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눈물***
안동 도반스님 포교원에서 금강경 강의가 있어
공부하러 가느라 길을 나섰다.
청도역에서 동대구까지 기차표를 사는데 역무원이
"할머니 스님 따라 가시면 됩니다." 하는게 아닌가.
난 동대구까지 가시는 할머닌가 싶었다.
플랫홈에 나가려면 계단을 통과해야 하는데
연세가 있어보여 미리 나가시자 하여 계단을
오르는데 굽은 허리에 빠르지 않은 걸음이건만
무척이나 숨차 하셨다.
플랫홈에 도착해서 "할머니 어디가세요?"하니
"옷 가지러 목포갑니다."한다.
"웬만하면 사 입으시지 연세도 많으신데 가세요?"
"내가 나이가 80이요, 작년만 해도 안그랬는데
올들어 허리가 더 굽네요. 그래 아무옷이나 못입어
맞춰 입는데, 마 사입으면 맘에도 안들고 그래
가질러 갑니다. 딸이 못 가라고 차비도 안주는데
나왔습니다."
동대구까지의 기차표를 보여주며 이것이 목포까지
가는 표냐고 묻는다.
"할머니 동대구가서 고속버스로 갈아 타셔야하고
동대구에서 목포까지 가는 버스가 있을란지 모르
겠습니다. 웬만하면 딸집으로 돌아가세요"
할머닌 플랫홈에 쪼그려 앉아 가래침을 택..택..
받으시며 영~~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목포까지 갈 차비가 되나 가진 돈
얼마나 되나 보세요"
주머니를 뒤지고, 들고있는 가방을 뒤지고 가진돈이
채 만원을 넘지 못했다.
"할머니 이 돈 가지고 목포 못 갑니다. 돌아오실 땐
어쩌려구 그러세요. 댁으로 돌아가세요"
할머니는 급기야 내복 속 어디에선가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꺼냈다.
"이것 가지면 갑니다. 목포가면 교인들이 있고..."
딸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오신 할머니의 고집은
오죽 하랴 싶었다.
옆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다른 70대의 할머니는
"7년후 나도 저러면 어쩌지요." 연신 걱정을 한다.
"연세드시면 자식들 말도 좀 들으셔야죠."
"그러게 말이에요. 스님"
할머니를 모시고 기차에 올라 할머니 자리에 앉혀
드리고 "동대구에서 모시고 내릴 테니 이자리에
앉아 계세요"
할머닌 나를 만나기 전부터 눈물을 흘렸는지 볼에
눈물자욱이 있고, 두 눈에 눈물 글썽이며 연신 고맙다고
하신다.
동대구에서 모시고 내려 역사를 통과해
고속버스터미널까진 할머니께 꽤 긴 숨가뿐 거리였다.
"내 물어 알아 갈라니 바쁘신 양반 갈길 가소"
"할머니 저도 그쪽 방향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도착해 이정표를 보니
목포는 없었다.
동대구에서 목포까지 가는 버스가 없으니 광주까지
가서 다시 목포행을 갈아타야 했다.
광주까지 차비를 알아보니 만7천원으로 할머니가
가진 돈으로 그 표를 사면 천원이 남았다.
일반고속버스를 타려면 대합실에서 세시간넘게
기다려야하고, 하여 할머니의 돈으로 광주까지
우등고속버스표를 사드리고 미루어 생각하니
광주에서 목포까지 천원가지고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노인이 가시다가 점심도 드셔야 할 것 같고,
강의들으러 가는 길이라 수중에 넉넉한 돈이
없던 터라 국수 한 그릇 사드시고, 목포까지 가는 차비
보태시라고 작은 성의의 돈을 드리니 할머니는 가면
교인들이 있다고 만류를 하셨다.
버스시간이 다 되어 할머니를 광주행 버스에 태워
드리고 부족한 점심값을 손에 쥐어 주고 "잘 다녀
오세요" 하고 내리려니, "에이고, 알지도 못하는
양반이....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신 한숨에 눈물에....
그런 할머니를 뒤로 하고 안동행 버스를 타기 위해
다른 대합실로 이동해 표를 사고 버스를 타고 안동에
도착하면서도 내내 그 할머니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할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은 비단 그 할머니만의 눈물이
아니었기에....
[부모은중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해골더미를 보고 절을 하신다.
제자들이 묻자 '다겁생래애 나의 부모였을수도 있고
형제자매였을 수도 있다시며...
수 없는 생을 죽고 나고 죽고 나고 하면서 나와
인연 지어진 이들 그 얼마이겠는가!
그 할머니 역시 나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에 그렇게
역에서 나와 인연이 닿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50세에 홀로 되어 몇남매의 자녀인지 모르나
힘들게 키우신 것 같았다.
"요즘 사람들은 똑똑해서 아이도 하나나 둘만 낳아
잘 키우는데...."하신 말씀으로 보아...
연세가 많아져 부산에 아들집에 가서 사셨는데
장애인 남편을 둔 며느리가 할머니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청도에 홀로되어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하니
그리 오라해서 와서 살다가 옷이 필요해 가지러
목포를 간다는 것이었다.
그 몇 마디를 하시는 동안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고여 넘치려 하고, 울먹이느라 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몇 마디의 말과 모습에서 할머니의 고난한 삶이
고스란히 보여졌다.
할머니는 땅설고, 물설고 낯설은 청도를 잠시 벗어나
고난한 삶을 살면서도 정든 낯익은 사람들이 있는 곳
목포가 가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일테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자 늙지 않는이 그 누가 있으랴!
늙어서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젊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순치황제 출가시 중엔 '자식을 위한다고 말 소 노릇
고만하소'란 구절이 있다.
대다수의 자식들로부터 버려지는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베풀고 가진 것 하나 없을 때
홀홀 단신이 된다.
그러니 자식들에게도 무한정 베풀기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교육을 잘 못 시킨 부모잘못도 있겠지만 시대의
잘못된 흐름탓도 있으리라.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로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나 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늘 베풀며
살아 보이지 않는 공덕저금통에 저축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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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의엔 특별한 청강생이 한 분 계셨다.
청도에 사시는 노스님으로 95세의 비구니스님.
손주상좌가 모시고 왔는데 대중이 모두 놀랐다.
강의내내 꼿꼿이 앉아 염주를 굴리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라니...
걸음걸이, 말씀, 기억력, 다 원만하셨는데 단지
귀가 좀 어두우셨다.
큰스님 법석에 인연이라도 짓기 위해 오셨단다.
젊을때부터 건강이든 수행이든 자기관리가 없었다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光陰(세월)을 헛되이 소비하지 말고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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