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사람이 서는 자리 / 일타스님

마음정원(寂光) 2006. 6. 12. 02:53

 

 

우리는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차례 자기의 입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지니고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난처한 자리에 서게 되어 본의아니게 오해를 받게 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아주 어려운 입장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서는 자리는 무엇보다도 신중히 정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숙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일을 해나가야 되는데,
이때 간혹 자기가 서는 자리에서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강가에 모인 사람들은 강을 건너기 위해 여러 가지 지혜를 짜냅니다.
이때 탁자 위에 여러 가지의 지혜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탁자 위에 떨어진 지혜를 간추려 보면 대강 몇 가지의 유형으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이렇게 되어 나갈 때 그곳에 있는 나는 집약된 의견 중 어느 것 하나늘 지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서는 자리가 여러 사라들 속에 마련이 됩니다.

다행히 의견이 하나로 합일되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천차만별의 판단력을 간단하게 하나로 뭉치기는 힘든 것입니다.
결국 의견들이 사분오열됩니다. 그때 곧 파당이 생깁니다.
파당이 된 그 그룹은 자기들이 제출한 의견을 채택해서 강을 건너고자 강한 주장을 폅니다,

그러면 이내 상대편 그룹에서도 같은 입장을 취합니다.
한동안 다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강을 건너야 한다는 본래의 주제는 어디로 멀리 보내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타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또 타도당하지 않으려고 힘을 씁니다.
이쯤되면 판국은 야릇하게 변모해 버립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곳에 와서 있는지조차 망각해 버리게 됩니다.
오직 상대편을 쓰러뜨리고 자기들이 옳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여 어떤 각광을 받는 것이
농사인 듯 딜레마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강가에 나온 것은 분명히 우리의 앞에 보이는 강을 건너서 저쪽 강안江岸까지 무사히
당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운 때에는 강을 건너는 데에
필요한 지혜가 만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강을 건너는 데 필요한 정확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강을 진실로 건너본 경험을 지닌 사람이 그 대중 가운데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중이라는 것이 무슨 확고한 뜻을 지니기보다는 그냥 모이다 보니 대주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뚜렷한 가치나 안목을 지니지 못한 것이 또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모인 대중은 결국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면 어떤 가치를
그쪽으로 전환시켜버리고 마는 판국을 꾸미기 때문에 뚜렷한 가치기준을 갖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 이런 시대를 우리는 혼돈의 시대, 전환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강가에 나온 것은 목전의 강을 건너 저 언덕에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강가에 이르러 마련해야 하는 자기의 설 자리는 분명해집니다.

두 다리에 힘을 꼭 넣고, 반듯이 서서 강 건너 저 언덕을 분명하게 바라보며 견고한 배를
마련하여 촌각도 허비함이 없이 열심히 노를 저어가야 될 것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강가에 서서 거기 나온 얼굴들을 보고 무어라고들 평가를 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보고서 하는 평가입니다.
말하자면 강을 건너는 그 중요한 일보다는 다툼을 즐긴다거나 금과 같은 시간을 헛되이
죽이고 있는 자리를 보고서 내리는 평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서는 자리'를 분명하게 골라서 서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어디에든 서야 합니다.
그 설 자리는 자기 자신이 마련해서 서야만 합니다.
많은 자리가 있습니다만, 사람이 서야 할 자리를 정확하게 골라서 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리에 알맞은 곳을 골라 정확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서는 것이 입지立地입니다.
정확한 자리에 서서 또한 흔들림이 없어야 분명한 자기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혹不惑이라고 표현합니다.

설 자리를 잘못 정하고,
또 많이 흔들림을 계속하다 보면 사람대접을 잘못 받기가 매우 쉬운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리켜 외줄을 타는 분장사라고 비유했습니다.

외줄을 타기가 얼마나 어려운 노릇입니까.
몸의 중심을 잘못 잡아 한번 실수를 하면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져버릴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혜를 얻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은 곧 인생이라는 외줄을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잘 가기 위함입니다.

부처님의 45년 설법은 곧 우리들로 하여금 사람이 서는 자리를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신
노정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하여 사람이 서는 자리를 정확히 잡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