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남 - 만행

아미산 - 중국 사천성 성도

마음정원(寂光) 2007. 4. 4. 23:29

아미산

≪ 아미산(峨眉山, 어메이샨, Emeishan)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형당산계의 공래산맥에 속해 있으며, 대아미, 2아미, 3아미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대아미의 주봉은 만불정으로 해발 3,099m. 사방으로 수백리에 펼쳐져 있고, 구름폭포 속에 웅장한 기세와 수려한 산세를 뽐내고 있다. <아미군지>중에는 이런 말이 기재되어 있다. "구름의 아름다움이 비취와 같고, 검푸른 귀밑머리와 같으니 진정 미인의 이마와도 같아 가늘고 길며, 아름답고 아득하다" 이곳에서 비롯하여 그 이름도 '아미산'이라 칭했다. 아미산을 불교에서는 '광명산', 도교에서는 '허령동천'이라고도 한다. 당대시인 이백은 시로써 아미를 칭송한 바 있으니, "촉국에 선산이 많으나, 아미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또 "아미는 천하에 수려하다."와 "아미를 유람하지 않고서는 사천성을 유람했다 말할 수 없다."가 그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아미산에는 일찍이 동한후기(기원2세기)부터 도교의 사원이 있었으며, 당송 이래 불교가 날로 흥성해 연이어 불사가 건조되었고, 명청대에는 온 산이 절과 도교사원으로 뒤덮혀, 크고 작은 사원이 약 백여개에 달했다.

전설에 따르면 <보현보살>이 현령하신 법사라고도 한다. 산서성 오대산, 안휘성 구화산, 절강성 보타산과 함께 <중국 불교 4대명산>으로 불린다. 청대 이래로 불교가 점차 쇄락하고, 더구나 산세가 높고 험하며, 비가 많고 습윤하여 대다수의 불사가 몰락하여, 해방전야에는 '보국사' '만년사' '화엄사' '세상사(지)' '복호사' '뇌음사' '대아사' '광복사' '우선사' '연화사' '중봉사' '관음사' '신개사' '선봉사' '백운사' '오룡사' '대평사' '백룡사' '용문동' '금정사' '천불정' '만불정' 등 불교 흥성 시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불사만이 남아 있다. 해방 후 두차례에 걸쳐 비교적 큰 규모의 보수공사를 거쳐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으며, 사천성의 중점 관광 풍경구이다. 현존하는 관람 가능한 사찰로는 '보국사' '만년사' '홍춘평' '산봉사' '복호사' '세상사' '무선사' '금정' '뇌음사' '백룡사' 등 십여곳이 있다.

