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위빠사나는 어떤 수행인가?

마음정원(寂光) 2011. 9. 29. 18:03

1) 위빠사나는 어떤 수행인가?

 

위빠사나 수행은 현재 이 순간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sati. 觀)을 하는 수행입니다.

이 말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마음이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을 되돌아보아 어떤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만나는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경험에 의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만의 색안경으로 대상을 판단하고 분별하며 살아왔습니다.

여기에 한 물건을 놓고 100명이 바라보면 100개의 견해가 나옵니다.


우리는 비록 감각기관과 부딪치는 밖의 대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이미 저장해놓은 '나'라는 고정관념으로 시비분별하여 판단하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며 업을 짓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 보는 알아차림 수행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온갖 번뇌와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항상 괴로움의 원인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의 노예가 되어 자기 견해만을 주장하면,

상대도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주장하고, 그래서 충돌이 있고,

그것에서 어떻게든 자기가 이기려는 욕망이 일어나 다시 업을 짓고 괴로움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바른 눈이 없으면

매 순간 고통을 재생산하는 일만 하게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이 현재를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현재를 깨어서 보는, 알아차리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현재를 있는 그대로 깨어서 보는 수행자는

매 순간 자신의 관념과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어서,

대상을 시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그 자리에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알아차림의 힘들이 쌓이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법칙까지도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대한 법의 성품을 통찰하는 안목이 생기고,

이렇게 생긴 통찰지혜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집착을 놓게 해 줍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의 노예에서 벗어나,

바른 생각과 말과 행위로 모든 괴로움을 소멸한 최고의 행복인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위빠사나는 한 마디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괴로움을 지혜로 밝게 비추어 보아,

다시 괴로움으로 돌아올 만한 행위를 하지 않고,

현재를 알아차림으로 수용하여, 그 자리에서 즉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입니다.

즉 번뇌를 만나면, 그것을 재료로 알아차림을 해서

번뇌를 밝은 지혜로 바꾸어 가는 수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