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걸사정신-한국불교 금강선원 활안(한정섭)스님 (불교방송 아침법문 - 2007.11.3)
안녕하십니까. 활안 한정섭입니다.
요즘은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감기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걸사정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부처님의 하루일과는 결정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생동안
지내시는 그 경과를 대강 살펴보면 한 여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전 여섯 시부터 열두 시까지는 천안으로 세상을 관찰하시고 중생들을 위해서 탁발하셨고, 열두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는 자비삼매에 들어서 수행자들의 고통을 살피셨고, 저녁 여섯 시부터 열 시까지는 수행승들의 방문과 친견을 허락해가지고 대화를 나누셨고,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는 천인들과 악마들을 상대로 문답하셨고, 새벽 두 시부터 세 시 사이는 경행하셨고,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는 오른쪽으로 누워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로 수면하셨으며,) 마지막으로 새벽 네 시부터 다섯 시 사이에 열반에 들어서 아라한 경지에 머무르셨다고 합니다.
평등성중(平等性中)에 무피차(無彼此)하고 대원경상(大圓鏡上)에 절친소(絶親疎)라. [평등한 성품 가운데 나와 남이 없고, 둥글고 큰 거울 위에는 친하고 성김이 없느니라(자경문). 유식론의 4지(四智)인 성소작지(成所作智, 제5식), 묘관찰지(妙觀察智, 6식), 평등성지(平等性智, 7식, 말나식), 대원경지(大圓鏡智, 8식, 아뢰야식)를 의미하는 구절].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이 어떤 계급에 있어서도 편애가 없이 중생을 보살피셨으니, 부처님께서 반야지혜에 머물러서 탁발하는 장면이 금강경 제일 법회인유분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밥 때가 되어 옷을 잘 입으시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대성에 가서 밥을 비셨는데 그 성중에서 차례로 비시고 본자리에 돌아와서 밥을 다 잡수시고 옷과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금강경은 일반경전도 아니고 아함, 방등을 설한 다음에 대승경전을 초입으로써 설하신 경전인데, “대승경전을 설한 가운데서 무슨 하실 일이 없어서 밥 먹는 일부터 나오느냐.”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충만해지고 지혜가 커질수록 자기 지혜, 자기 지식에 몰두하다보면 밥 먹고 쉬는 시간도 잊어버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성일수록 때에 따라 밥 잘 먹고, 일 잘하고, 옷 잘 입고, 말 잘하는 그런 행동을 잘 하는 것이 곧 불교의 근본이라는 이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규봉스님은 이 대목을 반야의 정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금강경오가해 참조) 생각해보면, 아함 방등 법문도 아니고 아까 이야기했듯이 대승보살들을 가르치는 최고급 지성불교에서 무슨 할 일이 없어서 이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하느냐. 이러게 이야기하지만 귀한 사람이나 천한사람이나 먹지 않으면 죽게 되어있으므로 반야의 정종(正宗; 바른 종지)이라 하는 것은 생명을 근원을 잘 지켜가는 이치를 설명하신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대승보살들은 어떻게 밥을 먹어야 잘 먹는다고 하겠느냐. 규봉 스님은 계정혜 삼학으로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밥 때가 되어가지고 옷을 입으시고 발우를 가지시고 사위대성에 들어가 밥을 비셨는데, 그 성중에서 차례로 비시고 본처로 돌아오셨다.“ 까지는 계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고, ”밥을 잡수시고, 옷과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까지는 선정과 지혜를 함께 보이신 장소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규봉스님께은 그 계의 대목을 화주(化主)와 화시(化時), 화의(化儀), 화처(化處), 화사(化事), 화등(化等), 화종(化終) 등 일곱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선정과 지혜에 대해서도 경자연, 정신업, 정입정, 셋으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화주(化主)는 세상을 교화하는 주인이신데, 곧 여기서는 세존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세상을 교화하는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는 대주(가장), 주부가 제일이고, 나라에서는 임금임과 의사가 제일이며, 절에서는 공양주, 화주가 제일이기 때문에 모두 임금 ‘주’자를 쓰는 것입니다. 이들이 잘하면 가정이 화평하고, 세상이 편안하게 되죠. 일체중생이 모두 깨달아서 성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잘못하면 집안도 망하고, 세상도 망하게 돼 있죠. 말하면 대주가 바람이 나고, 주부가 주부자리에 있지 아니하면 집안이 망하고, 임금이 임금임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아니하면 세상이 망하며, 공양주와 화주가 수행자를 보호하지 않고 절을 가꾸지 아니하면 불국정토가 망가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화주로 보는 것은 세상을 교화하는 주인이 되는 까닭이며, 그 이름을 세존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우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등, 십호 가운데에서 전체적인 면에서 총무가 되기 때문에 세존이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천상,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인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세존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겁니다.
