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참회는 행복의 지름길 - 혜국스님

마음정원(寂光) 2011. 6. 21. 18:25

 



 참회는 행복의 지름길 / 혜국스님(충주 석종사 선원장)
 
불자들이 자주 외우는 천수경에는 
다음과 같은 참회게가 있습니다. 
이 참회게는 천수경만이 아니라, 
많은 불교의식에서 공통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게송입니다.
<我昔所造諸惡業 아석소조제악업 >
옛적부터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皆由無始貪瞋痴 개유무시탐진치> 
크고 작은 그 모든 것 탐•진•치로 인함이며 
<從身口意之所生 종신구의지소생 >
몸과 입과 뜻을 따라 나온 허물을 
<一切我今皆懺悔 일체아금개참회> 
내 이제 모든 죄를 참회하나이다.

이 참회게에서는 무엇을 참회하라 하였습니까?
 ‘나 스스로가 지은 모든 악업을 참회하라’ 하였습니다. 
그 악업은 언제부터 지은 것인가? 
무시(無始)! 시작을 알수 없는 
그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온 죄업들입니다. 
 
현세에 사는 우리는 그 죄가 되는 악업들 가운데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부지기수 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현세에서 지은 업을 생각하면 
전혀 까닭을 알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가는 일 또는 좌절감,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내적 외적인 단점들,
 ‘내가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가’하는 
생각과 자기를 향한 불평불만,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등 
주변의 사랑해야 할 사람을 향한 불평불만 등, 
이해하지 못할 일과 이해되지 않는 의혹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일과 의혹들이 
지난 세상의 악업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곧 지난 세상과 지난 시간에 지은 악업 때문에 
마음처럼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업들 때문에 바라는 바대로 살지를 못하고 
원하는 바대로 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죄업, 이 악업은 어떻게 하여 맺혀지게 되었는가? 
악업의 근원은 무엇인가? 
바로 ‘나’ 속에서 일어난 탐심. 진심. 치심 때문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 세가지를 마음은 
‘나’를 죽이는 독을 품고 있으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삼독심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가장 큰 적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이 삼독심 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대로 이루고 악업을 녹이려고 하면 
탐심, 진심, 치심이라는 내 마음의 적부터 비워버려야 합니다. 
바깥의 절대자에게 죄를 사해주고
 
복을 달라고 하기에 앞서, 욕심내고 화를 내고 
어리석음에 빠지는 ‘나’를 이겨내고 
나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삼독심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악업의 근원이 되는 삼독심은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나에게 맞으면 취하고자 하는 탐심을 일으켜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나에게 맞지 않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성내는 진심을 일으켜 갖가기 좋지 않은 업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 탐심과 진심의 밑바닥에서 
이 둘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치심 입니다. 
치심의 ‘치’는 나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와 진리가 둘이 아니요 
나와 이 세계가 둘이 아님을 알지 못하여,
 ‘나’의 이기적인 굴레 속에 갇혀버린 마음이 치심입니다. 
이렇듯 진리에 입각하거나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사랑’에 빠져 사는 것이 치심 입니다. 
나 중심의 사랑, 나의 이기심이 바로 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치심에 나에게 
맞는 것이 비치면 탐심을 발하고, 
나에게 맞지 않게 느껴지면 진심을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삼독심이 마음속에서만 일렁일 때는 
그렇게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탐심과 진심이 차츰 증폭되어 
나쁜짓을 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구체화되면, 
몸과 말과 뜻으로 십악업을 짓게 됩니다. 
나아가 그 악업의 매듭이 우리를 결박하여 
고통 속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뜻대로 마음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과정을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십악업의 매듭부터 풀어야 하며, 
십악업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일체아금개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지었던 ‘모든 죄를 
지금 모두 참회한다’는 것입니다. 
 
