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산천군서 '문화 류씨' 시조 류차달 묘 발견
- 류주환, 2011. 1. 22.
2011년 1월 14일의 뉴스에 "北 산천군서 '문화 류씨' 시조 류차달 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연합뉴스에서 작성한 것인데,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의 다수의 매체에서 이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기사를 소개하고 참고 말씀을 추가하겠습니다.
北 산천군서 '문화 류씨' 시조 류차달 묘 발견
- 연합뉴스, 2011. 1. 14.
조선중앙통신 전해
북한 사회과학원이 최근 '문화(文化) 류(柳)씨' 시조인 류차달(柳車達)의 묘를 발견해 국가보존유적으로 등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전했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이 묘는 황해남도 삼천군 달천리 구월산 기슭의 달천온천 인근 마을에서 4개의 비석, 망돌(맷돌), '묵방사라는 건축물' 등과 함께 발견됐다.
북한의 역사기록에는 류씨 시조묘라는 뜻을 가진 '류릉'이란 용어가 있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었다.
이 통신은 "묘의 비문을 해독한 결과 이번에 발견된 유적들이 고려 건국에 기여한 류차달을 제사 지내기 위한 것들로 확인됐다"면서 "류차달이 문화(현재의 삼천군) 일대에서 큰 세력을 형성해 고려의 통일에 이바지한 공로로 '삼한벽상공신' 칭호를 받았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류차달의 원래 이름은 류해(柳海)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 때 수레 1천대로 군량미를 공급한 공을 세워 벽상공신 '대승공'에 봉해졌고, 이때 '차달'이란 이름도 하사받은 것으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간행)에 기록돼 있다.(*)
한편 중앙통신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조선에는 예로부터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성'(姓)과 '본'(本)이 있었는데, 성은 남자측 혈족관계를 표시하고 본은 가문의 시조가 태어나거나 조상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고장을 의미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본'을 따지지 않고, 그 의미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 성 '柳'는 모두 한글로 '류'로 써야 합니다. 기사들 가운데 간혹 '유'로 잘못 써 있는 경우가 보였습니다. 柳씨는 본(本)을 막론하고, 명시적으로 '유'를 썼거나 쓰고 있는 개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류'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柳씨 조상들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류'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특히 언론 매체나 관공서 등의 주의를 요망합니다.
2. 문화류씨의 시조이신 류차달(柳車達)의 묘는 세칭 '류릉'이라 불렸습니다. 류릉은 황해도의 구월산 남쪽에 있는데, 일제시대 이후 남북분단에 따라 찾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류릉의 정확한 위치나 상태도 알지 못한 채로 수십 년이 흘렀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충남대학교의 류주환 교수가 2007년 8월에 전해오는 각종 자료와 항공사진을 이용해서 류릉의 위치를 모색해 보는 글을 인터넷에 게재했습니다. 그리고 재일교포로서 사업가로 성공한 류기환씨가 2008년 9월에 북한의 공식초청을 받아 방북하여 9월 26일, 류릉을 참배하는 역사적인 일을 해냈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문화재 전문가와 수행원, 촬영기사 등을 동행시켰고, 참배 관련 다큐멘터리도 제작했습니다.
문화류씨대종회에서는 2008년의 류릉 참배 당시에 촬영된 동영상을 편집하여 DVD로 제작하였습니다.
3. 기사 중에 '묵방사라는 건축물'도 발견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묵방사는 류릉의 재실(齋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6.25전쟁 당시 무너져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기사는 "'묵방사의 터'도 발견되었다"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4. 위에 초록색으로 구별 지어 놓은 구절(*)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편의상 다음과 같이 3 부분으로 내용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1) 류차달의 원래 이름은 류해(柳海)였는데
(2)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 때 수레 1천대로 군량미를 공급한 공을 세워 벽상공신 '대승공'에 봉해졌고,
(3) 이때 '차달'이란 이름도 하사받은 것으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간행)에 기록돼 있다.(*)
여기서 (1)과 (3)은 최근의 연구에 의해,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내용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류차달의 원래 이름이 '류해'라는 것이나, '차달'의 이름을 고려 태조에게서 하사받았다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직전에 비로소 세상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사실'로서 기록이 되면 안 됩니다. 이런 혼란의 주범은 위서(僞書)로 판명된 『차원부설원기』라는 문헌입니다. 『차원부설원기』는 문화류씨와 연안차씨가 뿌리가 같다고 조작해 내어 가문사(家門史)와 우리 사회의 신분관념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친 악서(惡書)입니다.
위 내용 중에 (2)만이 현존하는 문화류씨 최고(最古, 最高)의 족보인 가정보(1565년)에 실린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단, 벽상공신과 대승공이라는 벼슬이 동격은 아닙니다. 류차달은 대승공의 벼슬을 받았으며 공신전의 벽에 인물 그림을 그려 공을 기리는 벽상공신이 되었습니다.)
5. 류릉 앞에서 발견된 4개의 비석 중 2개는 무덤의 바로 앞에 있는 묘표이고, 나머지 2개는 무덤 아래의,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도비입니다. 그런데 둘 다 19세기~20세기초에 세워져서 4에서 언급한 내용을 포함한 오류가 들어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에 세워진 신도비는 연안차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추후 가능한 시점에 반드시 정리해야만 할 과제입니다.
- 2011. 1. 22.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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