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뜨락

[스크랩] 일체유심조

마음정원(寂光) 2011. 9. 29. 12:10

 

가난한 어린 시절이 있어 좋은 것은,

구수한 추억거리가 많다는 것일 게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여자도 내 옆에 없을 땐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이 생각나고(막상 보면 생각 안 남)

가난하면 먹고 싶은 것이 많이 아른거려 음식에 대한 지식이 는다.

하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

혼자 있어도 생각할 거리가 줄줄이 이어지므로 무료하지 않다.

배가 고프다고 배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앞으로 할 일을 줄줄이 늘어 놓고

틈만 나면 상상해 본다.

로또만 돼 봐라.

 

밥 외에 간식거리라곤 떡이나 감자, 고구마, 옥수수가 전부였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어쩌다 이웃집에서 과일이나 과자가 들어오면,

아버지 몫을 조금 떼어 놓고 모두 우리 형제들 방으로 들여 놓으셨다.

사이좋게 나눠 먹으란 말을 옵션으로 꼭 달았지만

나는 먹는 순간부터 형이 먹은 개수와 내가 먹은 개수를

세어보고 비교해 보느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먹은 음식의 이름은 아는데 그 맛은 통 기억이 없다.

하긴, 그 때는 어떤 것을 얼마나 많이 먹어 봤냐가 중요했으니

맛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도 없었다.

 

여튼,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식성 좋은 형은 나보다 더 먹은 것도 모자라 몇 개 남은 것에

침을 발라 놓았다.

급할 땐 아예 뱉었다.

 

이런 더러운 짓은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니

당시로선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 놓기론

침을 묻히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었나 보다.

그러니까 침이란 내가 묻힌 것은 괜찮지만,

남이 묻힌 것은 더럽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여자, 좋은 남자, 나 혼자 갖고 싶은 사람을 보면

남이 손댈까 걱정돼 침을 묻히는 것이리라.

 

이런 연유로 나는 침이 묻은 것은 더럽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다른 손님이 먹다 남은 음식을 다시 내놓는 식당은 불결하다는 등식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연모하던 여자도 남의 침이 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로

내 마음 속에선 끝이었고,

그 때까지 천사 같던 얼굴도 한순간에 혐오와 미움의 대상으로 뒤바뀌곤 했다.

-요즘은 안 따지네요. 켁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풀 뽑다 세인트존스워트 밭에서 발견한 반하. 으뜬 늠들한테는 풀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쁘다. ^^*>

 

그랬다.

내가 내 입으로 직접 침을 발라 보기 전까지는

침 흘리고 다니는 놈들처럼 지저분해 보이는 놈이 없었고,

침이란 최고로 더럽고 독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 더러운 침을 내 스스로 받아 먹게 될 줄을...

정확히 스무 살 때.

더러운 침이 나오는 입에 내 입을 갖다 대는 아주 해괴한 짓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이런 ~~~.

그러나 꼴깍꼴깍꼴깍....  나도 주책이지. 호호호^^*

 

그게 그렇게 달콤한 것인 줄은

적어도 그 때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찍이 원효대사가 말씀하셨다.

일체유심조라~~(한문으론 쓸 줄 모리네요)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다.

침이라고 해서 다 더러운 것은 아니다.

남이 묻힌 침이라고 해서 다 찝찝한 것은 아니다.

 

남의 침을 쪽쪽 빨아 먹은 그 날 이후

나는 숟가락 젓가락을 가리지 않는다.

아부지 어무니가 남긴 밥은 그 수저 그대로 그냥 먹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네, 눈으로 하는 것이네 아는 척 하지만,

나는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라 믿는다.

길거리의 여자가 술을 팔고, 웃음도 팔고, 가슴을 팔고, 몸도 팔지만

입술은 팔지 않는다.

그건,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한, 침은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땡 볕에 일하는 날이 많아 몸이 귀찮아진 요즘,

더러운 것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게을러졌다.

빗물에 젖은 날이 아니라면 논둑 밭둑에 그냥 그대로 앉아 쉬고,

몸을 구부리기 힘들 땐 땅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하고,

내 밭에 있는 것은 흙만 털고 그냥 먹는다.

하긴 오염된 지하수를 사용하는 우리 집에선,

씻으면 더 더러워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집 겸둥이 사랑이. 팔이 하나 없어서 글치 이쁜 짓은 요놈이 다 한다> 

 

집을 비운 사이 여기저기 싸 논 개새끼들의 똥도

빗자루 가지러 가는 게 귀찮을 땐 급한 대로 손으로 들어낸다.

내가 사는 곳에서 더럽고 위험한 것은 농약이지, 흙이나 거름 찌꺼기가 아니다.

내가 땀에 절은 옷에 듬성듬성 흙 먼지를 묻힌 채 

딸기를 따 옷깃에 한번 비빈 후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더럽다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지들 생각이다.

 

옷에 묻은 흙은 털면 그만이고, 손에 묻은 똥도 씻으면 그만이다.

정작 더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똥이 아니고,

별라 깔끔 떠는 내 마음이 문제다.

 

내가 생긴 대로, 있는 대로 그리 살아서 그런지

차림새가 지나치게 깔끔하거나

방금 개장한 아파트 모델 하우스 처럼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된 집을 보면

부럽기는 커녕 언능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앞선다.

집 주인 놈은 물론 그 밑의 식솔들까지 죄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

 

혹시 움직이다 어딘가 묻어있을 흙이라도 하나 떨어질까

화장실 가는 것도 망설여지고,

말도 자로 재듯 꼬치꼬치 따져 들을 것 같아 물어보는 말만 간단히 답한다.

별라 목이 마르고 오줌도 자주 마렵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나를 적당히 얕잡아 보는 것도

다 내가 적당히 널어놓고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긴 것과는 달리 마음도 너그러울 것이라 생각해 주기 때문일 듯싶다.

 

그래서......

가뜩이나 바쁜 농사철에

집 안에서 기르는 개새끼가 4마뤼로 늘어나면서 할 일도 늘었지만,

똥 한 두 덩어리 정도는 안 치우고 그냥 놔둔다.

먹고 난 밥그릇도 개수통에 적당히 남겨 둔다.

오는 사람 편한 마음으로 쉬었다 가라고.

 

 

 

 

출처 :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
글쓴이 : 한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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