이 참회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참회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거듭 맹세해야 합니다. 
물론 무시 이래의 수많은 생애 동안 지어온 버릇을 
얼마 안되는 참회의 시간을 통하여 버리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가고 맹세하다 보면 
차츰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게 됩니다. 
먼저 십악업 참회법을 살펴 봅시다.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탐애. 진에. 치암 -이 십악업은 
몸과 말과 뜻의 삼업이 
탐. 진. 치의 삼독심을 바탕으로 삼아 움직이게 될때 생성됩니다. 
곧 몸으로 짓는 세가지 악업이 살생. 투도. 사음이요,
 입으로 짓는 네가지 악업이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이며,
 뜻으로 짓는 세가지 악업이 탐애. 진에. 치암으로, 
이들 모두를 합하면 십악업이 됩니다. 
 
바로 이 십악업이 ‘나’를 온전한 상태로 두지 않고 
나의 정신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 십악의 업이 나의 앞길을 가려 중생계 속에서 헤매이게 합니다.
 
 
이 십악업이 나의 발목을 붙잡아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방해 합니다. 
그러므로 삼독심과 십악업으로 인해 빚어진 슬프고 부자유스러운 나의 운명을, 
이제는 내가 주체가 되어 행복하고 자유롭게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무엇을 통하여? 
참회를 통하여!
십악업을 십선업으로 바꾸어 보다 
복되고 자유롭고 맑게 살 것을 맹세하며, 
나 속의 참된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참회입니다. 
이제 십악업의 각각을 바르게 참회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봅시다.
1)	살생업 참회
생명을 끊는 살생죄를 확대하여 해석하면 
나와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물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우주와 자연을 파괴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이 업을 잘 벗어나려면 남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기심을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좌절시키지 않을 뿐더러, 
남을 우습게 여기거나 아프게 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살생업에 대한 가장 좋은 참회는
 이 우주 전체가 한 생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요, 남을 해치는 것이 
나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길임을 자각하면서, 
나의 영혼을 곱게 가꾸어 갈때 
진실로 살생업의 참회가 이루어집니다.
2)	투도업 참회
투도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죄업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이 죄업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은 가난이라는 업구덩이 속에 빠져 삽니다. 
그런데 도둑질하는 이 투도의 밑바닥에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처럼 또는 남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겟다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투도업을 잘 참회하려면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것은 물론이요, 
남의 아름다움. 재산. 명예등을 나의 것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나의 복대로 살겟다’는 맹세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 우리가 ‘나의 인생은 남의 인생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면 다시는 투도업을 짓지 않을 수 있게 되고, 
차츰 부처님과 같은 크나큰 복덕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3)	사음업 참회
사음. 곳 삿된 음행이 무엇입니까? 
흘러가는 ‘나’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여 
정도가 아닌 옆길로 그릇되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사음의 길은 ‘나’자신을 이기지 못하여 
흔들리고 방황할 때 열립니다. 
요즘은 성 개방시대가 되어 사음죄를 범하기가 많이도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성 개방시대라 하여 사음을 방치하여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사음은 로맨스가 아닙니다. 불륜입니다. 
남에게 불륜이 적용되면 나에게도 
불륜이 적용된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만약 한두 차례 사음죄를 범하였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참회하십시오. 
 
‘다시는 욕망을 따라 그릇되게 흘러가지 않고 
중심을 잡아 고고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 사음업이 능히 녹아내릴 것입니다
4)	망어업 참회
망어. 곧 거짓말은 남을 속임은 물론이요 
‘나’의 지실을 져버리는 행위입니다. 
 
