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시작은 삼업을 청정하게 닦기를 서원하는 것입니다.
- 해강스님 (실상사 주지)
산 너머에는 벌써 보름 전부터 매화꽃이 만발하였다는 소식이 있는데, 우리 도량에는 이제야 매화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자연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아무리 잡고 늘어져도 가죠. 이렇듯 오고 가는 것이 세상의 흐름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3월이 가고 4월이 왔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무엇이 가고 무엇이 왔을까요? 간 것도 온 것도 없지요.
백양사 큰 스님이셨던 학명스님의 시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백양사 큰 스님이셨던 학명스님의 시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는 해니 오는 해니 분별하지 말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세월이 간다 온다 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우리 삶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유용한 구분일 뿐입니다.
우리는 시간만이 아니라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의미를 추구하고 지키고 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삶은 의미부여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가, 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우리의 삶을 잘 가꾸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원법회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첫 번째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절에 와서 한 달을 준비하고 서원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행복하게 가꿔가고 싶어서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준비하는 사람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결과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서원기도는 내 삶의 결을 곱게 다듬어 가는 수행이요, 도(道)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수행자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수행자라 부릅니다.
오늘 우리는 1시간 정도 기도를 하면서 ‘석가모니불’을 염불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설마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부르면서 마음으로는 어제 산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지는 않으셨겠죠? (웃음)
어떠셨습니까? 설마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부르면서 마음으로는 어제 산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지는 않으셨겠죠? (웃음)
올바른 기도법은 이렇습니다.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부르고 마음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형상을 그려 모십니다.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부르는데, 마음은 이곳저곳 다른 곳을 헤매곤 하지요. 그래서 그렇게 이곳저곳 헤매는 마음을 잡아놓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불상이에요. 그래서 절에 와서 기도할 때는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눈으로는 부처님의 형상을 보면서 마음에 새깁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서서 하셔도 좋고 절을 하셔도 좋습니다.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부르고 마음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형상을 그려 모십니다.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부르는데, 마음은 이곳저곳 다른 곳을 헤매곤 하지요. 그래서 그렇게 이곳저곳 헤매는 마음을 잡아놓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불상이에요. 그래서 절에 와서 기도할 때는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눈으로는 부처님의 형상을 보면서 마음에 새깁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서서 하셔도 좋고 절을 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과 행동으로 기도를 하는데, 이 세 가지가 흐트러지지 않고 합일되어질 때 온갖 잡생각이 사라지고 기도에 빠져들게 되죠. 이것을 염불삼매(念佛三昧), 관상삼매(觀像三昧), 관불삼매(觀佛三昧)라고 합니다.
아까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살피고 다짐하고 서원을 세우는 것이 수행이라고 했죠?
옛스님들께서는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瀞) 속에 수행이 있고, 또 이것으로써 수행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 즉 걷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를 말하죠. 바로 우리의 일상사, 우리의 삶전체를 말합니다. 과연 이것을 떠나 따로 수행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삶속에서의 일거수 일투족 그 자체가 수행이고 그 속에서 수행의 결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옛스님들께서는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瀞) 속에 수행이 있고, 또 이것으로써 수행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 즉 걷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를 말하죠. 바로 우리의 일상사, 우리의 삶전체를 말합니다. 과연 이것을 떠나 따로 수행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삶속에서의 일거수 일투족 그 자체가 수행이고 그 속에서 수행의 결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법회를 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요. 그러다보니 어떤 분들은 “저 스님 법문은 했던 소리 또 하고 매번 똑같은 말씀만 하신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맞습니다. 매번 똑같이 강조하는 말입니다.
「수행이란 삶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삶이란 다른 게 아니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그 삶을 3가지로 묶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삶은 ‘삼업(三業)’ 즉 몸쓰고 말쓰고 마음쓰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삼업을 잘 쓰는 것입니다. 몸을 잘못 쓰는 것에서 잘 쓰는 것으로, 잘못 쓰는 말을 잘 쓰는 것으로, 마음 씀씀이를 잘못 쓰는 것에서 잘 쓰는 것으로 바꿔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정리하면 삼업을 깨끗하게 다듬어가는 것이 수행이고, 우리가 일상사, 삶속에서 삼업을 잘 쓰는 것이 부처되는 길이요, 부처의 삶입니다.」 - 이게 제가 법회 때마다 반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할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조주스님은 ‘차나 한잔 마시게’라는 같은 말씀 하나로 수행자들을 가르치셨고
구지선사는 어떤 물음에도 오로지 엄지손가락 치켜세워 보이는 그 하나로 법문을 대신하셨습니다. 천년이 넘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명한 얘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행은 삶의 삼업을 깨끗이 닦는 것이요, 그것이 부처되는 길이며 곧 부처의 삶이다’라는 말은 아무리 반복해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니 저는 이 말 하나로 법문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부처가 되고자 함인데 부처가 되려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 배웠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삶은 부처 되는 삶입니다. 그것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고 수행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지요.
누차 말씀 드렸듯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만드는 길’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고 ‘부처가 되어서도 사는 방식’입니다. 이게 부처의 삶이죠. 그러면 어떤 것이 부처가 되어 진정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삼업을 부처처럼 청정하게 닦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 되는 삶의 길이요 삶의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삼업을 청정하게 닦을 것인가.
