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남 - 만행

양자강은 힘차게 흐른다

마음정원(寂光) 2006. 9. 1. 00:30
양자강은 힘차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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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양자강

온나라가 ‘바다이야기’에 빠져 있는 가운데 ‘강(江)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중국 사람들은 양쯔(揚子)강을 ‘장강(長江)’ 또는 그냥 ‘강(江)’이라고 부른다. ‘허(河)’는 황허(黃河)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강의 상류에 있는 충칭(重慶)에서 중류에 있는 이창(宜昌)을 거쳐 강의 끝 상하이(上海)를 둘러보았다.

강은 푸르지 않다. 7000㎞ 가까이를 흐르는 강은 대체로 누런 황토색이다. 상류의 충칭에서 맑고 푸른 자링(嘉陵)강이 강으로 흘러 들지만 강의 색깔을 바꾸어놓지는 못한다. 탁류로 흐르는 강을 중국 역사상 최초로 가로막아선 싼샤(三峽)댐 근처에서 강의 색은 다소 푸른 빛을 띤다. 해발 156m까지 수위가 높아진 강에 토사가 가라앉은 탓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이 ‘새로운 만리장성(新長城)’이라고 부르는 싼샤댐을 통과한 강은 다시 탁류로 흐른다. 거칠게 흘러서 상하이 앞바다에서 다시 푸른 색의 바다와 만난다. 현 중국 지도부가 중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 32㎞ 떨어진 섬 위에 의욕적으로 건설한 양산(洋山)항 컨테이너 부두 근처에서야 강의 황토색과 바다의 푸른 색은 얼룩져서 섞인다.

충칭은 지난 20일까지도 두 달 가까이 최고 기온 섭씨 42~43도의 엄청난 더위와 가뭄에 시달렸다. 중국 공산당 충칭시 당위원회는 지난 18일 ‘전시(全市) 인민들에게 고(告)하는 서(書)’를 발표했다. “더위와 가뭄과의 전투에서 승리가 멀지 않았다. 조금도 위축되지 말자. 노약자를 돌보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자. 영웅적인 충칭 시민들이여, 자강불식(自强不息)의 노래를 부르자.” 21일 충칭시에서는 시 공안국장 허웨이(何偉) ‘동지’의 장례식이 눈물 속에 진행됐다. 허웨이 국장은 지난 11일 가뭄으로 발화한 산불 진화작업을 현장 지휘하다가 절벽에서 추락해서 순직했다. 허 국장에게는 ‘영웅’ 호칭이 추서됐다.

충칭과 이창 사이의 선눙계곡(神農溪)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올해 23세 처녀 탄춘옌(潭春燕)은 학교 교사 신랑을 만날 꿈을 매일같이 꾸고 있다. 한 달 월급이라야 고작 1000위안(元·약 14만원)이다. 하지만 관광 거룻배의 노를 젓는 총각들이 버는 200~300위안보다는 많은 돈이다. 소수 민족 투자(土家)족 개띠인 탄춘옌은 월급 대부분을 저축해서 모으고 있다. 하지만 힘센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직도 밀려나지 않고 노를 젓는 51세의 장(張) ‘노인’도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얼마 전부터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집에 TV도 들여놓고, 냉장고도 돌리면서 사는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노를 저어도, 얕은 강물에는 뛰어들어 몸으로 배를 끌어도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강은 원래 ‘과거의 강’이었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에게 아들들을 부탁하고 죽었다는 백제성(白帝城)도, 초(楚)나라 애국시인 굴원(屈原)의 무덤도, 당나라 때 만리장성 북쪽 ‘오랑캐’들에게 끌려간 천하미인 왕소군(王昭君)의 고향도 장강 유역에 있다. 그러나 현 중국 지도부가 1994년 싼샤댐을 착공하면서 강은 ‘미래의 강’으로 변했다. 더구나 강이 끝나는 상하이의 앞바다 32㎞나 떨어져 있는 섬에 아시아 최대의 양산항 컨테이너 부두를 건설한 현 중국 지도부의 야심은 강 유역에 사는 인민들 모두에게 미래의 꿈을 심어주었다. 양산항 컨테이너 부두에서 일하는 모 해운사 한국인 직원은 양산항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왜 10년 전에 이런 아이디어를 못 냈는지 생각하면 통곡할 일입니다.” 그런 말을 듣고 23일 귀국해보니 한국은 온통 ‘바다이야기’에 빠져 있다.

 

박승준 기자

 


- 받은 메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