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한국사찰(韓國寺刹) 편액(扁額) 사진모음 (2)

마음정원(寂光) 2010. 11. 10. 01:07

한국사찰(韓國寺刹) 편액(扁額) 사진모음 (2)


- 편액(扁額) 사찰 전각에 걸린 아름다운 글씨-

절에 가보면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한데 전각당우(殿閣堂宇)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불상을 모신 금당인 법당을 비롯하여 금당과 대칭되는 곳에 자리한 누각,
그리고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요사 등 다양한 기능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지요.

그런데 건물들을 자세히 보면 그 하나하나의 기능과 용도가 다 다르고
또 격에 차이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건물마다 고유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건물의 의미를 단박에 알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직사각형 나무판자에 건물의 이름을 적은 것을 바로 편액(扁額)이라고 합니다.

편액은 말하자면 집의 문패와 마찬가지라서 편액만 보고서도
그 건물의 기능과 어느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편액을 중요시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걸린 건물의 성격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 있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편액의 의미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여기에 서예사적인 측면도 가미되기 때문입니다.
지고한 불상을 모신 전각에 거는 편액이니 온 정성을 다해 최고의 글씨로써 장엄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편액의 글씨 가운데 서예의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편액 글씨를 쓴 사람들의 신분은 다양했습니다.
왕이 직접 써서 사찰에 내린 사액(賜額)에서부터 추사 김정희와 같은
우리들도 익히 아는 저명한 학자이자 서예가, 그리고 조선시대의 고위 관료,
또 흥선대원군 이하응 같은 당대의 세도가 등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기꺼이 자신의 글씨로 부처님을 모신 전각의 이름을 썼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근대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고승들이 쓴 편액도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흔히 글씨는 그 사람의 품성과 학덕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편액을 통해 옛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절을 찾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한글 편액도 심심찮게 보이는 추세입니다만, 대부분 편액은 한자로 쓰여 있고
또 어떤 것은 읽기 난해한 초서로 되어 있어 더욱 알아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편액이란 것이 전각의 이름을 적어놓은 단순한 명패가 아니라
부처님을 봉안한 장소를 지극한 정성으로 장엄하려는 마음의 발로였고,
나아가 우리 선조와 고승들의 체취가 그대로 배어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임을 생각할 때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 절을 찾을 때 전각에 걸린 편액의 글씨를 한 번 더 올려다보고 감상하는 여유를 갖기를 바랍니다.
참고서적 : 大韓佛敎振興院 발행, 『韓國寺刹의 扁額과 柱聯』,1999
 

부산  금정산 선찰대본산 범어사 조계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912년 78세 書 -
조선 후기 海士 金聲根(해사 김성근 :1835~1919). 조선 후기1862년 정시문과에 급제해,
성균과대사성, 전라도 관찰사, 규장각직제학, 홍문관제학,이조판서,예조참판등의 벼슬을 지냈다.
또한 그는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다시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대학제국 수립 후에는 법부대신, 탁지부대신 등을 지냈다.
해사는 송나라의 명필 米芾(미불)의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부산  금정산 선찰대본산 범어사 조계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912년인 78세 書 -


부산  금정산 선찰대본산 범어사 조계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912년인 78세 書 -


해남 두륜산 대흥사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書-


  해남 두륜산 대흥사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書-


  해남 두륜산 대흥사 명부전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書-


대구 팔공산 동화사 영산전 -조선후기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 71세書-


대구 팔공산 동화사 산신각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書-


순천 조계산 선암사 삼성각 -근원 구철우(槿園 具哲祐 :1904~l989) 書-
전남 화순 출생. 양곡 이승복과 후석 오준선의 문하에서 경사를 배우고 서울 배재학당에서 수학.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 일주문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 일주문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 선원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천불전 용화당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1871~1936)書-
성당 선생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를 산 분으로  본관은 경주. 자는 공숙(公叔). 호 성당(惺堂)이다.
어려서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배우다가 황정견(黃庭堅)의 행서(行書)를 배웠으며,
예서(隸書)에도 능하였다. 서화협회 회장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서법 연구기관인 상서회(尙書會)를 설치하여 후진 지도에 힘썼으며,
일제시대에 검사(檢事)를 거쳐 중추원(中樞院) 촉탁을 지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강선루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1871~1936)書-
활동연대 : 근대 1871~1936. 본관 경주. 자 공숙(公叔). 호 성당(惺堂).
어려서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배우다가 황정견(黃庭堅)의 행서(行書)를 배웠으며,
예서(隸書)에도 능하였다.
서화협회 회장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21년 <선암사사적비(仙巖寺事蹟碑)>에 글을 썼다


