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사랑 - 좋은 글

근심 퇴치법

마음정원(寂光) 2012. 8. 13. 22:56

 

      근심 퇴치법 / 이외수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 풀에 겁을 집어 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