹은 떠오르는 느낌들을 인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하기보다는 그저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옳은 집중은 가슴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보다 적절한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점검 및 반성은 당신에게 ‘어떻게 명상할 것인가’하는 명상의 방법 이상을 선사할 것이며 나아가 자신에 대한 투명한 이해·인식을 주는데까지 나아갈 것이다. 기억할 것은 당신이 스스로 명상방법을 개발, 세련화하고 명상을 편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호흡과 같은 명상의 대상을 - 알아차림의 촛점으로써 그리고 원숭이 새끼같은 (끊임없이 동요하는)마음을 잡기 위해 -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혹은 명상경험이 오래고 많다할지라도 호흡 혹은 신체의 알아차림 방법은 늘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이러한 방식은 늘 안정과 여유로움을 제공할 것이다. 이렇게 균형잡힌 수행을 통해 신체와 마음의 관계를 더욱 더 깨달아나갈 것이며 더불어 보다 자유롭고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직관명상의 목적이요 결실이다.
삶속의 직관명상
직관명상의 수행과 더불어 당신은 당신의 행동거지를 보다 투명하게 보게 될 것이며 또한 도움이 되는 것과 어려움을 야기하는 원인들을 알게 될 것이다. 열린 태도는 심지어 불쾌한 경험마저 직관적으로 파악 (진정한 본성을 파악하는 마음의 능력) 가능케 한다. 예를 들면 마음이 고통 또는 질병에 대응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할 때 당신은 종종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고통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으며 상당정도로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조급한 기질은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즉 누군가 당신의 명상을 방해한다면 그들에게 화를 내게 될 것이고 명상이 기대만큼 빠리 진전되지 않는 듯 여겨지면 즉시 실망하게 되며 사소한 일에도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는 식으로. 명상은 마음의 평화 - 혹은 그 반대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우리가 하루 하루 생활을 반성과 열린 마음 상태로 관조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가르쳐 준다.
조용한 명상 속에서 당신의 의도와 드러났던 태도를 들여다보면서(반성) 욕망과 불만족 간의 관계를 탐구 조사할 수 있다. 불만족의 원인을 이해하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기, 원하는 것을 계속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불만족과 욕망의 주체가 당신 자신일 때 이러한 사실은 특히 견디기 힘들다. 실상 누구도 자기의 약점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특히 온 사회 분위기가 만족감의 충족과 오로지 돌진 그리고 최고만을 강조하는 환경에서는. 그러한 환경은 진정 당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직관명상수행과 더불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당신의 모습과 당신의 소유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여유를, 그래서 생기는 간격을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나의 것’ 혹은 ‘나’라고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저 마음을 통해 왔다가는 경험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당신이 화 잘내는 습성을 직관 즉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침울해지기보다는 그 습성을 차츰 약화시켜 마침내는 떨쳐버리게 될 것이다. 혹 그 습성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결 약화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며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 차분하게 주의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마음의 내용(개개의 생각 감정들)은 가라앉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음은 깨끗해지고 활력을 되찾게 된다. 이것이 직관명상의 길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일상사의 흐름속에서 깨어있음 혹은 알아차림이라는 변함없는 중심을 견지할 수 있음이 수행의 깊어진 징후이다. 직관은 모든 경험에 적용될 때 무한정으로 깊어진다. 따라서 당신이 하는 일 - 일상적 가사나 운전, 한잔의 차를 마실 때 등 어떠한 경우에도 알아차림 직관적 시각을 적용하라. 당신이 하는 일을 꾸준히 알아차려라. 그리고 활동의 와중에서도 마음의 본성에 대한 탐구심을 일으켜라. 육체적 감각들 마음 혹은 정신상태 또는 귀-의식, 눈-의식, 코-의식에 집중하는 명상을 통해 세속 잡사를 직관명상의 재료로 삼는 지속적 관조 관찰을 발전시킬 수 있다.
알아차림에 더욱 더 집중된 마음은 자유로이 되어 능숙하게 순간에 대응하고 더욱 조화로운 삶을 가능케 한다. 즉 당신의 삶을 알아차림으로써 세계에 평화가 도래한다. 의식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감정들과 평화로이 지낼 수 있을 때 당신은 세상과 더욱 가까워지고 또한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과도 그렇게 된다.
부가적 제안
개인적 행위
직관이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자신의 행위결과들을 보다 명확하게 보게 된다. 즉 선한 의도 정직함 그리고 투명한 마음은 평화를, 혼란 부주의는 고통 어려움을 낳는다. 특히 자신과 타인에게 내가 야기하는 고통을 민감하게 관찰할 때 나는 더욱 현명하게 살려는 의식을 갖게 된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형식적인 명상만으로는 안되고 헌신적 책임감과 자신 및 타인에 대한 배려의 결합이 필수불가결하다.
