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구월산과 문화라는 곳
문화(文化)의 내력은 "족보와 성씨 이야기"에 대략 정리되어 있다.
문화는 황해도 구월산 아래의 지역이다. 다음은 북한의 지도와 황해남도의 지도이다.
다음은 18세기 말의 황해도 지도이다(輿地圖). 구월산과 신천(信川) 사이에 문화가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화는 대략 지금의 삼천군과 신천군에 걸쳐 있었다.
다음은 지형의 높낮이가 느껴지도록 그린 지도이다. 대략 화살표 위치 근처에 대승공의 묘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구월산에 대한 자료이다.
Kuwolsan
Just across the mouth of the Taedong River from the dull port city of Namp'o stand the Nine Moon Mountains, the most spectacular peaks on the west coast. Several roads and unpaved hiking trails provide access to two of the main peaks, two main valleys, waterfalls, hot springs, old fortress walls and former shrines and hermitages. South of the main peak lies the Samsong Pleasure Ground, a favoured summer resort of North Koreans. Still further south through beautiful scenery is Woljongsa, a reconstructed temple, unfortunately only a shadow of its former glory. You can explore the main attractions in a day of driving and hiking. The mountains at Kuwolsan are about 75km (46 mi) south-west of Pyongyang.
구월산은 황해도에 있으며, 예부터 높진 않지만 산이 깊고 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장길산, 임꺽정 같은 산적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또 구월산은 단군이 속세를 떠나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황해남도 은률군과 안악군의 경계 지역에 있는 구월산은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이며 이름난 명승지이다. 궁흘산, 증산이라고도 하였다. 도한 아사달산, 삼위산 등으로도 불리웠으며 높이는 954m, 넓이는 약 110㎢이다. 제일 높은 사황봉을 비롯하여 오봉, 인황봉, 주거봉, 아사봉 등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톱날같은 능선을 이루며 솟아 있어 구월산은 황해남도의 서부지역 다른 데서는 보기힘든 우아한 산악 풍치를 이루고 있다. 광활한 낮은 벌지대에 우뚝 솟아 있는 구월산에는 산성골, 오봉골, 운계골, 회장골, 원명골 등 깊은 골짜기들이 있으며 골짜기들에서는 수정 같이 맑은 물, 못, 폭포들, 기암절벽들, 울창한 숲, 철따라 피어나는 갖가지 곷, 가을의 단풍 등 자연의 모든 것이 신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구월산의 아름다운 자연미는 특출하게 뛰어나다.
구월산은 중생대에 생겨난 화강암이 오랜 세월 풍화되고 침식, 삭박되어 오늘과 같은 제모습을 갖게 되었다. 골짜기들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동쪽에서 석성천, 서쪽에서 한일천, 남쪽에서 장연남대천, 달천천, 북쪽에서 한이천을 이룬다. 북쪽 골짜기에는 「삼수의 절경」으로 꼽히는 못들인 부여, 마연, 요연이 있으며 산허리에는 7년간의 가물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이름난 못인 석담이 있다. 서쪽 비탈에서는 고요연과 금란굴의 경치가 뛰어나다. 금란굴과 같은 큰 굴이 있는 산이라 하여 구월산을 굴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칠색 무지개를 비껴주고 더없이 시원한 절경을 이루면서 떨어지는 룡연폭포, 삼형제폭포를 비롯한 폭포들은 아름다운 화폭을 연상시킨다.
연평균 기온은 9℃,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 안팎이다. 또한 구월산은 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호두나무, 잣나무, 수유나무, 동백나무, 분지나무 등 경제적 가치가 큰 기름나무 뿐만 아니라 만삼, 단너삼, 당귀, 천남성, 족두리풀 등 약초도 많다. 봄철의 구월산은 참으로 아름답다. 수를 놓은 듯 진달래봋이 만발하여 산봉우리들과 바위틈, 골짜기들 그 어디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데 그것은 높은 산지대에서나, 다른 낮은 산, 언덕 지대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한 절경이다. 단풍이 온산을 붉게 물들이며 온갖 과일이 탐스럽게 무르익는 가을의 구월산도 봄경치에 못지 않다.
구월산에는 꿩, 삼광조, 호반새, 꾀꼬리, 두견새 등 새들이 많다. 복작노루, 너구리, 고슴도치, 산토끼 등 산짐승도 적지 않다. 자연풍치가 아름답고 동식물자원이 풍부한 구월산은 자연보호구가 설정되어 있다. 구월산에는 단군이 등산하였다고 전하여 오는 단군대를 비롯하여 단군신화와 결부된 전설들이 있다. 구월산에는 패엽사, 월정사 등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솜씨를 보여 주는 옛건물들이 있다. 패엽사는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랜 절이며 우리 나라에서도 이름난 절의 하나이다. 또한 황해도 5대 산성의 하나였던 구월산성터가 있는데 조선 전반기에는 이곳에 양곡을 저장하는 창고 좌창, 우창이 있었다.