둘째, 화시(化時)는 즉 밥 때인데, 교화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아침밥을 지을 때, 또 남에게 밥을 베풀기 좋은 때를 말합니다. 하루에 한 때 먹는 수행승들의 입장에서 보면 밥을 빌기가 가장 편안한 때이기 때문에 아침 이 시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밥 때 즉 우리나라에서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할 때 바로 진시에 나아가서, 정오 사시에 들어오셔서 제법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 주부들이 짜증을 많이 내는 것은 몇 안 되는 식구가 세 번, 네 번으로 밥상을 차려서 각자 도산으로 음식을 먹기 때문인데, 한 솥에 밥을 먹는 사람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이 밥을 챙겨먹으면 얼마나 간단하고 다정해서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종일토록 밥상 놨다, 끝났다. 하는 것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외국에서 시집와서 한국에서 사는 주부들이 한국 사람들은 어째서 똑같은 음식을 세 번이나 거듭하여 먹는데 종일토록 밥상을 놔두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짜증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지성인일수록 때에 따라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실 줄 알아야 됩니다. 하물며 보살도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때에 구분이 없이 함부로 먹고, 또 안 먹다가, 먹다가 이렇게 한다면 제삼자가 볼 때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화의(化儀)인데 즉 밥 먹는 의식입니다.
또 밥을 빌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 이지요. 복장을 단정히 하고 밥을 챙겨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뭐니 뭐니 해도 밥 먹는 일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밥을 먹는 사람이 내복바람으로 앉아서 아무렇게나 앉아서 먹는다든지, 또는 들고서 서서 먹는다든지,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고 또 애들을 위해서도 교육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탁발 가실 때나 와서 진지를 드실 때도 반드시 복장을 단정히 하고 공양의식을 집행하셨던 것입니다.
평상시 절 안에 계실 때는 간단한 삼조가사를 두르시고 계시죠, 또 일을 할 때는 밖에 나가서 뭐 일을 거들고 할 때는 오조나 칠조 가사, 구조가사를 입고 하지만, 적어도 공양을 받으러 갈 때는 대가사를 입고 위의를 갖추고 천지가 진동하는 그런 모습으로 늠름하게 나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밥을 얻으러 간다면 거지가 밥을 얻으러 갈 때에 기가 죽어가지고 가는 것 같이 느끼지만 부처님은 밥을 얻으러 가는 것이 곧 중생을 교화하러 가는 것이요, 중생의 복전이 되어주러 가는 것이요, 세상을 복되게 만드는 거룩한 일을 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직장에 나가듯이 당당한 마음으로 나가셨던 것입니다.
네 번째는 화처(化處)인데, 바로 교화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다 절을 지으면 좋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부처님께서는 항상 비산비야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고, 숲이 있고, 물도 있고, 새소리, 이렇게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장소이면 참 좋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너무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중생을 교화하기가 어렵고, 또 도시 가운데 있으면 번잡하고 시끄러운데 있기 때문에 한가한 도시 중간에 자리를 잡게 한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산중에 절을 두고 있는 불교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옛날 고구려, 백제, 신라 초창기에 불교가 수입되었던 장소를 보면 모두가 시내 한 복판에 있습니다. 경주시내에 있든지, 공주에 있던지, 웅천에 있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다 도시 한복판에, 그 때는 도시가운데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있었겠지요. 모두가 대도시 근처 약 4킬로 이내에 떨어져 있었으며, 분황사 같은 절은 바로 궁중과 인접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말하는 화처는 즉 사위성인데 코살라 임금임이 사시는 왕궁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이고, 도시로부터는 약 4킬로 정도 떨어져서 한가하게 아침에 산책 겸해서 걸어가면 알맞게 공양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장소가 되겠습니다.
