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柳)씨와 시조

문화류씨 시조 - 류차달

마음정원(寂光) 2011. 9. 17. 18:36

초휘 해(海). 자 응통(應通). 호 아사(鵝沙). 공은 신라(新羅)말기에 유주(儒州) , 지금 황해동 신천군 문화면(黃海道信川郡文化面)묵방동(墨坊洞)에서 태어났는데 가세(家勢)가 심히 부호(富豪)였다.
후삼국(後三國)시대에 궁예(弓裔)의 신하 왕건(王建)이 신망을 얻어 천하를 통일코자 후백제(後百濟)의 견휜을 정벌하려 할 즈음 군량이 부족하여 나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이 때 공께서 수레를 많이 내어 군량을 보급하므르써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高麗)를 건국, 태조(太租)가 되었다.

이에 태조께서 공에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봉함과 아울러 대승(大丞)의 관작을 내리고, 차운달량(車運達糧)의 뜻을 취하여 차달(車達)이라 사명하시었다.

배위 김씨(金氏)는 신라 태부 알지(太傅 閼智)의 후손 균의 따님으로 2남을 두어 효전(孝全)은 대광백(大匡伯)에 추봉되고, 효금(효금)은 좌윤(左尹)을 지내었다.
공의 묘소는 황해도 구월산 남록 인좌에 모셔져 석의(石儀)가 갖추어 있고, 묘소 아래 재실 경사루(敬思樓)가 현존하고 있다.

동사(東史)에 의하면, 고려태조가 장차 견휜을 치려하는데 군량이 부족함을 걱정하니 장수들이 남방(南方)은 토지가 비옥하여 백성들의 남은 곡식이 많습니다. 하였다. 이 때 공께서 백성들의 곡식을 약탈한다면 어찌 날리를 평정하고 포악무도한 적도를 무찌르는 명분이 설수 있습니까 저의 집에 비축된 곡식이 있으니 그것으로써 군량의 공급을 돕겠습니다. 하고, 하룻밤 사이에 수레 일천 대를 만들어 군량을 보급하였다. 구월산에 흥률사(興栗寺)란 절이 있는데, 이는 신라 헌덕왕(憲德王)이 도의선사 (道義禪師)로 하여금 자리를 잡아 창건케 한 절이다. 그 후 고려 공민왕(恭愍王) 5년 丙申(1356)4월 법원선사(법원선사)가 중수하고 조선(조선) 숙종(숙종)10년 갑자(1684)애 또 중수 되었다.
숙종 갑자 중수시에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는데. 이 글은 공민왕 병신에 법원선사가 쓴 기록으로서 그 가운데 우리 대승공에 관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절에 한 신인(神人)이 있었으니 눈썹이 그린 것 같고 머리는 검으며 살결은 눈처럼 희고 마음씨는 해처럼 밝으며 주공(周公)의 뜻과 공자 의 생각 같아 인의의 은혜가 있고 도덕이 빛났다. 어느날 정자 와서 왕장군의 진중에 군량이 떨어져 전공을 이룰지 알수 없는데 이런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한가히 졸고 계십니까? 하였다. 신인이 잠을 깨어 내심으로 충절을 하 할 것을 다짐하고 하룻 밤 사이에 수레 천 대를 제작하여 군량을 실었는데 운전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이 때에 이절의 부처의 신력으로 청의와 홍의를 입은 신군 일천여명을 동구 밖에 출동시켜 잠시에 그들로 하여금 군량을 운반하여 전공을 크게 세우고, 삼한(三韓)을 통합하게 하니 그 공이 은탕왕(殷 湯王) 때 이윤(伊尹)과, 주 무왕(周 武王) 때 여상과 같은지라, 이로 인하여 신인에게 차달이란 이름을 주었다. 이 절의 영험이 아니었다면 왕장군이 삼한 통합의 대업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