높이 954m이다. 본래 이름은 궁홀산(弓忽山)이었으나, 후에 궐산(闕山)이라 하다가 다시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고 하며, 단군(檀君)이 도읍을 옮긴 후 은퇴한 아사달산(阿斯達山)이 바로 이 산이라는 설이 있다.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을 모시는 삼성사(三聖祠)와 단군대·어천석(御天石)·사왕봉(思王峰) 등 단군의 신적(神蹟)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중심지를 이루어 많은 절과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주봉인 사황봉을 비롯하여 오봉(859m)·주거봉(823m)·삼봉(615m)·아사봉 등의 봉우리들이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흑운모화강암·각섬석이다. 산성골·오봉골·운계골·화장골·원명골 등의 골짜기가 있으며, 한이천·한일천·남대천·구월천·산촌천 등의 하천들이 발원한다. 무성한 삼림과 계곡을 흐르는 물이 한데 모여 용연폭포(龍淵瀑布)의 절경을 이루며, 부근에는 송화·신천 온천 등이 있다.
대표적인 절로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 건립된 패엽사(貝葉寺)가 남아 있다. 황해도 5대산성의 하나인 둘레 5.23km에 이르는 구월산성의 옛터가 있으며, 고려시대에 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있다. 또한 6·25전쟁 때 반공의용군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북한 공산군에 대항하여 유격전을 벌인 전적지이기도 하다.
황해도 신천군과 은율군에 걸쳐 있는 높이 945m의 산으로서, 우리나라 4대명산 중의 하나이다.
기반암은 흑운모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심한 풍화작용으로 도처에 기암절벽을 형성하고 그 사이에 작은 내가 흘러 풍치가 아름다운 곳이 많아 명승지를 이룬다. 아사달산(阿斯達山)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민간인 사이에서 단군(檀君)이 아사달에서 9월 9일에 승천하여 신(神)이 되었으므로 구월산이라 일컫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고봉은 사왕봉(思王峰 또는 思皇峰)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동남쪽으로 안악·신천·재령 등의 평야지대와 서북쪽으로 넓은 황해와 평안남도의 남포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또한, 북동쪽에는 오봉산(859m)이, 남쪽에는 아사달봉(阿思達峰, 687m)·비산(飛山, 583m) 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 정하였다가 이곳 구월산에 옮기고 수천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산에는 단군에 관한 성적(聖蹟)이 곳곳에 있는데 단군이 있었다는 장당경(藏唐京), 단군과 단군의 아버지·할아버지를 모시는 삼성사(三聖祠), 단군이 올라가 나라의 지리를 살폈다는 단군대(檀君臺), 활쏘는 데 사용한 사궁석(射弓石)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은율읍 동쪽 4㎞ 지점에 구월산성이 있다. 주위 약 4,320m, 높이 4.5m이고, 배모양으로 되었는데, 1012년(고려 때) 여진족과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한 것이다.
구월산에는 고려시대 이후 불교사찰이 많이 지어졌으며, 오래된 15개의 사찰과 8개의 암자가 있다. 대표적 사찰로는 산 동쪽(山內)에 패엽사(貝葉寺, 일명 寒山寺)와 산 서쪽(山外)에 정곡사(停穀寺)가 있다.
패엽사는 9세기초 신라 애장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우리나라 불교 31본산 중의 하나이다. 본전 한산전(寒山殿)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구도가 우수하고 세부가 번잡하지 않아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정곡사는 5세기 고구려 장수왕 때 세워진 것으로 원정사(圓井寺)와 같이 구월산 중의 명찰이다. 정곡이라는 절 이름의 연기는 고려 말기 공민왕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모시고 나왔던 원나라의 주태사(周太史)가 수레를 멈추었다는 데 있다. 고려시대의 여러 임금들은 절 부근의 산수풍경을 사랑하여 자주 수레를 멈추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 초기의 건축으로 그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하며, 맑은 냇가에 있는 청풍루(淸風樓)는 청정세계(淸淨世界)를 연상하게 한다.
정곡사에서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면 용연폭포(龍淵瀑布)가 장관을 이룬다. 이 폭포의 물은 구월산 상봉에서 흘러내려 수원이 길고 멀기 때문에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주민들은 이 폭포가 기우제에 영험이 있다고 믿는다. 16세기말의 문장가 허균(許筠)은 이 폭포를 보고 “백길이나 되는 저 깊은 소용돌이 저 속에 많은 신룡(神龍)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는지.”라고 읊었다.
절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삼형제폭포가 있는데, 3필의 흰 비단폭을 걸쳐놓은 것 같은 모양의 기관(奇觀)을 이룬다. 구월산 남쪽 기슭의 맑은 시내인 구월천을 따라 내려가면 달천온천(達泉溫泉)이 있고, 그 서남쪽에는 삼천온천(三泉溫泉)이 있다.
삼천온천 부근에는 청나라 대군에 대항하여 외롭게 분투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한, 이름도 모르고 성만 아는 황모(黃某)의 기념비인 황의사비(黃義士碑)가 외로이 서 있다. 달천온천 동북쪽에는 류릉(柳陵)이라고 불리는 문화류씨의 선조묘가 있다. 그리고 부근에 류응두(柳應斗)가 자주 찾던 묵방사(墨坊寺)의 명승지는 지금은 묵방재(墨坊齋)가 되어 류릉을 지키는 재실로 변하였다.
- 2004. 12. 9.
채하 류주환 (대승공 36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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