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의 향기

바라보는 기쁨 - 법정스님

마음정원(寂光) 2011. 11. 13. 18:20

 

 
 ***바라보는 기쁨*** 
    ...법정스님... 산중에 갇혀서 살다보면 문득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국이 없는 밥상을 대했을 때처럼 뻑뻑한 그런 느낌이다. 오두막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바다와 마주할 수 있다. 아득히 멀고 드넓은 끝없는 바다. 아무 것도 거치적거릴 게 없는 훤칠한 바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바다를 대하면 그저 상쾌 상쾌! 그 중에도 겨울 바다는 보는 사람의 핏줄에 시퍼런 기상을 전해준다. 지난 연말에 4차로로 확장 개통된 동해고속도로. 하행선 동해휴게소는 이 땅에서 바다를 바라보기에 가장 뛰어난 전망대 다. 마치 캘리포니아 해안선에서 태평양을 대했을 때의 그런 상쾌하고 장엄한 전망이다. 이와 같은 전망을 남해나 서해 바다에서는 보기 어렵다. 가는 데마다 양식장의 부표 때문에 너절 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동해바다는 수심이 깊고 파도가 쳐서 양식이 어려운 덕에 때 묻지 않은 원시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바다다운 바다를 보려면 쾌청한 날씨여야 한다. 하늘 빛이 곧 바다 빛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은 바다 또한 우중충하다. 그리고 바다는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언덕에올라 멀리 내다보아야 바다의 속얼굴을 만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더 내려가 망상 인터체인지 에서 상행선을 탈 수 있다. 바다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망상해수욕장에 들렀다가 이내 후회했다. 철이 지난 해수욕장은 여기저기 너절한 시설물들이 바라보기에 그토록 싱그럽던 바다를 더럽히고 있었 다.비본질적인 것들이 바다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었다. 이 일을 두고 그 날의 화두를 삼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 너무 가까이서 자주 마주치다보면 비본질적인 요소들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실체)를 놓치기 쉽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늘 한데 어울려 치대다보면 범속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걸핏하면 전화를 걸고 자주 함께 어울리게되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고일 틈이 없다.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흙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듯 자신의 삶을 조심 조심 가꾸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전에는 상행선 휴게소가 길 건너 맞은편에 있었 는데 지금은 조금 올라가 있다. 이름은 옥계휴게소. 새로 번듯한 휴게소 건물을 지어 상층에는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동해휴게소보다 더 가까이서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왼쪽에 시멘트 공장 건물이 바다의 한 쪽을 가린다. 바다는 파도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에 있지만 시야는 좁다. 동해휴게소 쪽이 훨씬 드넓고 시원스럽게 보인다. 그렇다. 사람도 얼마쯤의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이서 대하다보면 자신의 주관과 부수적인 것들에 가려 그의 인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풍경이든 바라보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