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염주

마음정원(寂光) 2005. 9. 7. 13:14

 

      염주
 

               일초 스님/동학사 승가대학장

 


부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법당에 가니 노보살님 한 분이 열심히 기도를 하고 계셨다. 온 성심을 다해 기도하시던 보살님은 염주를 부처님 앞에 올리고 무엇인가를 염원한 뒤에 나갔고, 나도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오후 기도를 하러 법당에 들어가니 또 그 노보살님은 보물을 끌어안듯 염주를 안고 부처님을 바라보고 계셨다.

기도가 끝나고 난 뒤, “보살님, 무슨 소원이 그리 간절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소원이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소원이 있겠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싶으신데요?”
“이 염주를 세상을 버리는 날까지 가지고 싶습니다.”
“보살님 염주인데 가지시면 되지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염주를 가지면 점점 나는 외로워집니다. 그래서 오늘 부처님께 염주를 바치고 가려고 왔지만 이렇게 놓지 못합니다.”
“보살님, 염불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염주가 없더라도 꼭 부처님을 염하시고 어떤 놈이 이렇게 부처님을 찾고 있나 생각하세요.”

주름진 눈가에 맴도는 눈물을 보면서 ‘늙음은 역시 괴로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장가를 가기 전 아들은 효자였고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젊음과 삶을 다 주었는데 장가를 가고, 손자가 생기고, 어머니가 남은 재산마저 다 주고 난 뒤에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 모두 교회에 다니면서 손자, 손녀마저 할머니를 멀리하고, 아들마저 어머니와 말을 안 한단다.

할머니는 교회를 가지 않는, 염주나 가지고 염불이나 하는 마귀할머니이기 때문에 가까이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루는 몸이 아파 정신을 잃었는데 오전 열 시가 지나도 조용하기에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모두가 교회에 가고 없었다. 아침을 먹고 깨끗이 치워진 모습을 보고 너무나 서러워 울었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아들마저 어머니에게 말을 하지 않기에 왜 말을 안 하는가 물어보니, 부처님 믿는 어머니하고는 지옥에 갈까 봐서 말을 하지 않는단다. 어머니가 개종하면 가정이 화목할 것이라고 한다.

많은 날을 생각하다가 마지막 남은 평생 지니던 염주를 들고 부처님을 찾아 왔지만 차마 놓고 갈 수가 없어서 가다가 이렇게 되돌아 왔단다.

이제는 힘없는 어머니. 사랑을 주던 어머니가 사랑을 받을 나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어린 손자의 보드라운 손을 만지면서 인생의 기쁨을 느끼고, 어쩌다 건네주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젊은 시절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어머니. 그 작은 바람들이 부처님을 믿고 염주를 가진 어머니이기에 외롭고 서러운 어머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중생에게 무엇이 되어 기쁨을 줄까’ 하는 보살의 마음과 우리가 아니면 부모와 형제라도 버리라는 배타적인 사람들. 세상에 이것은 종교라고 할 수 없는 집단이다. 1·2차 세계대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나 종교라는 미명 아래 중동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1·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다면 인간을 위한 종교인지 신을 위한 종교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자.

삶을 생각하고 중생의 행복을 생각하고 평화를 만드는 것이 종교의 이념이라면 인간의 냄새마저도 묻어날 수 없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종교인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든 종교의 근본 원리가 인간을 선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만 사랑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자는 부모와 형제라 하더라도 버리고 미워해야 하는 것이 종교라면, 그것은 인간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자의 소견이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윤회사상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기독교 초기의 많은 교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전생을 믿고 인과를 믿고 윤회를 설교했다. 그러다 서기 53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전생과 윤회에 관한 내용이 교리에서 삭제된 뒤로 윤회를 믿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이단으로 규정지어 화형에 처해졌다. 인간은 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영혼이 여러 생애에 걸쳐 구원의 기회를 갖는다는 개념이 교회와 성직자들의 권위를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도 유일신에 의한 사후의 심판을 받는 기독교인들은 인과와 전생 윤회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생이라는 개념조차 이단시한다.

종교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지 신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젊음과 재산과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하여 바치고 이제 남은 종교마저 놓기를, 버리기를 강요받는 어머니를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이 어찌 자기의 자식이 먼 훗날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