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가을하늘과 맞닿은 구례 사성암

마음정원(寂光) 2010. 11. 5. 00:28
긴 연휴가 끝나갈 무렵, 가을하늘이 너무 좋아보여 부모님을 모시고 어디든 가고 싶었다.
급하게 결정된 나들이.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만한 곳을 찾느라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서쪽으로 달리면 보성, 장흥이고 동쪽으로 달리면 진주, 통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께서 지리산 뱀사골 근처에 암자가 있다고 한번 들러보자고 하신다.
'사암'이라는 명칭만 알고 계셔서 네비로 검색을 해봐도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있던 찰나,
문득 올 봄에 다녀왔던 구례 '사성암'이 떠올라 목적지를 정했다.
여수에서 광양을 지나 구례로 가는 길.
날씨가 정말 좋아 멀리 산등성이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바닷가와는 다른 시골의 풍경이 드러나는 길이라 새로움과 설레임이 함께 다가온다.

구례 사성암.(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33호)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하나 확실한 기록이 없다. 원래는 오산암이라 부르다가 이곳에 4명의 덕이 높으신 승려인 연기조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가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이로 미루어 통일신라말 도선국사 이래 고려시대까지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산주변에는 기이하고 괴상하게 생긴돌(기암괴석)이 많아서 소금강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암벽에는 서 있는 부처의 모습(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섬진강 벚꽃길을 따라 달리다 풍경에 취해 달리다보면 어느새 사성암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주차장 입구에서 사성암으로 올라가는 버스 승차권을 구입한 후(왕복 3,000원, 사찰 입장료 포함) 버스를 타면 된다.
사성암이 거의 오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구불구불하고 험한 산길이라 버스를 타고 가는게 마음 편할 듯...

부모님과 형님, 형수님, 조카.
오랜만에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온 것 같다.
매번 고향 갈 때마다 일본, 동남아, 제주도 갑시다 맙시다 그랬는데,
무작정 부모님 손잡고 이렇게 떠나는 여행도 좋은 것 같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소원바위 앞에 올 봄 보지못한 이상한 것들이 걸려있다.
사성암소원지?
왠지 남산타워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쇠고리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층층이 쌓아두어도 될 기와였는데 이런 모양으로 쌓아둔 걸 보니 암자내에 예술하는 분이라도 계신건가?

드라마 '추노'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며 더 유명해진 사성암.
그리고 이 '도선굴'은 이다해와 오지호가 다친 몸을 피하며 드라마에도 몇번 나왔었다.

올 봄에 올랐을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맑은 하늘.
그때는 운무가 자욱하게 끼어 논과 밭, 섬진강, 지리산 뭐가 뭔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는데,
이날은 멀리 노고단,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지리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니 또다시 지리산행을 꿈꾸게 된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구름이 흰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중...

산등성이 따라 늘어진 구름과 그 위로 새파랗게 빛나는 하늘은 정말 멋진 장관이었다.
이렇게 맑은 날 다시 이곳을 찾은게 너무나도 행복했던 순간.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이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해보자...

오산 정상 530m.
우리는 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지 많은 등산객이 다녀가신다.
나도 배낭 하나 짊어지고 와보고 싶다.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오산으로 오는 길도 있을 듯 한데...

하하,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산 정상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과 문척면은 감동 그 자체다.
얽히고 설킨 마을과 너무도 편안하게 굽어 흐르는 섬진강, 그 뒤를 든든히 버티고 있는 지리산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가을 햇살은 따가웠지만 산정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올라올 때의 피곤함을 날려주었다.
너무나 시원해서 흥겨움에 절로 노래가 흘러나오던 곳.

그곳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는 아까 펼치지 못한 날개가 모두 펼쳐져 깃털 하나하나 춤추고 있었다.
저 구름 타고 나도 날고 싶어라...

지장전.
이곳도 추노에 자주 등장하던 곳이다.
언년이가 삼천배를 하며 대길이의 명복을 빌고, 대길이와 땡중이 말다툼을 하며 웃음을 주던 바로 그 장소.
나도 슬며시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우리가족의 건강을 빌어본다...

약사전.
절벽을 맞대고 기둥 몇개 세워 전각을 지었다.
오랜 역사와는 다르게 막 새로 지은 듯한 건물이 고풍스러움은 없지만, 웅장함과 기묘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약사전 가는 돌담길.
이곳도 오지호가 언년이를 향해 손을 내밀던 장소로 유명하다.
부모님께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는데 드라마 안보셨다고 빼시더라는...;;

돌담길을 모두 올라서면 하늘과 맞닿은 약사전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왜 이곳에 전각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은 약사전 안을 들여다보면 풀리게 된다.

마애약사여래불.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사성암의 불가사의한 전설이자 자랑이다.
약 25m의 기암절벽에 음각으로 새겨졌으며 왼손에는 애민중생을 위해 약사발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 222호로 지정되었으며 건축양식은 금강산 보덕암의 모습과 흡사하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아래쪽으로 걸어가는데,
활공장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보여 따라가 보니 이런 언덕이 나온다.
이쪽 주변이 큰 건물과 전신주가 없어서 패러글라이딩 하기에 좋은 장소인가 보다.

이렇게 드넓은 섬진강으로 날아내려가는 상상만 해도 너무 즐겁다!!!
언제고 기회되면 꼭 해봐야지~

봄에 찾은 사성암과 가을에 들른 사성암은 너무도 느낌이 달랐다.
겨울을 채 벗지 못한 사성암에서 고즈넉하고 쓸쓸한 느낌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생동감 넘치고 따스한 하늘과 조화롭게 보이는 사성암을 만날 수 있었다.

이래서 여행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흐린날, 맑은날, 눈오는날, 비오는날 아무때나 떠나는가 보다.
같은 장소도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라 더욱 즐거운 여행길.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새파란 가을하늘이 부모님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었다...

 


 

- 출처 : 티스토리( http://bkyyb.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