보국사(報國寺, 빠오구어스)
아미현 남아미 산기슭에 위치해 있고, 현성에서 약7km 떨어져 있는 아미산 유람의 필수 코스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복호사, 청음각을 지나 아미의 최고봉인 금정에 이르는 길로 약 60km이고, 우측으로 만년사, 세상사를 졍유해도 금정에 닿을 수 있는데, 약45km에 이른다. <아미산지>, <아미가란기> 등에 기재되 바에 따르면, 보국사는 명나라 만왕 시기(기원1573~1620년)에 세워졌으며, 원래는 복호사 좌측에 있었으나, 청나라 순왕 시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졌다가 강희(기원1730년)에 재건해 '보국사'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축 규모는 웅장하고, 기세가 드높고, 배치가 좋으며, 성축선은 대칭으로 분포되어 있고, 중축선상의 건물로는 산문, 미륵전, 대웅전, 칠불전, 장경루 등이 산세를 타고 지어져 점차 높아지고, 사원주위에 청송 취백이 빽빽히 우거져 하늘을 가릴 정도이다. 산문은 정자식으로 되어 있고, 문 위에는 청나라 강희제가 하사한 '보국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경내 신당의 문과 창에는 조각이 정교하고 도안이 생동적이고 소박하며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 중 특히 '칠불전'의 것이 가장 장관이다. 전내외와 석란판의 목석 조각 또한 훌륭하여 주목할만하다. '장경루'의 목재 내장도 훌륭하고, 인물과 꽃, 새 등이 부조와 투조가 모두 상품에 속한다. 보국사의 역사 문물 중 특히 이목을 끌고 찬사를 받는 것은 바로 '화엄탑'이다. 이 탑은 명대에 주조되었으며, 높이7m 삼단 십사층의 독특하고 빼어난 구조이다. 탑에는 4,700여존의 작은 불상과 화엄경 경문이 주조되어 있다. 이 탑은 중국 고대 정자 건축의 특징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 건축의 특색도 갖추고 있다. 이 탑은 불교사, 조각, 건축사 등 다방면을 연구하는데 있어 진귀한 문물로서 이미 국가급 중점 보호문물로 지정되었다. 이밖에 또 유명한 문화재로는 명 영락제13년 (기원1415년)에 제작된 채색 도기 불상이 있는데, 불상의 높이는 2.4m로 자태가 생동적이고 형상이 진실에 가깝다. 보국사 건축물들은 수풀이 빽빽히 우거진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더욱 장엄하고 소박한 멋을 준다. 또한 경내에 또 정자와 누각이 신축되었고, 꽃과 나무가 누각을 더욱 돋보이게 해 관광객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만년사(万年寺, 완니엔스)
아미산 주봉의 동쪽 산자락, 해발1,000여m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기온이 매우 온난하고 기세가 탁 트이고, 수목이 울창하며,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아미십경'중의 하나인 '백수추풍'이 바로 이곳이며, 아미산상의 큰 절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 대의 약초캐는 노인이었던 포공이 부처를 모셨던 곳이라고 하며, 진대에 이르러 불사를 짓기 시작해 '보현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당대에 '백수사'라 개명했고, 송대에는 '백수보현사'라 불리어졌다가, 명만력 기간(기원1573~1620년)에 '성수 만력사'로 명명되었다. 절은 원래 7개의 건축물로 규모가 웅장했으나, 후에 몇차례의 흥망 성쇠를 거치다가 민국35년 (기원1635년) 일대 화제로 목조 건축물이 모두 불타 없어져 겨우 '무념전'만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것은 두동으로 1953년 중건한 것이다. 무념전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로 명만력 기간에 건조되었다. 높이16m 정방형 건물로 매변이 16.5m, 꼭대기 부분은 첨탑형이어서 흡사 몽고족의 '파오'와도 같다. 전(殿)의 꼭대기 부분에는 다섯 개의 백탑 (정중앙과 네 모퉁이에 하나씩)과 네 개의 길한 동물상이 세워져 있다.

전내의 중앙에는 북송 태평천국 5년 (기원980년)에 주조된 보현보살이 6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탄 동불상 한 점이 모셔져 있는데, 총높이 7.3m (불신과 흰 코끼리가 각각 반씩을 차지한다.) 무게는 약62톤이며,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전내 사방벽의 아랫 부분에는 24개의 작은 불단이 있는데, 각각 철불 한 존씩을 받치고 있다. 윗부분에는 가로로 여섯단으로 작은 동불상 307개가 배열되어 있는데, 매우 정교하고 조각이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무념전을 나와 돌다리를 건너면 1953년 새로 지은 두 건축물이 있는데, 곁채가 서로 이어져 있고 2층 겹처마식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외실이 특히 크고 가운데 두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윗처마에는 <왜아보전> 이라고 쓴 현판이 가로로 걸려 있으며, 건축은 붉은 담장과 검은 기둥, 회색 기와로 되어 있다. 건축앞의 연못과 주위의 산과 시내에는 아미산의 특산인 금와(金蛙)가 있다. 여름밤이면 이 금와가 사방에서 울어대 그 소리가 마치 피아노 소리와도 같아 귀를 즐겁게 해준다. 절 양측은 만길이 넘는 깊은 골짜기이고 경내에는 고목이 하늘까지 솟아 있고, 푸른 참대가 무성하여 고찰의 고요하고 그윽한 풍취를 느끼게 해 준다.