왜 진실한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습니까? 
거짓 주인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거짓 주인을 따라 현실을 감춘 채 
허영에 빠지고 허둥거리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어업을 참회할 때는 
주된 주인공이 되어 살면서 참된 말을 하며 
살겠다는 맹세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진실한 마음을 회복해가지면 
망어업에 대한 온전한 참회가 이루어 집니다.
5)	기어업 참회
기어는 ‘비단결 같은 말’로 풀이 됩니다. 
남을 속이고 이용하기 위해 비단결 같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곧 부당하게 아첨하거나 유혹하는 말이 기어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익을 위해 기어를 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에게 온전한 복덕이 갖추어져 있는 
마음부처가 있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면, 
 
남을 이용하고 속이는 기어를 내뱉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어를 내뱉게 되면 참된 ‘나’는 
더 많은 아픔을,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 이익을 위해 
아첨하거나 유혹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며 
맹세하고 지켜나갈 때 쌓여있던 기어업이 붕괴되는 것입니다.
6)	양설업 참회
양설은 두개의 혀라는 뜻입니다. 
한결같은 말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하여 
하나의 혀를 두 혀처럼 놀린다는 것입니다.
 
곧 다른 말을 하여 서로를 이간질 하는 것이 양설입니다. 
세상에는 이 양설 때문에 싸움을 하고 원수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화합을 깨트리는 양설, 서로를 등지게 하는 양설, 
이 경우 양설은 살생이나 투도와 같은 큰 죄업으로 나아갑니다. 
 
런데 이 양설을 탓하기 전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쪽으로 말하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말하면 저쪽으로 쏠려가는 
우리들의 자세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도위에 서 있다면 
이쪽저쪽으로 흔들릴 까닭이 없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습니다 .
 
이처럼 모든 흑백논리를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며 사는 것! 
이것이 양설업을 제대로 참회하는 방법입니다.
7)	양설업 참회
악구는 욕이며, 욕을 듣고서 시원해 할 사람은 없습니다. 
악구 때문에 서로가 등을 돌리고, 
심하면 싸움질에 죽이기까지 합니다. 
 
리고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나’의 마음이 탐. 진. 치 때문에 
거칠어졌기 때문에 욕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을 바꾸십시오. 
탐. 진. 치가 아니라 부드럽고 평화롭고 선하고 순수한
 ‘나’의 마음자리를 지키고자 할때, 
부드럽고 평화롭고 선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 
악구때문에 쌓였던 업들이 녹아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8)  9) 10) 탐애. 진에. 치암업의 참회
치암, 곧 탐욕심으로 사랑하고, 
속으로 혼자 화를 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어두운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죄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죄는 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한 생각이 뿌둘어지면 말도 행동도 그릇되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다생다겁으로 이어지는 업은 말이나 행동보다도
 ‘어떠한 생각을 마음밭에 심었느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참회하여 행복과 해탈을 구하는 이들은 
죄업의 근원이 되는 ‘나’의 그릇된 생각, 
곧 탐애와 진에와 어리석음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미세한 마음의 동요를 어찌 쉽게 느낄 수 있겠습니까? 
뿐만이 아닙니다. 
삼독심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중생으로서는 
삼독심을 비우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참회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염불하며 참회하기, 절하며 참회하기, 주력하며 업 녹이기, 
독경하고 사경하기, 참선하며 해탈하기등 
참으로 많은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방법중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실천하면 
삼독심을 비롯한 업장이 문득 녹아 내립니다. 
 
금강경 독경을 예로 들어 봅시다. 
금강경의 영험이 크다면서 많은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합니다.
 
그러나 한번 보고 읽는다고 하여 업장들이 녹아내리지는 않습니다. 
 
거듭거듭 독송하고 뜻을 새겨서, 
‘이 금강경 속에 내 마음을 닦는 법, 
내 마음을 돌아보는 법.
 
내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었었구나.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구나.’를 
깊이깊이 느끼게 될때 
참된 참회가 이루어지고 모든 죄업이 녹아내립니다. 
 
또한 그때가 되면 부처님의 뜻과 자비광명을 크게 느낄 수 있게 되고, 
행복으로 가득한 불국토의 모습이 저절로 가슴에 새겨지고 
‘나’의 것으로 간직되는 것입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도하고 염불하고 절하고 주력하고 
독경하고 사경하고 참선하는 
이 순간은 과거의 무량한 생애동안 지어온 모든 티끌, 
곧 온갖 번뇌망상과 죄업들을씻어내는 순간입니다. 
 
