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현장

[스크랩] 팔공산 관봉 - 갓바위 부처님 친견..

마음정원(寂光) 2011. 10. 4. 10:32

       정말 와 보고 싶었던 팔공산 선본사...갓바위 부처님..~

       동화사에서 철야 수계실천 법회를 마친 뒤 각 단 포교사들과 함께 버스로 갓바위 부처님을 향해 출발했다.

       차가워진 날씨에 밤샘 철야를 했지만 피곤하기는 커녕 설레임과 환희심 가득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2,000명의 포교사들을 실은 버스행렬이 장관이었고 차분히 질서정연한 모습들이 보기에도 좋았다..~

 

 

팔공산 선본사 일주문..

 

스님께서 목탁을 치며 탁발을 하고 계셔서 도반 포교사와 함께 보시를 했다.

갓바위 부처님을 친견하고 내려오는 길에 스님께서 선본사를 찾는 불자들을 위해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안내서와 함께 갓바위 부처님 사진을 보시하시는 것을 보며

아름다운 회향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선본사를 찾는 불자들을 위해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에 관한 역사자료와 사진을 준비해서 나누워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른 아침부터 일주문 앞에서 아름다운 불법을

行으로 보여주시는 스님이 존경스러웠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갓바위 부처님이 계시는 관봉 정상을 향하는 길..

가파른 계단길이었지만 숲 속길을 걷는 듯 상쾌하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냥.. 말없이 걷는 분들도 있고 대비주 염불을 하시는 분도 있고

108염주를 돌리며 올라가는 불자도 보인다..

 

나는 그냥.. 그대로 바라보며

내딛는 발자국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두 눈에 보이는 대상을 물질과 정신으로 알아챔한다.

순간 순간이 수행의  연결이고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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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소원을 부처님께 기도할까..?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께서 내가 진정 바라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 주실까....

살아가면서 꼭 필요로 한 그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도.. 나는 기도라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한 것 같다. 초발심에 열정적인

신심으로 불타고 가나 오나 염불을 독송했던 불심삼매에 빠져

늘 환희심 가득했던 그 때를 생각해 본다. 확고한 신심..

이제는 기도보다는 수행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기도시간이 곧 수행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참 나..!!

무명과 탐진치 삼독으로

어둡고 탁해진 마음을 맑혀

참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통찰..

 

수행을 통해 참다운 불제자로 다가갈 수 있고

자유자재한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삼성각 주변

 

 

애자모 지장보살

 

어린 영혼들이나 영아 영가들이 추운 강가의 모래밭에 모여서 아버지가 그립다, 어머니가 그립다..

그리움에 울고있는 영혼들의 슬픔이 뼈를 깍는 듯 하다. 영아 영가들은 모레밭의 돌을 모아서 회향탐을

쌓는데 한 층은 아버지를 위해, 또 한 층은 어머니를 위해, 또 한 층은 형제들을 위해 회향탑을 쌓으며

부모, 형제들을 한없이 기다리지만 밤이 되면 어느듯 지옥의 귀신이 찾아와서 밤새워 쌓아오던 탑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무너뜨린 탑을 보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영가들에게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시어

" 너희들은 부모로 인해 단명해서 죽은 것이다. 이승과 저승은 아주 다른 세계여서 너희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없다. 그러니 이 명부세계의 지장보살님을 부모로 생각하고 의지하여라.." 하시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장보살님의 법의(法衣)를 펼쳐 어린 영가들을 포근히 감싸

삼도천을 건너 주신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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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영가들의 영혼을 위해 한 부인이 간절히 기도하는 뒤에서서

두 손 모두고 이들의 극락왕생과 명복을 빌었다..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간 수자령들.. 

태어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어린 영가들..  

얼마나 깊은 한이 스려있을 것인가.

다시 올 수 없는 이승이기에

이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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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 경내

 

선본사 대웅전 부처님..

 

도반 포교사들과 함께..

 

멀리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본다..

팔공산은 불교문화의 본산이고 영산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음의 깊은 세월을 보는 것 같이 평온함으로 바라다 본다.

말없는 산이 말을 하고 새 기운을 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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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 부처를 바라본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부처님

간절한 기도.. 기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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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포교사와 함께..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로서 활동한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처음 불교에 입문하여 불교대학에서 함께 공부하고 수행하며 지낸 세월이 새롭다.

군 부대, 교도소, 탈북자를 위해.. 다문화 가정..사찰안내.. 곳곳에서 활동하며

이웃과 사회에 아름다운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포교사들의 모습들에서

그 역할과 가치와 의미를 새로이 되세겨보게 한다.

 

참 좋은 도반..善友..法友..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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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광(寂光)

 

 

공양 보시물을 찾는 불자들..