직관(들여다 봄,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관찰)의 길에는 어떠한 신비적 신화적 요소도 없다. 붇다의 말을 빌면, 그 길은 이렇게 간단하다. “선을 행하고 악한 일을 삼가라. 그리고 마음을 순화시켜라.” 영적 정신적 수련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바른 행위를 중시하는 것은 오랜 경험적 전통이다. 많은 명상가들이 실질적으로 도덕적 계(규율)를 지켜나간다. 가령 살아있는 것들을 해치지 않는다든가 간음하지 않는다. 흥분제(알코올, 마약 등)을 복용하지 않고 남의 사생활 혹은 비난 헐뜯는 이야기를 않는다는 등 - 그럼으로써 자신의 내적 투명성을 제고하고 동시에 남들도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결과가 된다.
벗들과 정규적으로 명상하기
몇몇 벗들과 정규적으로 명상함은 수행의 계속성과 지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홀로 명상함은 숨을 지켜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혹은 더욱 흥미로운 다른 일들이 생기기 쉽고 그럼으로써 의지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일정기간을 정해 정규적으로 모여 명상함으로써 참가자들은 그때그때의 기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기분 감정을 들여다 봄으로써 종종 중요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더불어 수행을 계속할 수 있게 독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자세에 관해서
방심하지 않는 똑바른 자세가 이상적이다. 앞으로 수그러져 축처진 자세는 다리에 부담을 주고 등의 불편이 가중된다. 무식하게 밀어부치는 자세는 안좋다. 자세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좋아지겠지만 신체와 더불어 할 일이지 신체에 반해서 강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점검사항
- 지나치게 주저앉으면 상체가 앞으로 수그러진다.
- 자연스레 굽어있는 등뼈의 중간부분은 그대로 유지하는게 좋다. 그 결과 복부가 앞으로 약간 내밀어진다.
- 양쪽 어깨죽지 사이를 누군가 가볍게 민다고 상상하라. 물론 근육은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로써 무의식적으로 양쪽 어깨를 오므려 윗등이 둥글게 되고 가슴이 좁아지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
- 목과 어깨 부위의 긴장을 점검하고 부드럽게 풀어라.
만약 자세가 굳어있다거나 혹은 너무 풀려있다고 느끼면
- 머리가 위로부터 무언가에 매달려있다고 상상하면서 척추가 바르게 펴지도록 하라. 그러면 자연스레 턱이 약간 앞으로 당겨질 것이다.
- 팔은 가볍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배 가까이에 둔다. 배와 너무 떨어져 앞으로 나아가 있으면 균형을 잃기 쉽다.
- 작고 단단한 방석을 엉덩이 뒤에 받쳐 보라.
다리는
- (좌선시) 양다리를 쭈욱 펴고 발가락을 손으로 닿는 운동을 한다.
- 좌선하는 동안 통증이 심하면 자세를 바꾸거나, 작은 목침 또는 의자에 앉거나 혹은 잠시동안 서있는다.
- 바닥에 앉을 경우에는 자기에게 맞는 크기와 단단함의 방석을 고르거나 명상용 목침이 있으면 이용해보라.
졸음이 올 경우
- 눈을 뜨고 명상을 시도해보라.
- ‘전신 훑기’를 시도하라.
- 호흡과 같은 섬세한 대상보다는 전신과 육체적 감각에 초점을 두라.
- 실외로 나가 행선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긴장시 또는 (상기)두통이 있을 때
- 지나치게 열심인 경우,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럴 때는 집중의 도를 낮춘다. 가령 당신의 주의를 호흡에 의한 복부의 움직임으로 옮겨보라.
- 선의를 배양하는 명상법을 이용 긴장된 부분에 적용해보라.
- 빛을 시각화해서 전신을 쐬면 아픔이나 통증의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선의(자비)의 빛을 통증이 있는 부위에 집중시켜보라.
- 이 자료는 「WAT THAI OF LOS ANGELES」에서 간행된 「Introduction to Insight Meditation」이라는 소책자를 satipatthana 님께서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 연방죽선원
글쓴이 : NEWS 원글보기
메모 :
'명상의 숲'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은 쉬운 것이다. (0) | 2011.08.17 |
---|---|
깨어있는 마음 닦기 (0) | 2011.08.17 |
느낌과 알아차림 명상 (0) | 2011.08.02 |
감정 다스리는 방법 (0) | 2011.07.30 |
분명한 앎(知) (0) | 201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