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알아차림 명상
느낌과 알아차림 명상
느낌은 몸과 마음의 징검다리이다. 이때 몸을 조건으로 해서 발생되는 느낌과 마음을 조건으로 발생되는 느낌을 구분할 수가 있다. 가슴의 답답함, 뒷목의 경직됨과 같이 몸에서 일어난 경우를 몸(신체) 느낌, 혹은 감각 느낌이라 하고, 불안이나 슬픔과 같은 마음에서 발생되는 느낌을 감정으로 구별하여 부르고자 한다. 물론 이들은 설명을 위한 편의상의 구별이다. 이들은 실제로는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슴의 답답함과 같은 몸 느낌은 불안과 같은 마음의 정서 상태를 발생시키고, 반대로 마음의 불편함은 몸에 경직된 느낌을 직접적으로 만들어낸다.
느낌명상은 일차적으로는 느낌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 채로, 그 자체로 충분하게 경험하면서 자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일차적인 목표가 이루어지면 몸과 마음의 관계를 명료하게 자각하는데 이차적인 목표를 둔다. 몸의 느낌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반대로 마음의 현상들이 몸에 어떻게 느낌들을 만들어내는지를 통찰하게 한다. 이런 사례는 쉽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어릴 때 아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어떤 엄마는 그 죄책감으로 항상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칼로 도려내듯이 등짝에 통증을 가져다준다. 이런 경우는 마음현상이 몸에 영향을 준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릴 시절에 버림을 받은 아이는 항상 어깨가 심하게 아프다. 물리치료를 받아보지만 그때뿐이다. 어깨의 심한 통증은 망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저항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점이 있다. 느낌명상은 다만 느낌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그것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는 채로 알아차리고, 그 자체로 충분하게 경험하는데 관심을 가진다. 서구의 많은 심리치료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나쁜 느낌을 좋은 느낌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하면 느낌을 느끼기도 전에 억압을 하여 역효과가 생겨나고, 느낌을 통제하고 관리해야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안겨줄 수가 있다.
느낌명상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느낌이든지, 느낌 자체에 온전하게 알아차림하는 경험을 중시할 뿐이다. 이것은 몸에 대해서 ‘다만 몸이 있다’고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낌에 대해서도 ‘다만 여기에 느낌이 있다’고 온전하게 자각하고, 나아가서 충분하게 그 느낌을 존재하는 그대로 판단 없이 경험하는 일을 귀중하게 여긴다.
여기에는 몇가지 명상심리학적 의미가 있다. 첫째는 다만 느낌만이 존재할 뿐, 느끼는 자는 없다는 것이다. ‘느끼는 자가 없기에’ 느낌을 거부하거나 반대로 휩쓸리지 않으면서, 느낌을 그 자체로 수용하는 것이다. 느낌은 매우 섬세한 감각작용이기에 잘못하면, 오히려 더욱 강렬한 애착을 야기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아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느낌을 단지 느낌 자체로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는 느낌을 신체적인 감각과 함께 안팎으로 관찰하는 기술적 관점이다. 이것이 바로 바디스캔(bodyscan)을 말하는데, 여기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신체의 특정한 부위를 집중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의 전체적인 느낌을 그 흐름에 따라서 관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역시 관찰자와 관찰대상을 구별하지 말고, 강물의 흐름에 맡겨진 조각배처럼,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면서, 그 느낌의 인연을 순서에 따라서 관찰한다. 그럼으로써 자아가 부재한 고요함과 느낌의 역동성을 체득하게 된다.
세 번째는 느낌의 발생과 소멸을 주목하여 본다는 점이다. 특히 느낌의 소멸을 끝까지 따라가면서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일체의 느낌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결정적으로 유용한 방법이다. 느낌이 발생한 장소에서 머물러보라. 그 느낌은 오래 머물지 않고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느낌이란 시간이 문제가 될 수가 있지만, 결국은 곧 사라짐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명료하게 통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이것이 느낌명상의 핵심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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