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이해

불교의 수행 - 몸과 마음 닦아 걸림없는 삶 찾는다

마음정원(寂光) 2005. 8. 8. 12:59
불교의 수행
“몸과 마음 닦아 ‘걸림 없는 삶’ 찾는다”


불교는 부처님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알고 삶의 도리를 깨우쳐 일반 중생으로부터 깨달은 이, 즉 부처가 된 사람이다.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부처로 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은 물론 싯다르타 태자의 진리에 대한 열정과 깨우침에 대한 열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시일 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6년이라는 고행의 기간은 진리를 알기위해 들인 시간으로서 적은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리에 눈뜨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의가 모두 부처가 되는 수행의 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중생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 부처의 마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도 꾸준한 노력과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부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이러한 부처의 마음을 얻는 구체적인 수행의 길로서 제시된 것이 계(戒).정(定).혜(慧) 즉 3학(學)의 구조이다.

3학.8정도.37보리분법 등

부처님의 마음을 갖는 노력


계는 계율(戒律)로서, 우리의 몸과 행위를 조절, 통제하는 것이다. 정이란 선정(禪定)으로서, 우리 마음의 깊은 정신세계를 통찰하는 것이다. 혜란 지혜(智慧)로서, 인간의 삶을 걸림 없이 살게 하는 자재로운 능력이다. 곧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조절하고, 깊은 정신세계를 통찰하여, 인간이 지닌 위대한 능력인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삼학의 구도로서 최고의 지혜를 얻어 해탈에 이른 사람이 부처님이다. 이 삼학의 근본구도는 초전법륜(初轉法輪)의 8정도(正道)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이 최초로 설하신 초전법륜의 가르침에서, 열반에 이르는 근본 가르침이 8정도이다. 8정도는 ①올바른 견해 ②올바른 생각 ③올바른 말 ④올바른 행위 ⑤올바른 생활 ⑥올바른 노력 ⑦올바른 기억 ⑧ 올바른 정신집중. 이 8정도는 기본적으로 3학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즉 ②에서 ⑤는 계율의 의미로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몸과 행위를 통제 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⑥에서 ⑧은 우리 마음을 통찰하는 것으로, 선정에 해당한다. 그리고 인간의 뛰어난 능력으로서 지혜가 ①이다. 이것은 연기의 이치에 따라 삶을 걸림 없이 보고 아는 구체적인 능력으로서 지혜를 의미한다. 이 3학으로 보여 지는 8정도의 수행구조는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할 수행의 근본구조로서,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인 심신(心身)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3학의 구조를 근본으로 하여 우리 인간의 심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가르침이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다.

37보리분법은 보리 즉 깨달음을 일으키는 37항목의 수행단계라는 의미로, 불도(佛道)를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도 한다. 곧 4념처(念處; 몸.감각작용.마음.일체법을 관찰하는 것), 4정근(正勤; 생긴 악을 끊고, 생기지 않은 악을 막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을 나게 하고, 이미 생긴 선을 증대시키는 것), 4신족(神足; 선정을 얻는데 필요한 네가지), 5근(根).5력(力; 깨달음을 얻는 필수적인 다섯가지 요소와 그로부터 생기는 능력; 믿음.노력.기억.선정.지혜), 7각지(覺支; 지혜가 작용하는 일곱가지 단계), 8정도의 37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37조도품 또한 계.정.혜 3학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인간이 몸과 마음을 조절 통제하여 지혜를 일으키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불교의 근본목적은 모든 중생을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인격성을 얻게 하는데 있다. 곧 부처가 되는 것이 근본목적이다. 그리고 부처가 된다는 것은 부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중생의 마음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부처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부처의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고, 이러한 수행은 근본적으로 계.정.혜의 구조로 나타난다. 몸과 마음을 닦아 부처님과 같은 온전한 능력의 지혜를 일으켜 삶에 걸림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도가 추구하는 수행의 근본목적인 것이다.

 

 

이태승교수 -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불교신문 2118호/ 4월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