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강화 전등사

마음정원(寂光) 2011. 11. 10. 20:36

명상 수련의 체험장이 된 전등사의 천 년 숲

<숲이 있는 절집>은 우리 숲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소나무 박사 전영우 교수가 정화 공간으로서의 절집과 숲을 불교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생태문화기행기다. 연재 제목 ‘숲이 있는 절집’은 이호신 화백의 글씨다.




다양한 나무들이 합창하는 황갈색의 향연

천 년 고찰 전등사를 찾은 이유는 순전히 숲을 명상 수련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전등사는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은 산성을 거느리고 있는 절집. 고려시대 대몽항쟁과 조선 후기 프랑스군의 외침을 직접 물리쳤던 역사의 현장, 『조선왕조실록』 전 책을 유일하게 지켜낸 사고가 있던 절집 등으로 유명하지만, 절집 숲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나선 산림학도에게는 외눈박이마냥 오직 숲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관광객들의 출입이 많은 동문을 피해 비교적 한적한 남문 출구를 이용하여 숲길을 오른다. 지구온난화로 더디게 변하는 절기 덕분일까? 왼편 산록의 활엽수 숲은 여전히 별천지다.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느티나무, 고로쇠나무, 엄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황갈색의 풍광은 계절의 향취를 즐기고자 나선 길손에게 안겨주는 자연의 합창이다. 걸음을 멈추고 그 풍광을 가슴 가득 담는다.

다양한 나무들이 합창하는 황갈색의 향연에 어느 순간 꽉 찬 머리가 시원하게 뻥 뚫린다. 온몸을 휘감고 있던 욕망과 욕심의 뿌리가 황갈색의 합창 소리에 놀라 육신에서 빠져나가는 것일까. 머리가 시원하고, 몸이 가볍다. 걸음을 다시 옮긴다.



500년 묵은 은행나무의 판타지

대조루를 지나 대웅보전에 참배하고, 약사전과 향로전을 거쳐 삼성각에서 걸음을 멈춘다. 대웅전 뒤편 산록을 지키고 선 노송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노송들 사이로 난 숲길을 천천히 거닐어본다. 활엽수들의 세력에 밀려 차츰 사라져가는 늙은 소나무들의 애처로운 외침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대웅보전 뒤편 산록과는 달리 남문이나 동문 앞 들머리 솔숲들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다. 그 이유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소나무 숲을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솔숲의 위세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들머리 솔숲과 달리 역설적으로 경내의 솔숲은 인간의 간섭이 사라졌기 때문에 활엽수들에게 자신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인천시가 내년도에 숲 가꾸기 예산을 들여 남문과 동문 주변의 소나무 숲 10ha를 가꾼다는 소식이다.

전등사는 숲과 나무라는 실존적 관점에서 산림학도의 관심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1749년 영조 임금이 시주한 목재로 전등사의 중건이 이루어진 기록이나, 철종 임금 당시에 조정의 부당한 요구로 더 이상 은행을 열지 않게 되었다는 500년 묵은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수목장을 실시하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영조 임금이 왕실 종찰인 전등사를 중수하는데 어느 솔숲의 재목을 시주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옛 소나무 산지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찾고자 『조선왕조실록』을 샅샅이 훑었어도 아쉽게 더 이상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조정의 부당한 요구로 더 이상 은행을 맺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은,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를 떠받들고 있는 ‘나부상’ 마냥, 전등사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판타지로 보는 것이 보다 더 합당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런 판타지에 관심을 갖고 호응하게 마련이다.

수목장의 현장은 동문에서 남문으로 향하는 성곽 주변의 노송림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장에 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오히려 사찰림에 대한 이런저런 제약이 더 심해졌다는 종무소의 설명이 귓가에 맴돈다.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림은 0.5ha의 좁은 면적만 수목장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하니, 절집의 숲에 없던 제한이 새롭게 생긴 셈이다. 절집이 소유한 숲 대부분이 문화재법의 적용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제한은 순전히 행정 편의적인 조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교는 숲의 종교

전등사의 숲 순례가 끝난 후, 숲을 통한 명상에 얽힌 궁금증을 풀고자 숲 명상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계신 원우 스님을 찾았지만, 스님께서는 서산 부석사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어렵게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스님께 숲과 명상의 관계를 전화로 여쭈었다.

“불교는 숲의 종교입니다. 부처님의 탄생과 수행, 득도와 열반이 모두 숲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동양의 문화는 숲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제공한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템플 스테이의 목적이 산사에 묵으면서 사찰의 불교문화와 자연환경을 느끼며,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불교 체험 프로그램이기에 숲은 그러한 목적에 가장 적합한 체험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숲 체험은 수행을 돕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숲의 기능에 대한 원우 스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은 숲에 있을 때, 몸의 활력이 증진되고, 머리가 맑아져서 지혜로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드신 분들의 경우, 숲을 접하게 되면 내면세계로 침잠해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숲 체험 프로그램을 포함한 것입니다. 숲은 인간에게 좋은 기운을 보내주는 호법신장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명상과 숲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나의 채근에 스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명상은 나의 삶에 녹아 있는 욕심, 존재, 욕망 같은 것들을 거두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나’가 없는데, 우리들은 ‘내 가족’, ‘내 명예’, ‘내 재산’과 같이 끊임없이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사대(四大) 지수화풍(地水和風)과 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인연의 법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서 나타나는 한시적인 생명체이기에 본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무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숲과 명상의 관계를 설명하시는 스님의 말씀은 거침이 없었다. “숲은 인연의 법칙이 재현되는 좋은 현장입니다. 숲은 일 년 사시사철 시시각각 한순간도 똑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습니다. 싹이 돋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숲의 모습은 사대오온에 따라 변해가는 우리들의 삶이 담겨 있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숲이 바로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현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절집 숲의 숨은 의미를 찾고자 길을 나섰던 나의 시도는 원우 스님의 설명으로 보다 명료해졌다. ‘나’를 벗어버리는 과정, ‘나’를 놓아버리는 과정이 명상이며, 항상 변화하는 숲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의 참 모습도 반추할 수 있다는 비유는 신선했다. 절집 숲과 명상의 관계란 바로 절집 숲의 정신적 기능에 대한 답변 아니겠는가?



글·사진_전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