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마음을 보는 실 수행법

마음정원(寂光) 2012. 6. 3. 13:52

마음을 보는 실 수행법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그 순간의 마음이 시켜서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어떤 불선업도 제어할 수 있으며,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선업을 심어가는 과정입니다. 실제 수행에서 어떻게 마음을 보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4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있는 마음 알아차리기 -지금 무슨 마음인가?

2.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 -지금 무슨 마음인가?

3.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가?

4. 아는 마음을 다시 지켜보기입니다. -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1) 있는 마음 알아차리기-

현재의 마음상태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 탐심이 있는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화내는 마음이 있는가. 게으른 마음이 있는가.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가. 의심하는 마음이 있는가... 등등의 현재의 마음을 느낌이나 기분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현재 자신의 마음상태를 직접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일을 하고 있는 마음의 바탕에 있는 마음보기입니다. 수행자는 무슨 일을 하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일하려는 마음바탕에 있는 마음을 한번 보아주고 나서 일을 해야 합니다. 만일 일을 하려는 마음 상태를 보지 않고 그냥 일을 시작하면, 알아차림이 없는 마음상태로 일을 하기 때문에 과거에 해왔던 탐진치의 습관대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일을 가장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있는 마음보기"는 어떤 시간이든지 가능합니다. 특히 수행 시작 전, 아침에 일어날 때, 식사할 때, 말 할 때, 낮에 직장이나 집에서 일을 할 때, 저녁에 잠을 자려고 할 때, 어떤 마음인지 마음을 먼저 보아주고 나서 일을 하면, 알아차림에 의해 마음이 평온해진 상태에서 일을 하므로 그 일을 가장 능률적으로 잘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을 보아주지 않고 일을 시작하면 이미 마음이 잘하려고 들떠있거나 또는 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어 하는 경우에는 그 마음에 휘둘려 현재 하려는 일을 마음을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이때 그 마음을 알아차려주면 바로 알아차림이 있는 깨어있는 마음이 됩니다.

 

2)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1)

- 방금 일어난 수상행에서 그런 수상행의 원인되는 마음보기.

지금 어떤 대상과 부딪쳐 강한 느낌이나 생각이나 의도가 일어날 때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현재의 상황과 연계된 마음을 보려고 새로 의도를 내서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느낌이나 생각이나 의도를 일으킨 원인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금 일어난 마음이 어떤 강한 느낌이나 생각이나 행위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좌선 중에 갑자기 가슴이 뻐근했다면, 그 뻐근함을 알아차리고 즉시 지금 무슨 마음인가 그 마음을 보니 어제 있었던 기분 나쁜 일 때문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화를 낸 마음이 가슴에 뻐근함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금 화를 내고 있네!"하고 알아차리면, 알아차림을 하는 새로운 마음 때문에 방금 전의 화를 낸 마음은 사라집니다. 이렇게 마음을 보고 다시 가슴의 뻐근한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가슴의 뻐근한 느낌이 미세해질 때까지 보다가 다 사라지면 현재의 주 대상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어떤 느낌에서 마음보고 다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동안 더 이상 그 느낌에 휘둘리지 않으며 원인이었던 화를 내는 마음도 힘이 약해집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대상을 느낌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다시 가슴의 느낌으로 바꾸어 가며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동안 처음에 있었던 화를 내는 상황에 다시 묶이지 않게 됩니다.

 

2)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2)

- 방금 일어난 수상행에 반응한 마음보기.

