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스님/ 청담스님의 ‘108 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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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 되면 108배 그 성스러운 모습은 바로 법문 그 자체… 산문 안에 들어온 나를 부처님께 인도하고, ‘출가자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준 분이 계시다. 은사이신 청담스님이 바로 그 분이다. 스님으로 인해 나는 ‘무명의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 문을 찾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방법을 알게 됐다. 은사스님은 누차, 나를 볼 때마다 그 방법을 일러주셨지만, 불초(不肖)한 제자라 제때 알아듣지 못했는데, 스님 가시고 난 뒤 산문에 들어온 햇수가 많아지면서 서서히 인식하게 됐다. 은사스님이 나에게 몸소 보여주신 방법은 ‘108 참회’였다. 아침 예불을 마친 다음 스님은 반드시 108 참회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더우나 추우나 상관하지 않고, 아무리 바쁜 일정이 있어도, 지방 어느 사찰에 가 계시더라도 ‘108 참회’는 꼭 하셨다. 젊은 스님들이 예불 뒤 곧바로 나가버리면, 훈계하시기보다 ‘108 참회’하며, 그들을 가르치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법문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셨는데, 사찰 주지스님이 절의 잠자리가 누추하다며 호텔에 숙소를 정해 주었다. 은사스님은 다음날 아침 4시 정확하게 일어나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회중시계에 딸려있는 나침반으로 도선사 석불전 방향을 파악한 다음, 108 참회를 시작하셨다. 당시 스님을 모시고 간 나도 따라 했는데, 절하는 것을 몇 번 빠트리고 말았다. 108 참회를 마친 스님은 나에게 “절을 하려면 잘해야지 빠트리면 어떡하느냐”고 경책하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여름날, 당시 은사스님 세수는 70인 것으로 기억된다. 무더운 날이고, 편치 않는 노구(老軀)임에도 스님은 어느 아침과 다름없이 108 참회를 하셨다. 한 배, 한 배 하시자 스님의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적셔졌다. 장삼과 가사 마저 땀범벅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스님은 1배도 빠지지 않은 108배를 다 채우셨다. 게다가 얼마나 정성스레 절 하시는지. 곁에서 같이 하던 나는 저절로 그 성(聖)스러운 모습에 감동됐다. 스님의 절하시는 모든 동작은 법문(法門) 바로 그것이었다. 성스러운 모습에 감동된 나는 “앞으로 부끄럽지 않는 수행자가 되겠다”고 맹세했고, 항상 지키고자 노력해왔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 도선사 석불전에서 대중들이 ‘아침 108 참회’를 하던 날로 생각된다. 아침 108 참회를 하는 날엔, 기도가 끝나고 바로 스님의 법문이 이어진다. 은사스님의 법문은 몇 시간씩 이어지기에 - 당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 호롱불을 들고 있는 시자는 팔이 빠지도록 등을 들고 있어야 했다. 아침 108 참회 하는 날이면 대개 날이 밝은 뒤 석불전에서 내려오곤 했다. 철저하게 자신을 가다듬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은사스님이 정한 룰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사부대중이 모두 참석하기 전에는 결코 예불종(禮佛鐘)을 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사스님이 가신 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귀에 생생한 가르침이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참회 정진하여 업장이 소멸되면, 우리나라는 복 받는 나라가 되고, 통일도 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훌륭한 국가 된다. 그러니 무엇보다 자기 참회를 통해 참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산문에 들어온 햇수가 많아질수록 “방일(放逸)하지 말고 철저하게 수행하라”고 제자들에게 몸으로 가르쳐 주시던 자비로운 은사스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동광스님/ 청담장학문화재단 이사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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