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스크랩] 금강산 남쪽 끝자락 건봉사

마음정원(寂光) 2011. 7. 2. 18:08

 설악산 봉정암에서 새벽일찍 출발하였기에 금강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건봉사 참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도반스님 덕분이었죠.

산행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운전해준 도반스님 고맙습니다.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

 

금강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사찰 맞죠?

편액에 금강산이라고 쓰여 있네요.

 


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됩니다.
여기에 신도 1,820인이 참여하였는데, 그 중에서 120인은 의복을,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습니다. 787년에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서 극락에
왕생하였고,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아미타 도량이 되었습니다. 고려말 도선국사가 절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서봉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358년에는 나옹스님이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여
비로소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이 되었습니다.

 

1465년에는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는데,
성종은 효령대군, 한명회, 신숙주, 조흥수, 등을 파견하여 노비,
미역밭과 염전을 하사하고 사방 십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곳으로 호국의 본거지이었으며, 1605년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에
강화사로 갔다가 통도사에서 왜군이 약탈하여 갔던 부처님
치아사리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하였습니다.

 

1802년에는 용허 석민스님이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며,
1851년에는 벽오 유총스님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78년 4월 3일에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는데
다음 해에 대웅전, 어실각, 사성전, 명부전, 범종각, 향로전,
보안원, 낙서암, 백화암, 청련암을 중건하였습니다.

 

1881년에는 만화 관준스님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설치하였고,
1906년에는 신학문과 민족교육의 산실인 봉명학교도 설립하였습니다.
1908년 제4회 만일회를 회향한 뒤 금암 의훈스님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설하고 옛부터 있던 돌무더기의 소신대에 31인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1921년 인천포교당과 봉림학교를 세웠으며,
한암스님을 청하여 무차선회를 여는 등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요 31본산의 하나로서 명망을 떨쳤던 곳입니다.

 

6·25전쟁 전에는 전각이 총 642칸에 이르렀으나 6·25전쟁 때
거의 폐허화되었다.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봉사 홈피에서 옮겨옴

왼쪽에 있는 요사채는 한창 내부수리중이었습니다.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

 

 

 

대웅전 오른쪽엔 명부전(지장전)이 있습니다. 

 

지장보살님

 

건봉사에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작은 연못이 있었구요.

그곳에 이렇듯 예쁜 수련이 피어 있었습니다.

 

 

 

도란 도란 그들의 속살거림이 들리는 듯 합니다.

두 송이가 피어 있어 다정해 보입니다.

 

보궁 전각입니다.

 

들어가는 문이 참 아름답습니다.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답다는 거 실감하시겠죠?

 

저 등을 일년내내 달아 놓는지 모르겠으나 참 아름답더라구요.

색색의 등이 햇살이 받아 내부를 환하게 하더군요.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라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당안에 부처님이 아니계십니다.

유리창을 통해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이 보이죠.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입니다.

 

진신사리탑 좌우로 부도?가 있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문을 나서려다 동그란 문을 통해 보여지는

문밖의 풍경이 동그란 문과 잘 어울렸고, 새로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금강산에 있는 사찰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신

어느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당시에도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고, 밤에도 산행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산이었는지 그 말만 들어도 알 것 같습니다.

설악산을 자유롭게 갈 수 있듯 금강산에도 그렇게 마음만 내면

갈 수 있는 그런날이 오길 희망합니다.

 

 

 

 

출처 : 德의 동산
글쓴이 : 은빛물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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