다섯 번째, 화사(化事)는 두타행(청빈한 수행)을 말합니다.
밥을 빈다고 하는 것은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자비심을 일으켜서 동사섭을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밥만 비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수행자에게는 이타행을 실천하게 하고, 공양자에게는 복덕을 짓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락경에 이타행을 하려면 걸식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했고, 정명경에서는 상대를 대해서 교화하기 때문에 반드시 걸사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걸사행을 통해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하는 이치를 산중에서 살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 화등(化等)은 평등교화를 말합니다.
안으로는 불성을 이치에 맞게 행하고, 밖으로는 빈부귀천을 보지 않고 편벽된 마음이 없이 탐욕과 거만심을 여의고, 귀천상하에 관계없이 구걸함으로써 범부들의 질투심과 들의 이에 스님들의 차별심을 깨뜨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섭존자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을 지어주야야 한다고 해서 늘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밥을 빌었습니다. 수보리는 반대로 부자 집만 다니면서 밥을 빌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밥을 주려면 어려우니까 차라리 부자 집에 가서 밥을 비는 것이 좋다 이렇게 했는데, 이것은 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복을 지어야 되고, 부자는 또한 내생을 대비해서 복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불자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차별이 없이 해야 된다.
요즘 우리들이 화주를 나가서 신도들에게, “가난하기 때문에 여기는 들러서 안 된다든지, 부자이기 때문에 더 가도 걱정이 없다든지 이런 생각보다는 많이 얻든지, 적게 얻든지, 권선을 크게 하든지, 적게 하든지 간에 관계없이 평등한 마음으로 동전 한 푼이라도 귀하게 여겨서 시주할 수 있도록 하고, 쌀 한 톨이라도 복을 짓는데 힘을 보탤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주도록 하다면 가난한 사람도 즐겁게 동참할 수 있고, 부자 또한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왕가나, 사대부집안이나, 장자 집이나, 거사의 집은 말할 것도 없지만, 술집이라든지, 음녀집이라든지, 점받이 하는 집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다니셨습니다. 매일 칠가식을 했는데, 이것은 적어도 출가한 스님은 일곱 집은 하루에 책임지고 교화할 의무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시주의 것을 먹고 앉았어도 중생 세계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앉았다면 누가 그 고통을 때워 주겠습니까? 부처님은 매일 가서 밥을 얻으시면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마음속에 유념했다가 부자집에서 초청을 했다든지, 임금임이 특별 공항을 할 때 가서 공양 잡수신 뒤에 “무슨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장자들께서 부처님께서 뭐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며칠 전에 어느 마을에 가서 공양을 받으러 갔는데, 밥도 못하는 것이 있었고, 어느 마을에서는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고통하는 것을 봤는데, 그런 것에다가 혜택을 준다면 나에게 혜택을 주는 것하고 똑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 한 분의 공양으로 인해서 많은 중생들이 혜택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경전에 나오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화종(化終)인데, 밥을 다 먹은 뒤에 어떻게 하셨느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즉 부처님은 얻은 밥도 네 몫으로 나누어가지고 일부는 병든 비구들을 주시고 일부는 빈병걸인들을 주었으며, 일부는 수륙중생들에게 베풀고, 일부만을 잡수셨습니다. 그러니 만일 부처님께서 밥을 비시지 않는다면 이들 중생들에게 이익되는 일이 없기 때문으로 다른 사람들이 복을 짓는데 인색한 일이 되었으므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처님은 탁발하셨던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특별히 부처님께 공양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특별한 음식을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해도 가능하면 한달에 한,두 번 그런 음식을 잡수셔도 매일 나가서 탁발하는 것으로 소위 의식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불교에서는 이같이 탁발정신이 빠져 있으므로 시주의 것을 먹으면서도 그 은혜를 망각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식당작법이라는 반야심경을 꼭 외우고 밥을 먹게 되어있지요. 