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불가사의한 기도성취의 원리(2)

마음정원(寂光) 2006. 3. 31. 09:53

 

        불가사의(不可思議) 기도 성취의 원리 (2) - 광덕스님

 

 

⊙ 불가사의(不可思議), 부처님법

 

 

또 한가지 덧붙일 것은 기도는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원래 성질(性質)이 논리(論理)와 이론(理論)이 서지 않으면 한 치도 못 가는, 금방 죽을 일이라도 타협(妥協)하지 않는 비교적(比較的) 고지식하고 보수적(保守的)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말과 이론(理論)을 떠난 진리(眞理) 자체(自體)인 것입니다. 말과 이론은 보송보송한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합니다. 불가사의는 생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이 아니고 이론이 아니고 비유(比喩)로 생각할 수가 없고 어떤 이론으로 짐작(斟酌)하거나 사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방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전부라고 그래도 전부라고 하는 그 정도에서 많다고 하는 그 정도에서 참으로 그것은 관념(觀念)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경우를 무어라고 말로 표현한다 해도 부처님은 다 말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부처님은 솔직한 심정으로 말씀드리자면 불가사의, 이 한마디로 끝입니다. 불가사의라는 것은 무한(無限)하다는 뜻입니다. 무한은 생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 이론에 매여서 이러한 논리 밑에 이렇게 된다는 논리에 매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체 걸림이 없는 대자재 완성이 "불가사의"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을 한마디로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유, 생각, 이론으로 알려 합니다. 논리로 따져서 '아. 그렇다. 그러면 그렇지.' 혹은 논리로 따져서 '그것은 미신(迷信)이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논리로 알고 있는 그런 구별 속에서 아는 부처님이 아닙니다. 참으로 전능적(全能的)이며, 전지적(全知的)이고 절대적(絶對的)인 부처님, 결코 사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명명해서 나는 '불가사의' 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 불가사의한 부처님, 말과 이론이 없이 무조건 챙기는 부처님, 자비라 하더라도 이유 없는 무조건의 이 부처님이 바로 우리들의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나의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입니다. 나의 생명 자체가 불가사의입니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무한(無限)한 위덕을 고스란히 그대로 받고 쓰고 있는 것이 나의 생명입니다.

부처님의 생명, 나의 생명이 따로 있지 아니하고 나의 존재 자체가 부처님의 존재를 증명(證明)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냐 하면 아닙니다. 인간(人間)을 합리(合理)라는 통속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논리(論理) 속에 비쩍 마른 사람을 만들어서 곽속에 집어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 부처님의 법은 불가사의입니다. 내 생명이 불가사의이며 내가 살고 있는 그 생명의 진리는 불가사의입니다. 그러하건만 우리는 불가사의한 그 도리를, 그 생명을 쓰고 살면서 논리에 매이고, 합리(合理)의 축적(蓄積) 속에서 매달리고 있습니다.


 

⊙ 기도(祈禱) 성취(成就)의 원리(原理)

 

 

나는 기도(祈禱)를 함으로써 기도(祈禱) 성취(成就)에 대한 원리(原理)를 많이 봤습니다. 기도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하고 기도에 관한 얘기는 퍽 많이하고 기도 성취에 대한 법칙 같은 것을 생각하고 기도에 관한 것을 여러분께 챙겼습니다.

논리적(論理的)인 수긍(首肯)이 가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했지만 내 속을 터놓고 말을 한다면 '불가사의' 입니다. 불가사의법은 불가사의에 있는 것이고, 절대(絶對)의 법(法)은 절대적(絶對的)인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해서 될까' '이것이 기도해서 될 수 있을까.' 현재의 과학적(科學的)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맞지 않는다. 하도 답답해서 기도를 해보는 것이지.' 하는 것은 먼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렇게 먼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불가사의, 불가사의인 까닭에, 생각할 수 없는 까닭에 우리의 논리 한계 속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논리와 우리의 지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떠한 법칙으로도 더 이상 이룰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은 통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분들이 과학(科學)이니 지식(知識)이니 합리(合理)니 하는 이런 체제(體制)가운데 빠져들어서 합리의 도구가 되고 논리의 도구(道具)가 되어 가지고 이 불가사의 법을 쓰지 못하고 그릇되게 얽매여서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불가사의 법칙이 엄연한 것은 예를 들어서 남을 해치게 하는 기도라든가, 남이 잘 안되게 하는 기도라든가, 자기가 게을러도 되는 후퇴하는 기도, 문화의 진도를 역행하는, 인간적인 향상과 상반되는 이런 기도 생활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마음 가운데 강한 분노나 질투를 대립 가운데 품고, 그렇게 해서 무엇인가 소망(所望)하는 그런 기도 가지고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원래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덕성세계에서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빛이여, 들어올지어다. 음악이여, 내귀를 울릴지어다."하고 아무리 염한다 해봐야 눈을 감고 귀를 막고서는 그 소리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진장(無盡藏)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그 흐름을, 그 광명(光明)을 자신의 가슴에 안고자 하면 마땅히 가슴을 확 열고 집착(執着)을 놓고 문을 활짝 열고 밝은 빛을 받아들일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