어떤 느낌과 생각과 행위가 있을 때 그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의 마음을 보면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등으로 반응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칭찬이나 비난, 행복이나 불행, 명예나 치욕, 이익이나 손실 등을 만나면 좋아하거나 싫어하며 그 느낌을 붙잡고 두고두고 생각하며 떠올립니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다시 집착하고 괴로움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 과거의 일 때문에 지금 반응하고 있는 그 마음을 빨리 알아차려주어야 더 이상 그런 느낌들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로 돌아와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응한 마음을 보면 "욕심이었네! 성내고 있네! 집착하고 있네!" 하고 알 수 있으며,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그 마음으로 일어난 가슴이나 머리의 분명한 느낌을 대상으로 느낌의 변화를 보는 수념처 수행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보고 반드시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은 몸에 느낌을 일으키고,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마음을 보고 빨리 몸의 실재하는 느낌을 잡아야 알아차림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좌선 중에 통증이 나타나면 "통증이 있네!". 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보면 통증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통증을 싫어한 마음!” 이라고 알고 다시 통증을 싫어한 마음 때문에 가슴이 무거우면 빨리 가슴의 그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점차 가슴의 느낌이 줄어들다 다 사라지면 다시 수행의 주 대상인 호흡을 보거나, 또는 현재의 강한 대상인 통증을 툭 던져놓고 그냥 알아차릴 대상으로 그 느낌의 변화를 보면서 통증의 성품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됩니다.

 

이처럼 마음을 보고 즉시 몸의 느낌으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마음을 계속 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현상에 반응한 마음은 그 순간 일어났다 사라졌기 때문에 그 마음을 계속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현상에 따른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 방법은 통증이라는 대상에서 통증에 반응한 마음으로 대상을 한번 바꾸고, 다시 통증 때문에 일어난 가슴의 느낌으로 대상을 바꾸면서, 현재의 마음이 통증과는 거리가 생겨 통증에 넘어가지 않고, 통증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테크닉입니다. 결국 통증에서 통증을 싫어한 마음을 보는 것은 통증이라는 대상에 빠지지 않고 통증을 객관화 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괴로움을 수행 중에 나타난 통증을 알아차리듯이 객관화해서 알아차림을 하면, 그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그 괴로움이 수행 재료가 되고, 그 괴로움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납니다. 결국 괴로움에서 더 큰 괴로움으로 만들지 않고 괴로움을 뛰어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은 단지 그 순간 "괴롭다는 느낌"이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일 뿐, 실제로 괴로움이라는 실체는 없다는 통찰지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실체가 없는 괴로움을 붙잡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3)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 의도 보기.

매순간 몸과 마음을 이끌어 가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항상 다음에 할 행위를 미리 몸에 명령하므로, 행위를 하기 전에 행위를 하려는 마음(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보기 입니다. 경행 중에 한 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발을 들려는 의도, 내미려는 의도. 내리려는 의도. 서려는 의도. 돌려는 의도가 있고. 경행 후 좌선하려면 앉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때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가?"하고 마음을 보아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리면 앞으로 할 행위를 명령하는 의도를 보게 됩니다. 의도를 아는 것은 마음을 직접 알아차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집중력이 생겼을 경우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특히 좌선이 끝났을 때 고요해진 마음 상태에서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4) 아는 마음을 아는 것(다시 지켜보는 것)으로 마음보기.

- noting을 watching 하기-

수행자가 알아차리는 힘이 쌓여 하려는 의도를 볼 수 있을 만큼 집중력이 생기면, 현재를 알고 있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현재를 알고 있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하려면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마음을 새로 내서 현재 마음이 하고 있는 일을 다시 볼 때 가능합니다.

 

이렇게 noting을 watching하는 상태에서는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계속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noting을 watching하는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 되면 찰나마다 현재의 대상과 아는 마음이 쌍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의 집중은 이와 같이 매 찰나에 실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여기서 찰나 생멸하는 법을 직접 보게 됩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찰나마다 현재의 대상에 잘 집중되어 사마디가 깨지지 않으면 한 시간 내내 또는 하루 종일도 noting을 watching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알아차림이 항상 저절로 따라다니므로 한결 수월하게 수행을 할 수 있으며, 몸과 마음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밀밀하게 볼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위빠사나의 지혜가 성숙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심념처 수행으로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오온의 삼특상인 무상, 고, 무아를 있는 그대로 통찰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이 소멸되어 도와 과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심념처 수행이 해탈열반을 성취하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