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샘이 숨은 절, 지리산 천은사(泉隱寺)의 가을

마음정원(寂光) 2010. 11. 5. 00:11

요즘 가을 분위기 나는 곳으로 많이 다녀왔네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을은 참 좋은 계절입니다.(근데 왜 나는 봄이 좋은거지?--a)
주말에 비가 오던가, 약속이 생기던가 해야 밀린 포스팅도 마무리 지을텐데,
대책없이 날이 좋다보니 밖으로만 싸돌아다니게 되네요.
오늘도 묵은지 포스팅 하나 나갑니다.

천은사.
지리산은 민족의 명산답게 곳곳에 사찰이 많습니다.
산수 좋고, 기세 좋은 명당자리는 어김없이 사찰이 들어서 있는 듯 하네요.
구례 화엄사가 가장 유명한 절이긴 합니다만, 이곳 천은사도 그에 못지 않은 오래된 절입니다.
가랑비 내리는 절 분위기, 비가 와서 그런지 차분하게 가라앉은 기운이 느껴지네요.
사람도 별로 없고 시원한 공기가 참 좋습니다.

천은사는 이런 저수지? 호수? 같은 걸 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은(泉隱 : 샘이 숨다)이라는 절 이름이 붙은걸까요?
이 높은 지리산자락에 이럼 호수가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던지라 신기하더군요.

가을여행 온 한 가족이 삼각대를 두고 사진을 찍고 있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더군요.
희미해진 기억에는 사진 한장 두고 끙끙 앓면서 생각하는게 좋지요.
보통 혼자 다니면서 제 사진은 안 남겨두는 편인데 이런 걸 보면 셀카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ㄱㅅ(감사) 맞죠?ㅋ

병원에 입원해서 바나나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바나나의 욕창(검은반점과 짓무름) 정도를 관찰하던 후배녀석이 떠오릅니다.
근데 확실히 바나나는 이렇게 걸어두면 보관도 오래되고 맛도 좋아지는 듯 해요.ㅎㅎ

작은 뱀 한마리가(너무 작아 용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하다.) 집채만한 종을 끌어안고 놓질 않네요.
욕심이란게 이런거 같습니다.
손에 움켜쥐고 있으면 있을수록 덩치를 불려 나중에는 온몸으로 둘러싸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죠.
오늘 제 욕심은 손끝 어느 마디까지 내려가 있을까요?

지리산자락에 안긴 천은사의 모습이 참 좋네요.
불상이 자리잡은 전각들을 제외하고는 옛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듯 합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나무들이 물을 먹어 더 오래된 모습을 보이더군요.

운무로 뒤덮인 산과 화려하진 않지만 멋스러운 지붕들이 참 마음에 드는 풍경입니다.
머리 복잡할 때 좋은 공기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을 듯한 곳이네요.
뭐 대부분의 절들이 조용하게 사색하는 장소로 좋긴 합니다만,
수도권 가까운 사찰들은 주말만 되면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몰리는지라 이게 시장인지 절인지 가끔 구분이 안갈 때도 있어서 말이죠.

벌써 열흘이나 지났으니 이곳도 가을이 성큼 내려 앉았겠죠?
가까운 곳이었다면 벌써 달려갔겠네요...

약속이 있는 친구와 순천에서 헤어지고 기차를 타고 여수로 갑니다.
순천역, 여천역, 미평역, 여수역...
저의 20대를 함께해서 그런진 몰라도 참 친근하고 익숙합니다.
추억을 기억하는 공간도 이런 그물로 꽁꽁 잡아두고 있는걸까요?^^;
오래도록 잊어버리지 않고 붙잡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유레카님께서 밤기차 떠나는 사진이나 새벽녘 간이역 사진이 필요하시다는게 떠올라,
밤도, 새벽도 아닌데 '흐린날이니까 비슷할꺼야'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찍었더니 기차 꽁무니만...;;
서울에서 결혼식 들렀다 내려가느라 삼각대도 챙겨가지 못해 마음에 들만한 사진을 찍지 못한게 아쉽네요.
그래도 이런 아쉬움이 있어야 나중에 더 좋은 사진이 만들어져요.^^

오늘부터 또 추워졌네요.
차가운 공기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게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아직 가을이 끝난건 아니니 여행 많이 다니시고 행복한 11월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출처 : 티스토리(http://bkyyb.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