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흐름이 끊어진 곳에 일심의 바다가 있었다

마음정원(寂光) 2005. 5. 20. 18:37
    
제   목  
   흐름이 끊어진 곳에 일심의 바다가 있었다.
초저녁 부터 내리던 봄비가 새벽예불 때까지 계속 내리고 있다.
처마끝 낙숫물 소리가 깊은 선정을 깨운다. 온 대지가 촉촉한 봄 기운으로 사방은 더 없이 포근 하다. 바깥 출입을 금하고 겨울 한철 동안거에 들었던 스님들이 해제를 맞아 만행을 떠나는 들뜬 기분처럼 봄 기운이 온 몸에 퍼지고 있다.

비가 개이고 나니 뒷산 봉우리는 더욱 으젖해 보이고 안개 걷힌 바다가 해제를 맞은 텅빈 선방처럼 문을 열어 젖혔다. 저멀리 수평선이 아련히 보이고 어디로 가는 배인지 큰 배가 한척 지나간다. 바다는 모처럼 선원 앞 마당과 하나로 만나고 있다. 여러개의 섬들이 연꽃처럼 평화롭게 떠 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물소리를 따라 길을 나서본다.
겨우내 흐름을 멈추고 습기를 다스리던 동편계곡에 제법 물소리가.요란하다. 흐름을 따라 한걸음 두걸음 ... 나무들도 선정에서 깨어나듯 바람에 서서이 몸을 뒤척이고 같이 따라 나선다. 어느덧 흐름을 멈추는 곳은 바다였다. 일체 번뇌망상의 흐름이 멈추는 곳에 일심의 바다가 있었다.

마치 산모처럼 바다는 몸을 푸는듯 후ㅡ후ㅡ후ㅡ 길게 날숨을 토하면서 세상 욕망의 쓰레기들을 정화하는 아픔의 산고를 격고 있다. 성스러운 바다의 숙연함에 갯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든다. 사방은 고요하고 바다의 가뿐 숨소리만 들린다. 어느덧 선정에서 깨어보니 저 만큼 바다는 물러나고 벌써 봄이 와 있었다. 갯바위에는 해초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저마다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파래 돌김 미역 톳 바다 나물들이 부드럽고 연하다. 미끄러운 갯바위를 조심스럽게 건너면서 해초를 딴다.푸르고 싱그러운 봄기운이 온 몸에 스며든다.

저 멀리 바위섬에는 갈매기들이 잠시 자맥질을 멈추고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갈매기들도 그간 살아온 바다를 되돌아 살피는 듯 명상에 잠겨 있다. 고달픈 바다의 일생을 바라보고 있다. 벌써 인기척을 느끼는듯 다시 한마리 두마리 물질을 떠난다. 갈매기가 날아간 자리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조주스님께서 어느날 시자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데 산토끼 한마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시자에게 물었다. 토끼가 왜 달아나느냐? 사람이 무서워서 그렇지요. 아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안된다.너한테 살생의 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들 한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갈매기가 날아간 것은 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에게 한생각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무겁고 힘든 일은 다 남에게 돌리고 좋은 일만 차지하려고 한다. 모든것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을 모른다. 그것은 내마음이 바로 부처란 소리다. 마음 없는 사람이 없기에 사람마다 모두가 부처인 것이다. 하지만 믿지를 못한다.

지금부터 이십여년전 경기도 도솔암에서 혼자 정진하면서 큰절에서 양식을 얻어다 먹었다. 큰절에는 나이 어린 동자가 있었는데 얼굴은 거칠고 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항상 우는 상이었다. 어느날은 큰절에 내려가서 동자님은 본래 부처님 입니다. 방으로 들어 가십시다 삼배를 올리겠습니다. 하면서 절을 했더니 무슨 영문 인지도 모르고 같이 따라서 절을 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알수 없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기를 때리고 놀리는 사람은 있어도 부처님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절에 내려 올때마다 동자님한테 삼배를 올렸더니 나도 어느덧 부처가 되었다. 동자님의 얼굴도 나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는 더 이상 삼배를 받지 않겠다고 울면서 달아나 버렸다. 알고 보니 주지스님과 신도들 앞에서 자기가 부처라고 자랑을 했단다. 주지스님이 건방지다고 꾸짖고 나무랐는 모양이다. 천진 부처를 망처버린 주지스님이 원망 스러웠다.

우리 모두는 본래 부처이다.
서로 부처님처럼 섬기고 살아야 한다.
바다가 깊은 밤에도 홀로 깨어 스스로를 정화 하듯이 본래 부처를 회복해야 한다. 어느덧 해는 서서이 바다로 빠지고 있다.
바다는 황금빛 가사로 옷을 갈아 입었다.
해초를 담은 바구니에도 노을이 가득하다.
봄 향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적광 본래부처..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의 찌던 삶이 마치 도솔암 동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하루에도 숱한 번뇌망상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마음 지켜보며 황금 빛 가사로 옷을 갈아입는 더없이 넓고 크게 펼쳐진 송광암 앞바다를 바라봅니다.
이 세상 모두를 한없이 정화하며.. 출렁대는 파도를 잠재우는 앞 바다..파도소리 관하며 좌선삼매에 들던 모습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적광 일선스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작년 12월 이곳 중국 청도에 와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5-6년전 추운 겨울날 단가출가 수련을 통한 시간을 통해 스님께 지도해 주신 禪 修行이 늘 생활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 청도에도 한국 사찰이 두 곳 있으며 아직은 출발단계에 있지만 정기법회를 하고 있고 저는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선스님의 맑고 고요한 미소가 자꾸만 생각납니다.. 바쁘신 중에 이렇듯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맑고 향기로운 날 되십시요 - 적광 합장 -
일선 적광 거사님 반갑습니다.
송과암 임기를 마치고 바닷가에 거금선원 수련전문 도량에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10여년전 중국 만행길에 청도 바닷가를 거닐며 들었던 파도소리 아직 들려 옵니다.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듣는자를 돌이켜 보십시요. 고향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겄입니다. 건강 하시고 인연 되시면 수련회에 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