불보살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마음의 티끌들이 
저절로 가라앉고 업장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씻는 일에는 열심입니다.
 
얼굴이며 손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열심히 씻습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비누칠을 하고 때를 벗기며 잘 씻습니다. 
그리고 그 몸에 화장까지 잘해 줍니다.
 
하지만 죄업을 씻어 내거나 마음의 때를 씻는 일에는 무심합니다. 
실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때를 씻고 
죄업을 씻는 일인만큼, 
아무리 생활이 바쁠지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마음의 때를 씻어내야 합니다. 
 
마음의 때를 씻고 마음의 때가 씻겨지는 것! 
이것이 참회입니다.
기도할때, 염불할때, 참선할때, 
경전을 읽을때, 사경을 할때, 
절을 할때, 진언이나 다라니를 외울때 
덕지덕지 붙어있던 마음의 때들이 씻겨지고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저것 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 가지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불자들이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마음의 때를 
벗기고 업장을 녹이다가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금 과연 업이 녹고 때가 벗겨지고 있는 것인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악업이 녹아내리고 마음의 때가 벗겨지는 것을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다면 
강한 확신을 느낄 것이고, 
그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눈은 그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마음의 눈만이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가 있는데, 
때가 되어야만 업장이 소멸되고 
벗겨졌음을 스스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갖고 마음의 때를 씻고 
죄업을 녹이는 일에 매진하십시오.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참회는 세척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스스럼없이 ‘잘못했다’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자연과 대우주를 향한 참회, 
보이지 않는 악업들에 대한 참회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고 풀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염불. 예불. 사경. 주력등을 하면서
 
상대를 향해 마음속으로 ‘잘못했다’고 하고 
상대의 행복을 축원해 주십시오. 
 
마음의 때가 씻겨 내려가고 
업장이 소멸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생다겁 동안 쌓아온 우리의 업장!
그 업장은 단단하고 무겁기가 바위덩어리와 같아서 
물에 넣으면 그냥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배 위에 실으면 바다를 건너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곧 배의 역활을 하는 대자비의 불보살님들께서 
업장이 깊어 고해속을 허덕이는 우리를 능히 행복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성껏 귀의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실로 우리가 해야 할 바는 지성껏 참회하는 일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욕심의 참회나 애착의 참회가 아니라 
나 자신의 허물을 비우는 무조건적인 참회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삼독심과 죄업을 비우는 
무조건적인 참회를 하면 
불보살님만이 우리의 참회에 
감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보살님을  공경하고 따르는 
천인들과 용왕등의 각종 
신중들도 모두 기뻐하며 
참회하는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뿐만이 아니라, 
대우주에 충만 되어 있는 맑고 밝은 에너지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게 됩니다.
 
우리가 참다이 참회하여 마음의 때를 씻고 
업장을 소멸하게 되면
 
‘나’의 몸에서는 광명이 나오게 되고, 
그 광명으로 소중한 가족과 친척. 
이웃들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내어 줍니다. 
 
참회를 통하여 얻은 지혜의 빛으로 모두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회하여 이룩한 나의 마음으로는 
좋고 좋은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있게 됩니다.
 
곧 이제까지의 보잘것 없던 ‘나’와는 다르게, 
나와 남을 함께 살리고 이롭게 하는 
무한능력을 지닐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보살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마음의 때를 씻고 
삼독심과 업장을 소멸하고자 하는 불자들이여,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합시다. 
 
남편을 향한 마음, 아내를 향한 마음, 
아들딸을 향한 마음, 친구를 향한 마음, 
지금까지 서운했던 이들을 향한 마음, 
먼저 먼 곳으로 가 천상락을 누리는 이와 
지옥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향한 마음. 
그 모든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부터 활짝 열도록 합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참회가 시작되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그 속에
 업장소멸의 길. 소원성취의 길이 있습니다.
불자들이여, 부디 참회를 잘 하여 
‘나’의 고향집에서 평안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깊이 축원 드립니다.
참회진언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출처 : 법공양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