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이해

금동여래입상

마음정원(寂光) 2005. 5. 12. 00:19
[제182호]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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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국보 182호
명 칭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분 류 금동불
수 량 1구
지정일 1976.04.23
소재지 대구 수성구 황금1동 산41 국립대구박물관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국립대구박물관
관리자 국립대구박물관


※ 본문설명

1976년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 봉한 2동 뒷산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관음보살입상 2구와 함께 출토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발견되기 70여 년전에 어느 농부에 의하여 부근 대밭골이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다가, 몇년 뒤 현재의 장소에 다시 묻었던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왼손과 왼발 일부가 없어지고, 얼굴과 가슴에 약간의 녹이 있으나 도금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네모진 얼굴에는 살이 올라 있으며, 예리한 선으로 눈·코·입을 표현하였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몸에 달라 붙어서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옷자락은 배부분에서 평행한 U자형의 주름을 이루고, 다리 부분에서 좌우로 갈라져 대칭을 이루면서 발목까지 드리워졌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여 역시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몸의 형태나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며, 옷주름이 정리되어서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생동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형태가 단순하고 자세가 굳어 있으며, 특히 날카로운 얼굴의 표현 수법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점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8세기 초로 추정된다.

※ 보충설명


이 불상은 나발(螺髮)이 있고 육계가 크며, 얼굴은 풍만하고 귓불이 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쳤으며, 수인(手印)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허리는 잘록하고 두 다리를 두드러지게 하여, 통일신라기(統一新羅期) 불상의 생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의문(衣文)은 사실적으로 예리하게 표현하였으며, 발 아랫면에는 대좌(臺座)에 꽂기 위한 짧은 촉이 있다. 동체는 속이 비어 있고, 머리와 발 등에는 원형이나 4각형의 구멍이 나 있다.

이 불상은 1976년 3월 8일, 경북(慶北) 선산군(善山郡) 고아면(高牙面) 봉한이동(鳳漢二洞) 산(山) 56번지에서 사방공사를 하다가 인부 김삼복(金三福) 외 두 사람이 발견한 것이다.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70년 전에 사망한 윤원벽(尹源璧)이 주웠던 것이나, 그의 부인이 지금의 발견장소에 묻었다는 것이다.

현재 왼손과 왼발 일부가 없어지고, 도금(鍍金)의 상태는 비교적 좋으나 얼굴과 가슴 부분에 약간의 동록이 나 있으며, 광배(光背)는 없어졌다.

통일신라기(統一新羅期) 초기의 양식을 갖춘 8세기의 작품으로, 조법(彫法)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