무주상 보시행으로.. 간절한 정성과 지심귀명례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전에 올릴 공양물을 준비하는 마음들이 보인다..

 

항간에는 이러한 공양물을 값비싸게 판매하고..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한 기도를 위한 물품으로.. 욕심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으로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가슴으로.. 머리로.. 온 몸으로 부처님께 의지하고

부처님의 자비하신 품안에 안겨있는 모습들이 감동적이다..

부처님.. 부처님.. 자비하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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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 청정수..

한 걸음에 달려온 탓에 물 맛은 그야말로 꿀 맛이었다..

이렇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은혜 감사하나이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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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하고 싱거로운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 향기를 나누며..~

 

 

선본사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冠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또 머리에 마치 갓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기에 그렇게도 부른다.
관봉은 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과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 봉우리로서 해발 850m의 고봉(高峰)이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팔공산의 서남쪽이 모두 두루 조망(眺望)된다.

이 부처님은 화강암 한 돌로 만든 것인데,
몸뿐만 아니라 대좌도 역시 한 돌로 되어 있다.
불상의 광배(光背)는 없지만 뒤쪽에 마치 병풍을 친 듯
기다랗게 바위가 둘러져 있어 혹시 이 자연 바위를
광배로 삼았기 때문에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그 위로 두께 15cm정도의 흡사
갓모양을 한 얇은 바위가 얹혀졌다.
바위 아랫면에는 육계에 맞닿는 곳에 둥근 구멍을 파서
육계에 맞도록 하였으며, 웃면 가운데는 같은 식의
둥근 구명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주위에 화판(花瓣)을 조각했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인공적 조각임을 느끼게 한다.

얼굴은 양쪽 볼이 두툼하게 되어 있는 등 비교적 둥글고 풍만한 편이다.
입술은 굳게 다물어 대체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조화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마 한 가운데는 백호(白毫)가 둥글게 솟았고,
오똑한 코 아래의 인중도 두드러지고 있다.
두 귀는 길게 양쪽 어깨에까지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두 어깨는 반듯하고 넓어 당당한 신체와 잘 어울리고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비슷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이 수인은 석굴암(石窟庵) 본존불의 그것과
양식상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왼쪽 발 부근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약합(藥盒)을 올려놓았다.

불상에 표현된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인데 두 팔을 거쳐
두 무릎을 덮고 대좌 아래로 흘러내려 있으며,
불의의 옷주름을 표현한 선각(線刻)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가슴 앞에는 속옷의 일종인 승가리(僧伽梨)
혹은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보인다.
불상의 뒷면에는 옷의 표현이 없고 그냥 평면으로 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은 편이다.
대좌 윗부분에는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이 엎고 있는데
이같은 대좌 형식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이것은 팔공산 부근에 있는 군위(裙衣)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의 대좌형식과도 유사하다.

이 갓바위 부처님은 절에 전하는 바로는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선덕왕 7)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현재 보물 제 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의 학술상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
이름에서 굳이 약사불인 것을 밝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이 부처님의 명칭에 대해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異論)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왼손에 보면 약합이 있는 것이 뚜렷하다.
또 옛날부터 이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약사여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근거 없이 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어쨌든 손위의 약합이 분명한 이상 앞으로는
약사여래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현재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약 80평 가량 널찍하게 터가 닦였고,
바닥에 돌이 깔리고 주위에는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또 그와 함께 선본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좀 더 넓혀지고
계단과 철제 난간이 많이 보완되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한결 기도드리기 편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위 위 부처님 바로 앞에는 최근에 화강암으로 만든
단(壇)과 돌거북, 그리고 양쪽에 석등을 놓았다.

신자(臣子)가 정성을 쌓으매 구하는 것은 꼭 이루어질 것이며,
부처와 천신께서 약을 주시니 병이 낫지 않음이 없으리다.
이에 붉은 정성을 다하여 가만히 도우심을 바라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태상왕께서 해가 바뀔 때부터 병에 시달리셨다가,
저번에 하늘의 도우심을 받아 잠시 차도가 있었습니다.
건강해질 희망이 있다 하여 놀라운 기쁨이
평시보다 배가 더하였었는데, 나았다 더했다
서로 뒤치니,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나이다.
중생들의 생각은 대개 질병만을 걱정하나이다.
장년(壯年)의 때라도 오히려 위태롭고,
하루를 넘어도 벌써 괴로운데,
하물며 70세의 노쇠기에 다 석 달이 넘는 오랜 병이겠습니까.
좋은 의술이 없음을 탄식하고, 부처님의 함께 의탁하려 합니다.