홍춘평(洪椿坪, 홍춘핑)
아미산 천지봉 아래 해발 약1,100m에 위치해 있다. 옛 이름은 '천불암', 명초에 선승이 건축했다가 청 건륭55년(기원1790년)에 아운선사가 중건한 후에 지명으로 절 이름을 대신했다. 사원 부근에 원래 세 그루의 늙은 홍춘 나무가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그루는 절 앞쪽에 있었으나 이미 불타 소실되어 겨우 뼈대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다른 한 그루는 절벽가에 위치해 있었으나, 산사태가 났을때에는 강희제가 내리신 편액 '망천근려' 및 대련이 현재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으며, 건물내에는 또 건륭제가 내리신 대련 한폭이 걸려 있다. 현존하는 사원 건축은 모두 건륭47년 (기원1782년)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전체 불사는 세간의 대전으로 이루어졌는데, 규모가 웅장하고 낭하는 간결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내에는 불상과 법기가 갖추어져 있고 전방 건축앞에는 '칠방천불연등' 한 촉이 걸려 있는데, 등 높이는 2m 직경이 1m 정도이며, 등에는 일곱 마리의 용과 수백여존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조각이 정교하고 조형이 생동적이며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데 청 말기의 것이다. 절 주위로는 수려한 봉우리가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고, 양측에는 깊은 골짜기와 시내가 흐르며 고목이 무성하고 녹음이 우거져 하늘을 뒤덮으며, 고요하고 청아한 분위기가 흘러 유명한 피서지가 되었다. 산속에는 안개가 무리지어 다니고 더운 여름에도 청아한 아침의 농무가 비가 되어 흩날려 '홍춘 효우'라고 불리었는데, '아미십경'중의 하나이다. 고시에 '산길을 걷다 보니 본래 비는 아닌 것이 하늘의 보석인가 나그제 옷깃을 적시는구나' 했는데, 여기서 가리키는 비경이 바로 이곳이다.

      

청음각(淸音閣:칭인꺼)
보국사에서 아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큰길에서 샛길로 빠져 약 15km정도를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쌍비교(雙飛橋)"라는 다리로 연결된 청음각을 만날 수 있다. 두 줄기의 계곡물을 이 다리에서 바라보면 햇빛을 향하여 바라보는 것과 햇빛을 등지고 바라보는 물의 색깔이 다른 빛을 띈다. 이런 까닭에 흑룡강(黑龍江), 백수하(白水河)라고 두개의 이름으로 부른다.

복호사(伏虎寺, 푸후스)
보국사 서쪽 약1km에 있으며, 당대에 짓기 시작했고 송대에는 '신롱당'이라 불리었으며 후에 절주위에 호랑이로 인한 우환이 있어, 승려들이 '존생보장'을 지어 이로써 진압했다 하여 '복호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절은 아미산의 대사 중의 하나로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흥망성쇄를 겪었고 청 순체8년(기원1651년)에 중건되었는데, 전당은 넓고 기세가 험준하며 사방의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빽빽한 산림이 하늘을 가릴 듯하다. 절은 비록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지붕 위에는 절대로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다. 청나라 강희 황제가 내리신 "화구원"이란 현판이 있으나, 지금은 희미한 묵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해방 초기에 증건한 동사방은 관광객에게 숙식을 제공하는데 쓰이고 있다. 최근 또 한차례 전체 불전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고, 가운데 절 앞으로 지나는 길이 닦여졌다.

금정(金頂, 진딩)
아미산 최고봉의 명칭이다. 만불정과 가까우며 해발3,077m에 위치한다. 불사는 동한대에 건축되었고, 당시에는 '보광전'이라 불렀으며, 아미산 고찰중의 하나이다. 산이 우거지고 천둥이 자주쳐서 여러차례 수리를 했으나, 여전히 새로 짓고 다시 허물어지는 상황이다. 정전은 영명화엄사라고 불리우며, 청 광서12년 (기원1886년)에 중건되었다가, 민국 25년(기원1936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전 뒤 가장 높은 곳에는 원래 동전(銅殿)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금전>이라 부르며 폭은 20여m 앞 뒤 길이는 수m이며 정중앙에는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고, 좌우에는 만불상이 늘어서 있다. 전문에는 흑산산천이 음각되어 있다. 전내에는 명대 성화년간(기원1465~1487년)에 주조된 동비가 있는데, 정면에는 "대아산영명화엄사에 동전을 신축함을 기념하다." 란 글이 씌어 있고 뒤편에는 "아미산보현금전비"라고 씌어있다. 동전의 화엄사는 이미 화재로 소실되었고, 비(碑)만이 전좌측의 '와운암'내에 보존되고 있다. 암자 좌측으로 수십분 떨어진 곳에 '서광대'가 있는데 일출 운해를 감상할 수 있는 불광(佛光)성지이다. 절 뒷편으로는 좁은 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절앞은 만길 낭떠러지여서 속칭 '서선암'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수백리밖까지 내다보이며, 크고 작은 설산이 바라보인다. 만불정 위에서 바라보는 '불광'과 '불등'은 아미산의 가장 볼 만한꺼리이다.

