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月山의 외침 이 사진은 황해도청에 근무하시던 류인규(검한성공파)님께서 1943년도에 촬영한 사진이라 합니다. 그 후 1985년도에 대종회에 기탁하여 여러장으로 복사, 인화한 사진중 류종현님이 보관한 사진을 편집한 것입니다. 구월산 전경 九月山에의 향수 柳 謹 助(시인. 중앙대 교수) 그 아득한 옛날 始祖 大丞公 어른께서 九月山 아래 자리를 잡으신 다음 雨露風霜에도 代를 이어오기 수수백년 맑은 피 근원을 回感하는 自矜의 生活로 文化柳氏 130만 同門은 어느덧 여기 名門擧族을 이루었거니 이제 삼천리 방방곡곡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남아서 이제 삼천리 방방곡곡에 보이지 않는 삶의 규범 그 희망으로 남아서 앞으론 더욱 빼어난 血統의 순수성으로 남아서 배달겨레의 귀감이 되리라 앞으론 더욱 남다른 族意와 誠心으로 뭉치고 뭉쳐 닫혀진 배달겨레의 내일을 열리라. 그리하여 조상의 슬기로 일어선 九月山은 子子孫孫 슬기로 더욱 영험한 빛의 산으로 남고 그 아득한 먼 옛날 쪽빛으로 열리던 무구한 하늘 아래 달려가 다시 보는 영험한 빛의 산으로 남고 님 그리워 대구 소리지르는 牧童마냥 근원을 回感하는 생활로 文化柳氏 同門은 元氣를 찾으리라. 아득히 먼 산 그러나 우리들 모두의 마음이 그리움에 찰 땐 가장 가까이서 일어서는 神靈한 산 九月山이여. 류능. 대종재 류능 원경 류능 전경 류능 근경 大丞柳公(柳陵) 神道碑文 - 徐衡淳 書 - - - - - - - - 묘소에 옛부터 비석이 있었으나 세대(世代)가 점점 오래되어 매몰(埋沒)되고 전(傳)함이 없거늘, 십팔세손 관(灌)이 황해도에 관찰사로 가서 묘역을 정화하고 미처 입석(立石)을 못하였더니 외손(外孫) 되는 홍감사 춘경(洪監司 春卿)에게 부탁하여 계묘년(癸卯年)<1543>에 비를 세워 그 뒷면에 기록 하였고, 그 후 을류년(乙酉年)<1585>에 십칠세손 희림(希霖)이 또 본도(本道)에 관찰사(觀察使)로 가서 종인(宗人)중에 본도(本道)의 수령(守令)으로 있는 이와 더불어 상의하여 비석을 고쳐 세우고 구지(舊誌)를 그대로 새겼으며, 그로부터 98년 후 임술년(壬戌年)<1862>에 이십칠세손 무과 기영(武科 基榮)이 사초(莎草)함과 아울러 상석(床石)과 작은 비석을 세우고 이듬해 또 신도비(神道碑)를 세워서 영구보존(永久保存)코자 하였다. - - - - - - - - - 울창한 아사달산(阿斯達山) 대인(大人)이 묻히셨네. 유래가 멀고멀어 황제(黃帝)에 이르도다. 삼한통합(三韓統合) 대업(大業) 도와 수레를 제작하니. 위대한 벽상공신(壁上功臣) 대승(大丞)으로 보답했네. 숭악(崧岳)의 보씨(甫氏)요 하구(瑕丘)의 거씨(遽氏)마냥 빛나는 가문으로 복록(福祿)을 이었도다. 쌓은 덕이 없었던들 후손에 끼쳤겠나. 산수 좋은 저 무덤 만세에 전하리라. - 이조판서를 지낸 서형순(徐衡淳)이 황해도관찰사 시절에 쓴 비문(碑文)을 1995년 판(版) 유주춘추(儒州春秋)에서 발췌한 글 중 일부입니다. - 인봉 전경(류능 앞산이 호랑이 같다 한다) 대종재실 전경 대승공 유택 사진 : 류 인 규 * 시 : 류 근 조 * 비문 : 서 형 순 * 음악 : 최 소 리 * 편집 : 류 성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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