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북한산 천년고찰 국녕사

마음정원(寂光) 2010. 10. 24. 22:30

북한산 천년고찰 국녕사 
                                                                  

                                                                       이성학 / 불교대학원 재학
 
 언제부터인지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의상봉을 바라보면 굽이굽이 능선 너머로 마치 땅에서 솟은 듯 합장하고 계신 웅장한 대불(大佛)을 볼 수 있다.
 ‘저 곳이 어떤 곳인가’
궁금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지만 그곳이 과거에 찬란한 영화(榮華)를 자랑했던 국녕사(國寧寺)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녕사는 수도 서울의 명산 중의 명산인 북한산 의상봉 아래에 있다. 영봉(靈峰)으로 불리는 의상봉은 한국화엄의 시조 의상대사께서 천공(天供)을 받아 정진하신 곳이다. 그 외 많은 선지식들의 참선도량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의상봉 맞은편에는 원효대사께서 수행하셨다는 원효봉이 있다. 원효봉 옆으로 서울의 지붕이라는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과 노적봉이 있어, 국녕사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마치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 영지(靈地)에 자리잡은 국녕사는 일찍이 사명대사께서 나라에 환란이 있을 것을 예지하시고 “국녕사가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국녕사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하시며, 십천우(十千宇-우주전체)를 뜻하는 열 개의 사찰을 북한산 요소요소에 창건한 후, 승병을 양성ㆍ배치하여 성문을 사수케 한 호국불교의 실천 도량이었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었던 성능(聖能)스님이 산성기사(山城記事)를 편집하여 간행한 목활자본 <북한지(北漢誌)>의 기록에 의하면 북한산성의 제1성문인 국녕성문을 지키기 위하여 당시 새로이 지어진 국녕사는 86간이나 되는 대가람이었다고 전한다. 1713년(숙종 39) 청철(淸徹)과 철선(徹禪)이 국녕사를 창건했다고 되어있으나, 그 이전에 사명대사께서 국녕사를 언급하셨던 점으로 보아 청철과 철선은 중창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대가람이었던 국녕사는 민족수난의 역사와 함께 대부분 소실되어 요사채를 법당으로 해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1991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그 후 능인선원 지광스님이 새로이 중창주가 되어 1998년부터 복원불사에 착수, 2002년도에 전통사찰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천혜의 명당 국녕사는 볼거리도 많다. 비록 세월의 풍상을 거치며 한때는 폐사지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요소요소 예전의 영화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국녕사를 방문하면 우선 엄청난 크기의 청동대불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 국녕사를 복원하던 2000년도에 호국(護國)의 염원을 안고 세워진 높이 25미터의 「합장환희여래불(合掌歡喜如來佛)」은 이제 국녕사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불이 세워진 곳은 용출봉과 의상봉이 만나 강렬한 지기(地氣)가 흐르는 곳으로 풍수지리학상 ‘용의 심장[龍心]’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용심 자리에 「합장환희불」을 모신 것은 호국 외에도, 부처님을 바라보는 만 중생들에게 합장하는 마음을 일깨우게 하고 그리하여 모두를 부처로 대하자는 염원을 이 세상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이다. 합장수인(合掌手印)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며 중국 돈황 등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다. 대불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만개의 불상[萬佛]」은 세세생생 대불을 모시려는 원력불(願力佛)들이다.

 
국녕사에는 연대미상의 「한월선사(漢月禪師) 부도탑」이 있는데, 이는 이곳이 예전부터 많은 선사들의 참선도량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대불 왼편 절벽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연대미상(대략 고려말로 추정됨)의「마애불」이 보이는데 이 마애불은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듯 많이 마모되었다. 영화스러웠던 과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 앞으로 학계의 고증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대웅전을 오르는 길의 오른편 산에는 일명 「두꺼비 바위(좌선하는 스님바위)」가 있는데, 아이가 없는 한 부부가 두꺼비 바위에 기도하여 득남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두꺼비 바위’는 대불전에서 바라보면 ‘가사 장삼을 두르고 좌선하는 스님’ 모양으로 보여 「좌선하는 스님바위」로도 불린다. 또 「용바위」, 「사자바위」 등 국녕사 주위에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많은 상징물이 있다.

 
 현재 국녕사는 능인선원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수련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지 않아 임사체험ㆍ참선ㆍ명상ㆍ기체조 등의 프로그램으로 2~3일간의 산사체험을 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주요전각은 대웅전ㆍ삼성각ㆍ종각ㆍ3천불전ㆍ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는 대부분 1998년 중창불사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장대석 기단 위에 화강석 원형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워 지었으며, 다포형식,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대웅전 앞의 종각인 등룡각(登龍閣)에 올라 대불을 바라보노라면 그 모습이 천하일품이고, 멀리 바라보이는 백운대ㆍ노적봉도 병풍처럼 절경을 이룬다.

 
국녕사는 아직도 불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거의 폐사지에서 전통사찰로 거듭난 후 최근에는 영화촬영 등 많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주 황룡사지를 비롯 전국적으로 2천 곳이 넘는 폐사지가 있으나 이중 100여 곳만 법의 보호를 받고 있을 뿐, 대부분은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전통사찰로 거듭난 국녕사는 폐사지 복원에서도 하나의 모델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