대구 팔공산 파계사 진동루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1871~1936)書-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경남 양산 천성산 홍룡사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1871~1936)書-


공주  태화산 마곡사 대광보전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書-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시,서,화를 썩 잘하는 삼절(三絶)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그림 스승이시다.
조선조 22대 정조때의 문신·서화가, 자는 광지. 호는 표암(豹庵), 본은 진주.
정조 2년(1778) 병조 참지로 문신정시에서 장원, 한성부우윤, 남양 부사·한성부 판윤 및 호조
참판· 병조 참판을 거쳐 기로소에 들어갔음. 서화에 뛰어나 멀리 청나라에서도 그 이름이 알려졌음.
특히 산수화와 사군자로 유명하며, 그의 화풍은 정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격이 있고
개성이 뚜렷하였음. 시호는 헌정. 저서로는 <표암집>, 작품은 <산수도> <난죽도> 등이 있다. 


강진 만덕산 백련사 -통일신라의 서예가인 김생(金生, 711~790, 성덕왕 10~?)글로 추정-
청량산 경일봉 아래 위치한 김생폭포 동굴이 있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글씨 공부를 하여 기암괴석을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김생필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합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의 종조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진나라 왕희지를 능가하는 海東書聖으로 추앙.


안동 천등산 봉정사  -동농 김가진(金嘉鎭.1846∼1922)書-
조선말기 문신ㆍ독립운동가. 본관 안동. 호 동농(東農).
10년에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男爵) 작위가 주어졌으나 받지 않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3ㆍ1운동에 참가하고, 그 후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고문에 추대되었다.
20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하다 병사하였다.
한학에 능통하고 글씨에 뛰어났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 덕휘루 -동농 김가진(金嘉鎭.1846∼1922)書-


안동 천등산 봉정사 덕휘루 -동농 김가진(金嘉鎭.1846∼1922)書-


문경 운달산 김룡사  -동농 김가진(金嘉鎭.1846∼1922)書-


순천 조계산 선암사 만세루 육조고사 - 傳 서포 김만중의 부친  김익겸의 글  (1614~1636)-
김익겸(金益兼)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성을 사수하다가 자결하였으며 충정공(忠正公)의
시호를 받은 인물로 그의 자손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배출, 사계집안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영주 봉황산 부석사 안양루 -1944년소남 김종호書-


부안 능가산 개암사 -김석천(金石川 9歲 書-


부안 능가산 개암사 -김례산 8세 書-


익산 함라산 숭림사 일주문  -여산 권갑석 2001년書 -


정읍 내장산 내장사  정혜루 『천하명승내장산』-월담 권영도 (1914~2004)書-


양산 영축산 통도사  해장보각 -이재 권돈인(彝齋 權敦仁:1783~1859)書 -
이수(彝叟)는 彝齋 權敦仁의 별호로, 그가 69세 되던 1851년.
권돈인은 병조판서, 영의정 등을 지냈고 글씨와 문인화에 능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그의 예서를 ‘東國(동국)에서는 전혀 없었던 神合(신합)의 경지’라고  평가했다.


문경 운달산 김룡사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書-


문경 운달산 김룡사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書-


문경 운달산 김룡사 절하당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書-


문경 운달산 김룡사 설선당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書-


문경 운달산 김룡사 해운암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書-


원주 치악산 구룡사 -초정 권창륜(艸丁 權昌倫)書-


해남 두륜산 대흥사 화장법해 -권재철書=


해남 두륜산 대흥사 무량수각 -노완(老玩1840년)書 -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  자:元春.  호:추사 외 200~300課의 관지로 추정.
추사(秋史) ·완당 ·노완(老阮). 金正喜印,소봉래학인(小蓬萊學人),염(髥,丙午老人,
추사심정(秋史審正),예당(禮堂),천보재(天寶齋),대한천상(大閒天上), 추사진장(秋史珍藏).
완당(阮堂).승련노인(勝蓮老人).즉과(卽果).과노(果老).노과(老果).병과(病果.노완(老阮) 등.


순천 조계산 선암사 무량수각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0)書-


부산 금정산 원효암 무량수각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0)書-


양산 영축산 통도사 극락암 무량수각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0)書-


영천 팔공산 은해사 대웅전 -추사 김정희1850梗  書-


용문산 용문사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0)書-


영천 팔공산 은해사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0)書-


양산 영축산 극락암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786~18560)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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