듣자오니 석가모니께서 경을 설하실 때에 특별히
약사여래의 발원이 깊은 것을 말씀하시되,
"맹세코 병고에 신음하는 이를 구제하려고
손바닥에 바리를 들고 다닌다." 하였으니,
부처께서 어찌 헛말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이에 징험(懲驗)합니다.
이에 스님들을 모아 법회의 자리를 베풉니다.
천명의 합장 정진으로 백억 신(身) 부처님의 돌보심을 얻고자 합니다.

엎으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 태상왕이 여러 해 동안
귀의한 간절함을 어여삐 여기시고,
소인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정성을 생각하시와
큰 자비를 내리어 본래의 서원을 어지기 않으시와,
우리 태상왕으로 하여금 몸이 경쾌하고 기운이 순하여서
모든 병의 뿌리를 갑자기 녹여 없애며,
음식이 맛있고 잠이 편안하여 길이 만년의 수명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동문선(東文選)」제113권.

<정릉행태상왕구병약사정근소(貞陵行太上王救病藥師精勤梳)>

조선초기의 대학자 변계랑(卞季良,1369~1430)이 쓴
<정릉에서 태상왕의 병을 구하고자 약사 정근을 거행하는 글>의 내용이다.

숭유억불을 국가의 기본 시책으로 내세운 조선 왕조에서
약사불에게 국왕의 치병과 장수를 기원하는 애틋한 글이다.
유학으로 무장하고 불교를 등한시했던 당시 사람들에게도
약사불은 치병을 위한 귀의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약사불은 동방의 정유리세계(淨流璃世界)에 머물며
중생의 질병고를 치료하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다.
이 부처님은 12가지 커다란 원을 세워 중생들의 온갖
고통을 소멸시킬 것을 맹세하였는데,
특히 중생의 질병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다.
12가지 대원 가운데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大乘)의 가르침에 편안히 머물게 하거나
폭군의 악정에서 벗어나 사회적 부조리나 강도(强盜) 등의
해악을 면하게 하고, 기아(飢餓)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등의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발원과 역할은 대승불교의 불보살들에게서
보편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그러나
여섯 번째의
"일체의 신체장애자로 하여금 그 장애가 완전히
회복되도록 하는 서원"과

일곱 번째의
"온갖 질병을 다 없애고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도록 하는 서원"이 약사불을 대표하고,
또 이기능이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중생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약사신앙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유행하고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밀본법사(密本法師)의 영험담과 함께 다음과 같은
김양도에 관한 일화는 신라 시대의 약사신앙을 잘 보여준다.

승상(丞相) 김양도(金良圖)가 어릴 때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입이 붙어버리고 몸이 뻣뻣해지더니
말도 못하고 몸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집안 식구들은 귀한 아들이 석상처럼 굳어진 데
놀라서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김양도가 가만히 보니 큰 귀신 하나가 작은 부하
귀신들을 거느리고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음식이란 음식은 다 맛을 보는 게 아닌가.
또 푸닥거리를 하러 온 무당이 굿을 할라치면
귀신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 욕을 해대는 통에
무당들도 쫓기듯 가버리는 것이었다.

김양도가 이런 사실을 알리고 싶어도 입이 붙어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김양도의 아버지는 무당굿을 해도 소용이 없자
이번에는 법륜사의 스님을 초청해서 불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이 경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곧 큰 귀신이 나타나
부하 귀신들에게 쇠방망이로 스님의 머리를 내리치게 하였다.
쇠방망이를 맞은 스님은 피를 토하여 죽고 말았다.

김양도의 아버지는 집에 큰 귀신이 붙은 것을 알고
비로소 밀본법사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사람을 보내 청했더니 곧 오겠다는 전갈이 왔다.
밀본이 오기로했다는 말을 들은 귀신들은 아연질색했다.
부하 귀신들은 겁에 질려 수군거렸다.

"밀본법사가 오면 우리가 불리할텐데 지금이라도
빨리 피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러자 큰 귀신이 눈을 부라리며 윽박질렀다.
"밀본이라는 자가 도대체 뭔데 너희들은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느냐?
제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해도 내 앞에서는 어림없다."

귀신들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긴 창을 꼬나잡은
대역신(大力神) 여럿이 나타나더니 귀신들을 붙잡아 꽁꽁 묶어 버렸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천신들이 나와서 공손이 두 손을 모으고
둘러서서 기다리는데 마침내 밀본법사가 도착했다.

김양도는 그 자리에서 병이 나아 붙었던 입이 열리고
굳었던 몸이 풀렸다. 김양도가 그 동안 자기가 본 일을
낱낱이 얘기하자 모두들 놀라며 새삼스럽게
밀본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양도는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어
흥륜사에 미륵상과 좌우보살상을 만들고 금색 벽화를 그려넣는 등
일생 동안 부처님 받들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출처 : 산사의 풍경소리
글쓴이 : 寂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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