큰 제식을 할 때는 약 삼십 분 동안 읽는 큰 반야심경이 있습니다만, 요즘은 그것을 줄여서,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여래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이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여 사회 대중을 위하여 봉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고 먹고, 또 다 먹고 나서는, “이 인연공덕이 널리 일체에 미쳐서 본인 모두 다함께 불국정토를 건설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이렇게 하고 회향하는 그런 의식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부처님은 밥을 빌어서 잡수신 다음에, 그 다음에는 입정에 드셨는데, 입정에 들려고 하면은 의발을 거두고, 손발을 씻어야 하므로 옷과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옷과 발우를 거두는 것은 공부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발을 씻은 것은 신업을 청정히 한 것이며, 자리를 깔고 앉으신 것은 입정에 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멀쩡한 사람이 왜 밥을 얻으러 다니느냐. 핀잔해서 괴롭게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더러 밥 얻으러 갔다가 시비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우리가 평상시 집에서 밥을 먹었다 하더라도 밥상정도는 치우고 설거지는 깨끗이 해놓고, 아무리 바빠도 해놓고 난 뒤에 손발을 씻고 앉아서 그 다음에 경전을 보든지, 입정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할 것 같으면 그 염불하는 마음이나 경전을 공부하는 마음이 더 청정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놔두고, 설거지 그냥 놔두고, 상도 그대로 놔두고 하면, 벌레들도 와서 침범하게 되고, 남이 와서 보더라도 지저분한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에 부처님은 항상 먼저 자기 공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발을 씻고, 또 자리를 깔고 앉으신 뒤에 입정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하신 스승님이지만 밥을 얻으러 갔다가 한 농군의 핀잔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한 농군의 집에 밥을 얻으러가니까 바라문 청년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당신도 농사짓고 밥 잡수십시오.” “나도 농사짓고 밥 먹네.” “아니, 쟁기도 보이지 않고, 소도 없고, 밭도 없고, 씨앗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산다는 말씀입니까?” “이 사람아 꼭 논밭만 가지고 유위의 농사를 짓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여래의 밭에다가 보리의 종자를 심어가지고 번뇌의 풀을 매고, 열반의 과를 얻는 농사를 짓는다네. 내 마음의 여래의 밭에다가 보리의 종자, 깨달음의 종자를 심어서, 원래 심어있어, 그런데 우리의 그 마음속에서 번뇌 망상을 일으켜가지고 번외의 풀이 꽉 차있으므로 그것을 매가지고 열반의 과, 깨달음의 결과를 얻는 농사를 짓는다네.” 얼마나 거룩한 농사입니까?
그러니까 세상에는 밭에다가 쌀보리만 심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진짜 농사인줄 알았는데 이 청년이 깜짝 놀라가지고 “참으로 부처님은 희한한 농사를 다 짓고 계십니다. 저도 오늘부터 그런 농사를 지으려는데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들어가서 한 바릿대의 밥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조건부 음식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내가 자네가 기쁜 마음으로 주는 음식 같으면 받겠지만 이미 나한테 꾸지람을 주고 또 상대방을 무시하고, 이제 그 교화를 받아가지고 기쁜 마음이 났다고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조건부 음식이기 때문에 내가 받을 수 없네 그러니까 그건 자네가 먹든지, 아니면 꼭 주고 싶어 한다면 저 울 밖 깨끗한 물에다가 한번 버려서 물속에 있는 짐승들한테 보시를 하도록 하게. 그러나 자네의 마음이 진짜 정리되지 않고 아직도 오만한 마음이 있다면 물짐승들도 그것을 먹기 힘 들거여. 그러니 일단 나는 오늘 밥을 받지 않을 것이니 그 음식을 맑은 물에다 한 번 버려봐.” 그래서 부처님께서 보는 가운데에서 음식을 맑은 방죽 속에다가 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기서 무슨 폭탄이 터져가지고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식으로 하니까 그 청년이 깜짝 놀라가지고, “부처님 아직도 내 마음속에 거만한 마음이 송두리째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완전히 뽑아서 녹였으니 앞으로는 저의 집에 와서 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저희들도 복을 짓고, 또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해탈하게 될 것이며, 장차 자라나는 아이들도 많은 인연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오늘 이 인연으로 깨달음을 얻었으니 빨리 집안을 정리하고 출가해서 희한한 농사를 지어보겠습니다. 여래의 밭에다가 보리의 종자를 심어가지고 번뇌의 풀을 뽑고 열반의 과를 얻는 그 성스러운 농사를 기필코 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소위 그 후에 이 청년은 출가해가지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아함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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