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四聖諦) ②*
중생 삶의 모습, 괴로움과 그 원인
한치 앞을 모르면서 이러쿵저러쿵 내세우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자신은 늘 그렇게 문제없이 살아갈 것 같지만,
결국 자신도 힘든 환경에 처한 뒤,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것에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런데 잊고 있거나 단지 자각
하지 못할 뿐, 늘 쉽지 않은 삶의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우리 삶의 모습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 사성제
가운데 고성제(苦聖諦)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삶은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괴로운 삶의 현실을 자각
하는 것이야말로 그 괴로움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삶을 괴로움이라고 하는가?
즐거움도 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즐거움도
완전한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언젠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이어서 괴로움이 올 수도 있다. 물론 또 다른
즐거움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지속되지 않는다.
괴로운 삶의 현실 자각은
극복할 수 있는 ‘첫 걸음’
이러한 괴로움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자체 고통으로부터 오는 괴로움이다.
이를 고고(苦苦)라고 한다. 가령 병으로 인한 괴로움 등
이다. 둘째 항상 있지 않고 변해가기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다. 이를 행고(行苦)라고 한다.
가령 나의 젊음이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해 가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 등이다. 셋째 있던 것이 없어짐으로써
오는 괴로움이다. 이를 괴고(壞苦)라고 한다. 가령,
소중하게 여긴 재물 등을 잃어버림으로써 오는 괴로움
등이다.
또는 괴로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바로 사고(四苦)
또는 팔고(八苦)이다. 사고는 네 가지 괴로움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말한다. 생로병사는 모든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이다. 팔고는 사고에 네 가지 괴로움을
더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괴로움[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이
치성하여 이루어진 괴로움[오음성고(五陰盛苦)]이다.
(오음은 차후에 자세히 설명될 것이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자. 중생의 생로병사가 괴로움인
것은 맞지만, 진짜 생로병사 자체가 괴로움일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 자체가 무조건 괴로움일까?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게 된다.
이 땅에 오신 성인(聖人)도 그렇게 가신다.
그리고 성인도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 자체가
괴로움이라면 성인도 괴로워야 하지 않을까?
진짜, 삶 자체가 괴로움일까? 그러면 우리의 삶이 너무도
슬프지 않은가?
삶이 괴로움인 것은 분명히 원인이 있다.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하는 가르침이 바로
집성제(集聖諦)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이다. 무명은 밝음(지혜)이
없다는 뜻이니, 곧 어리석음이다. 이 무명에 의해 갈애가
생긴다. 갈애는 말 그대로 목말라 물을 찾듯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탐욕이라고 한다.
이러한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중생은 무엇이든 붙들고
놓지 못한다. 이로 인해 생로병사가 괴로움의 쓰나미가
되어 다가온다. 어리석음과 탐욕에 의해 좋아함과
싫어함을 가지게 되니, 이별과 만남이 괴로움으로 다가
온다. 그렇게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세상을 바로 보니,
늘 집착 속에 세상이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그냥 그렇게 있는데 말이다.
목경찬/불교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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