한마디로 ‘부처님처럼’ 마음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죠. 그런데 ‘부처님처럼’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막연하게 들리실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좀 더 구체화하여 드러내놓은 부처님의 가르침, 모든 출가자와 재가 불자들에게 부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지 간에 이것은 반드시 병행해서 지켜야 한다고 하신 것, 그게 바로 다섯 가지 계율입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이 삶을 아름답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가꿔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죠.
한마디로 ‘부처님처럼’ 마음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죠. 그런데 ‘부처님처럼’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막연하게 들리실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좀 더 구체화하여 드러내놓은 부처님의 가르침, 모든 출가자와 재가 불자들에게 부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지 간에 이것은 반드시 병행해서 지켜야 한다고 하신 것, 그게 바로 다섯 가지 계율입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이 삶을 아름답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가꿔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죠.
오계(五戒)
불살생(不殺生) :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 것
불투도(不偸盜) :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 것
불사음(不邪淫) : 정당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지 말 것
불망어(不妄語) :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불음주(不飮酒) : 술을 마시지 말 것
불투도(不偸盜) :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 것
불사음(不邪淫) : 정당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지 말 것
불망어(不妄語) :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불음주(不飮酒) : 술을 마시지 말 것
다섯 가지 계율에 조금 덧붙여 놓은 게 10계입니다.
이 오계를 기준으로 이것에 맞게 내가 삼업을 쓰고 있는가, 범하며 쓰고 있는가를 살피시면
막연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 오계를 기준으로 이것에 맞게 내가 삼업을 쓰고 있는가, 범하며 쓰고 있는가를 살피시면
막연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면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서원을 세울 것인가.
전 시간에 말씀드린 세 가지 중 한 가지, 인과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수행을 한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절을 수천 배 했다', '금강경을 여러 번 독송했다', '참선을 수년씩 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삶에서 작고 부족하나마 수행하기 전과 수행한 후 변화된 것, 달라진 것이 있느냐입니다.
전 시간에 말씀드린 세 가지 중 한 가지, 인과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수행을 한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절을 수천 배 했다', '금강경을 여러 번 독송했다', '참선을 수년씩 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삶에서 작고 부족하나마 수행하기 전과 수행한 후 변화된 것, 달라진 것이 있느냐입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수행을 아무리 많이 하고 오래 했다고 해도 실제 삶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면 헛수고입니다. 수행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인과법은 아주 중요합니다. 실제로 내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수행이어야 하고, 수행을 한 만큼 자신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건대 수행은 거창하고 고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유치하고 잔잔하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 쓰고 있는 삼업을 바르게 쓰는 삼업으로 바꿈에 있어서 욕심내지 말고 처음에는 한 가지 서원만을 세우십시오. 누가 뭐래도 자기를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쁜 것, 좋지 않은 것, 내 삶을 괴롭게 만드는 것, 내 주변과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서원을 세우실 때,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 하나를 선택해서 보다 더 깨끗한 쪽으로 바꿔가겠다는 다짐을 하십시오. 다짐하는 것이 발원이요, 그 발원을 부처님과 자신에게 약속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이것이 곧 한 달의 삶을 전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롭고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수행이겠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매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깨끗하게 바꾸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하려고 한 번이라도 더 노력한 만큼 삼업이 청정해지고, 삼업이 청정해진 만큼 자신의 삶에서 고난과 괴로움과 슬픔은 사라지고 행복으로 바뀌어갑니다.
작은 것이지만 매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깨끗하게 바꾸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하려고 한 번이라도 더 노력한 만큼 삼업이 청정해지고, 삼업이 청정해진 만큼 자신의 삶에서 고난과 괴로움과 슬픔은 사라지고 행복으로 바뀌어갑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 삶에서 생겨나는 고통들, 문제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너와 나의 잘못 쓴 삼업 하나에서 내 주변과 나의 내면의 고통과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삶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서원을 세우는 일들이 몸에 배고 생활화되면 수행의 습(習)이 밴 것입니다. 스님들은 이것을 득력(得力)했다고도 합니다. 줄기차게 수행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는 말이지요.
내 삶에서 생겨나는 고통들, 문제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너와 나의 잘못 쓴 삼업 하나에서 내 주변과 나의 내면의 고통과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삶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서원을 세우는 일들이 몸에 배고 생활화되면 수행의 습(習)이 밴 것입니다. 스님들은 이것을 득력(得力)했다고도 합니다. 줄기차게 수행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는 말이지요.
서원을 세우실 적에 개인서원은 서원의 세 가지 요소에 맞게 세우시고 자신의 삼업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고 잘못된 삼업을 이번 달에는 고치겠다는 서원을 세우시고요, 그 외에 우리가 공동으로 짓게 되는 업, 즉 공업(共業)의 차원에서 함께 이루어가야 할 서원을 한 가지씩 세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래서 다음 법회 때에는 불살생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불살생이 무엇이고, 불살생의 삶을 어떻게 구현해나갈지, 그리고 불살생의 삶을 살면 어떠한 문제가 해결되고 어떠한 행복이 오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불살생이 무엇이고, 불살생의 삶을 어떻게 구현해나갈지, 그리고 불살생의 삶을 살면 어떠한 문제가 해결되고 어떠한 행복이 오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오늘 기도하고 수행하신 공덕으로 여러분의 삼업이 보다 더 향기로워 지시고 삶도 행복해 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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