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당신의 마음의 등불은 얼마나 밝은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라. - 지광스님(능인선원)

마음정원(寂光) 2011. 11. 27. 09:48

지광스님

1. 마음을 갈고 닦는 정도에 따라 그 밝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통해서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웁니다. 하지만 정작 마음에 녹아 생명력 그 자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다행히 불교는 깨달음을 생명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냥 듣고 아는 공부가 아니라 체험을 통한 깨달음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지혜(智慧)’또는‘광명(光明)’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보석은 자꾸만 닦을수록 빛이 난다, 혹은 끊임없이 껍데기를 벗겨내면 빛이 난다.’라고 하는데, 원석이 찬연한 광채를 내려면 끊임없이 제 살을 깎아내야 하고 흠집이 있는 보석 역시 제 살을 깎아내는 인고의 노력을 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래 우리 마음 가운데에는 보석과 같은 찬연한 광명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온(五蘊) 즉 육신, 물질이 감각과 지각의 대상이 되어 반응을 하고 판단을 해서 쌓이게 되는 의식이, 우리의 본래 광명을 가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눈에 빛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밝기를 말할 때는‘촉’이란 말을 씁니다. 그런데 각자의 눈으로 봐서는 빛의 밝기가 전부 똑같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연마하고 생활해 나가는 결과에 따라 그 빛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 것입니다. 이 곳 능인선원에 나오시는 여러분 역시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지만 각자 내면의 빛의 강도는 전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조견오온개공도(照見五蘊皆空度)중‘조견’ “확연히 꿰뚫어서 바라 보셨다”란 말씀을 보게 됩니다. 개개인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그저 육신(肉身)으로 이루어진 똑같은 몸이겠거니 하지만 부처님 나라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이 육신(肉身)또한 언젠가 사라져 이 땅을 등지게 되면, 각자가 지니고 있는 빛의 강도에 따라서 가는 곳이 전부 다릅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겉모습으로 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갈고 닦아 깨달음이 돈독해지고 지혜가 증장되었는지, 우리들 마음 가운데 영혼의 등불이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에 따라서 각자의 모습이 다르게 비춰집니다. 흔히 세속에서는 똑똑한 사람을 가리켜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반면 지혜가 돈독한 사람들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대장경>을 통해“깨달음이 광명이고 지혜가 광명”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불교에서는‘광명(光明)’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무량광이란 말도 있습니다. ‘무량광(無量光)’얼마나 빛이 찬연하면 무량광이라고 불렀겠습니까.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무명(無明)’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내일 당장 무엇이 올지 모르고, 문 바깥에 누가 와 있는지도 모르고, 너무나 어둡게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부처님께서는 또 <삼명유통> “전생을 까맣게 모르고 현재도 잘 모르고 미래도 잘 모른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삼명이 열리지 못해서 우리를 모두‘무명중생(無明衆生)’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목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자신의 마음의 등불과 영혼의 등불을 밝히는데 게을리 했다면 부처님께서는 절대 봐주시지 않습니다.


<약사여래본원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뜻을 이어 받아 사도답게 산 사람들은 재앙의 구렁 속에서도 살려 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 보세요. ‘내 영혼의 등불은 얼마나 밝은가’혹은‘내 마음의 등불은 얼마나 밝은가’라고.