우선사(遇仙寺, 위시엔스)
선봉사와 세상사 사이, 해발 1,700여m에 위치하고 있다. 청 동치원년(기원1862년) 성희 법사가 흥건시켰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않고,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깊은 계곡에 임해 있으며, 가파른 고개는 등지고 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산의 나무가 서로 어울려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피서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대때로 원숭이떼가 출현해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더해 준다. 전설에 따르면, 예전에 한 관광객이 아미산에 신선을 뵈러 가는데, 이곳에 다다라 여비가 떨어져 않아서 쉬고 있었다. 가고자해도 갈수가 없는 이때에 홀연히 한 노인이 나타났는데, 의복은 남루하고 걸음이 마치 바람과도 같고 행동이 비범하여 이 객이 노인에게 청하여 대나무 지팡이를 하나 얻어 그것을 타고 용이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곳에 후에 불사를 짓고 '후선사'라 명명했다.

세상지(洗象池, 시샹츠)
화엄정과 백운사 사이에 위치해있다. 명대에는 '초희암'이라 불리웠으며 규모는 매우 작다. 청강희 38년 (기원1699년)에 대대적인 개축공사가 있었다. 절앞에 육각형의 연못이 있어, 보현보살이 얼굴을 씻었다는 전설이 있어, 이런고로 세상신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 내에는 관음, 지장, 대세 등 세 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자태가 단정하고 장중하며 옷의 무늬도 매우 뛰어나다. 불사는 해발2,100m의 높은 산봉우리 삼나무들이 우거진 속에 위치해 있다. 당대 시인 이백은 일찍이 '아미산원가'를 지어 아미의 달을 칭송한 바 있다. 싯구는 이렇다. "아미산 보름달이 가을을 알리니, 평강 흐르는 물에 달빛이 비치는구나. 맑은물은 삼협으로 흘러가고, 임은 유주로 가버리누나." 삼사의 달벽시 "아미십경"중의 하나이다. 이 일대도 원숭이떼가 서식하는 곳으로, 때때로 원숭이떼가 절안까지 들어와 관광객들의 음식을 빼앗아 달아나 계곡에 버리는 등 유람객들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선봉사(仙峰寺, 시엔펑스)
선봉사의 옛 이름은 "자연사" 또는 "선봉산원"이라 한다. 명마력 40년 (기원1612년)에 본동선사가 창건했다. 예전에는 4동의 건축이 주석판 기와로 덮여 있다. 현존하는 절은 청대에 중건한 것이다. 불사 뒷편으로는 위험한 바위로 둘러쳐져 있고, 화엄봉과 마주하고 있으며, 나무가 무성하고 깊은 골짜기에는 고요함만이 흐른다. 불사의 뒤쪽으로는 500m에 이르는 '구로동'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굴에는 아홉분의 신선이 있어 황제가 이곳을 찾아 불도를 했다는 설이 있다. '아미십경'의 하나인 '구로선부'가 바로 이곳이다. 굴의 좌측에는 삼협대가 있어, 이곳에 오르면 백리까지 내다보이며 수려한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절 주위는 원숭이떼가 서식하는 곳이 있어, 때때로 유람객의 음식을 빼앗아 가기도해 유람의 즐거움을 증가시켜 준다.

백룡사(白龍寺, 바이롱스)
"백룡동"이라고도 하며 아미산 하단에 자리잡고 있다. 명대에 지어졌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은 청대에 지어진 것이다. 이글은 민간 전설인 "백사전(白蛇傳)"중의 백낭자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하는데, 백사는 일반적으로 "백룡"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름이 백룡사가 된 것이다. 글은 오래전에 무너져 막혔으나, 절은 아직 존재하는데, 절 외부에는 원해 양쪽으로 수풀이 무성한 좁은 길이 있고, 고목이 하늘을 찌를만큼 빽빽하다고 하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명 융경 시기에 별전 박사가 심은 것으로 심을 때 "법화경"을 읽는데 한글자 읽을때마다 한 그루씩 심어 총69,777그루로 당시에는 이를 가리켜 "공덕림"이라 했는데, 제원을 거치면서 퇴폐해져 현재는 몇그루 남아 있지 않다.

뇌음사(雷音寺, 레이인스)
복호사에서 약2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명대에는 '관음당'이라 불렀고, 청대초에는 '해탈암'이라 불리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이 곳에 입산해 중생을 해탈시키고, 이곳에서 출산해 장애를 극복했다고 한다. 광서10년(기원1884년) 개축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한 동으로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고 절벽과 마주해 있고, 주위에 수목이 울창하며, 고요한 정취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