우리가 만약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고통을 겪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어둠으로 꽉 찬 세계를 불교에서는 아비지옥이라고 부르는데, 그 지옥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째는 <유간지옥>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시간을 느끼는 곳이고, 둘 째 <무간지옥>은 시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한한 고통을 당하는 곳이며, 셋 째 <아비지옥>은 말할 것도 없이 어둠 속에서 고통만 당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마음의 등불, 영혼의 등불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죄를 짓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항상 스스로 마음을 밝게 하고 영혼의 등불을 밝히는 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자주 법당에 못 나오시더라도 계속 법(法)을 연마하고 법화경이나 금강경을 하루 몇 페이지씩이라도 사경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만 독은 해야 되겠다”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지내다 보면 그런 사람에게서는 분명히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또 아무리 바쁘게 지내더라도 틈틈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비심을 베푸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빛은 늘 우리 가까이 있음을 알라.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이 땅을 광명의 세계로 만들러 온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언제나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부처의 언행을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모두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그래서 그 부처의 빛으로 상대방의 어둠까지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육바라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가 전부 다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가운데 광명의 세계를 가리고 있는 것들을 모두 거두어 내면서 업장을 소멸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갈고 닦음의 정도가 많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광명을 선물 할 수 있고 어둠을 밝혀줄 수 있으니까 그만큼 지혜와 복덕 구족하신 부처님께서는 더없이 그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가피력이 다르고 복을 받는 정도가 다르고 지혜를 감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마경>에 보면 나 혼자 어둠을 밝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큰일을 해 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큰일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많은 사람의 빛<무진등>이 되라고 하십니다. 나의 밝음으로 인해 상대방의 무명을 밝혀 주게 되면 이 세상은 불국토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우리들은 지금 눈이 멀어 이 우주가 찬연한 부처님 광명으로 꽉 차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발생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여러 제반 양상들은 모두 빛으로 표현됩니다. 하물며 마음의 빛 또한 빛의 정도에 따라 겉으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지금도 상대방의 조도가 얼마나 되는지, 각자 영혼의 등불의 조도가 어떻게 다른지 하나도 못 보고 지냅니다. 부처님과 신장님들은 다 보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해인사에 가면 <대적광전>이 있습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주로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 하는데 그곳에서는 유독 대적광전이라 부릅니다. 그 낱말 속에는 ‘비로자나불’즉 이 우주의 ‘진광명, 상적광’ 한없는 광명의 세계란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스님들이 계속 정진해서 깨달음을 증득하고 체험한 ‘오도송(悟道頌)’을 보면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광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부처님의 광명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지금 여기 또한 광명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업장이 두텁다 보니까 부처님의 광명이 가려진 거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어둠이 거치고 순간순간 빛을 보게 됩니다. 결코 빛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으니 누구나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안하신 대로 첫 째 ‘허공이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잊지 말라’ 둘 째‘육바라밀 행하기를 절대 잊지 말라’ 셋 째‘인과법(因果法)을 철두철미하게 믿으라.’내가 갈고 닦으면 반드시 부처님이 된다. 넷 째‘기도 정진을 멈추지 말라, 항상 법을 가까이 하고 절대 함부로 살지 말라.’마지막으로 ‘항상 보이지 않는 세계 무량한 존재들, 또 조상님 모두에게 예경을 취하라.’등을 명심하고 끊임없이 갈고 닦아 나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찬연한 광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법화경>에 보면 이 세상은 온통 다이아몬드 밭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우린 그걸 못 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눈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끔 무엇인가를 찾고자 할 때 왜 급하게 찾으면 앞에다 두고도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거지요. 급하니까 바로 눈앞에 있어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빛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눈앞에 빛이 아니라 귀한 황금이 떨어져 있어도 볼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부디 부처님만 생각하시고 수행하고 정진하면서 스스로 빛이 되십시오. ‘북’도 쳐야 소리가 나듯이, 지혜의 빛은 갈고 닦아야 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정말 말 많고 탈 많은 세계이니까 자기가 빛이 되지 않으면 남을 감동 시킬 수가 없습니다. 내가 빛이 될 때, 내가 바를 때 비로소 상대방이 나를 따라 삽니다. 내가 바르지 못할 때에는 나를 따르지 않습니다. 맹자나 논어에 보면 상대방을 망해 놓으면 항상 자기를 망하게 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공연히 하늘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조상을 원망한다는 거지요. 아이들한테도 돈 많이 벌어서 물려줄 생각하지 마세요. 그 대신 온 세상이 다이아몬드 밭이니까 아이들에게 마음의 눈을 여는 방법 곧 자신이 빛이 되는 방법을 일러 주는 게 더 슬기롭고 지혜로운 부모의 모습일 것입니다.



3. 무한정진이 곧 빛(光明)이다.



요즘 신문에 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 개발국들은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가는 반면 일본이나 미국 등의 부자나라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지내다 점점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다른 신흥국들에게 밀려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풍부해지다 보면 영적인 눈이 자꾸 감기게 되고 자기도취에 빠져 기술 개발에 신경 쓰지 않다가 결국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나가지 못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교훈삼아 우리의 미래를 부처님 말씀에 가만히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양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부처님 말씀처럼만 생활해 나간다면 전체적인 대요가 삶의 현장마다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자연히 빛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나아갈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쇼나로 마쓰다고노스케라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아프리카에 통상 무역 전문가를 두 명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는 정반대의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내용인 즉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아야 했는데 한 사람은 갔다 오더니 “다 맨 발로 다니는데 누가 신발을 사려고 하겠느냐”또 한 사람은 “모두 맨 발로 다니니까 당연히 신발을 살 것 아니냐”라는 격론을 벌였다는데,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상반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좌선하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순간순간의 정확한 판단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거대한 회사들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의 현장마다에서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우리의 자녀들이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돼버립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여러분의 아들딸이 부처님 말씀대로 훌륭하게 자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광명의 등불을 밝히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많이 드날린다고 그것이 우리들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얼마나 밝은가, 어두운 가 그리고 그것이 인류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가 아닌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가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그걸 가르쳐 주려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부디 내 마음의 등불을 밝혀 이 사회를 밝게 하고 많은 사람들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참다운 광명을 이루어 내십시오. 만약 우리가 부처님 법을 생활화하지 않으면 죄를 짓고 안 짓고의 문제를 떠나 자기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며, 공덕을 짓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일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이미 진리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마음의 진리를 크게 빛나게 하려면 부지런히 정진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 일가권속들, 친구들 모두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여 좀 더 적극적인 빛을 밝혀 주십시오.


우리가 논밭을 갈거나 씨 뿌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비록 우리의 몸은 편안해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공부도 안하고 절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 역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무한한 정진이 계속 되지 않으면 빛이 되지 않습니다. 비록 쉽게 되지 않더라도 법을 생활화해 계속 정진하다보면 인과법에 따라 반드시 그만한 복이 따라 옵니다.


부처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 스스로가 등불을 밝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리고 언젠가 떠난다 하더라도 밝은 빛이 되어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광명의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 정진하십시오. 그래서 이 땅의 무량 중생들에게 광명의 세계를 일러주러 오신 부처님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