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
天上天下 唯我獨尊
천상천하 유아독존
<서응경(瑞應經)>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높다.
무비스님 해설 ; 이 말은 아마도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며
따라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이기도 하다.
왜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되는가 하면
불교는 사람 사람들의 진실 생명이 무엇인가를 깨우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진실 생명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야말로
천상천하에서 오직 스스로가 홀로 높다.
어떤 특정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존엄성이 다 그렇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의 존엄성만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십분 활용하면서 산다면 더 이상의 행복은 없다.
더 이상의 자유와 평화도 없다.
부처님의 탄생을 한마디로 그 의미를 설명한다면
사람사람이 천상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며
그 존재가치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오셨다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6년의 피나는
고행을 거친 후 보리수 아래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 큰 깨달음의 내용이 다름 아닌 자신의 참 생명과
사람 사람들의 참 생명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탄생은 곧 깨달음에서 그 의미를 나타내며
깨달음이 있기에 그 탄생이 또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부처님이 오신 날 누구나 반드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거론하는 것은
그래서 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약간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전등록이나 선문염송에는 어느 경전에서 인용하였다는
말은 없고 다만
“세존이 처음 태어나실 때에 두루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시며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하시다.”라고
하였다.
서응경(瑞應經)이라는 경전의 말을 뜻으로 인용한 것이다.
서응경이라는 경전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하가낙자(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何可樂者),
즉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높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뿐인데 무엇이 즐겁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장엄경(大莊嚴經) 전법륜품(轉法輪品)에는
“천상천하 유아최승(天上天下 唯我最勝)”이라고 되어 있다.
또 수행본기경 상권 강신품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즉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
삼계가 모두 고통인데 내가 마땅히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아무튼 세존의 탄생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탄생을 인하여 성도(成道)가 있었고 성도를 인하여 천하의
인류를 제도하신 것이다.
제도를 하였다하더라도 보통의 제도가 아니라 모두를
부처의 삶을 살게 한 것이며 부처의 삶이란 개개인의
진실 생명이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공간적으로 무한하며
그 능력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누리고 사는 삶이다.
이러한 이치를 부처님은 발견하였고 그의 발견을 만천하에
선언한 말이 곧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로 함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 말 한마디만 제대로 이해하여
깊이 새기면서 살 줄 안다면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쉽게 정리하면 자신과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다 같이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자신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세존이 탄생하신 문제에 대해서 조사스님들은
비방과 찬탄이 분분하다.
눈이 밝은 이들은 왕궁에서 탄생한 그 일 자체가 본래로
그러한 진리를 보이신 것이며, 일곱 걸음을 걸으신 것은
본래 그러한 진리를 거듭 설명한 행위라고 하였다.
그런데 거기다가 또다시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킨
것으로써 본래로 완전무결한 진리를 세 번째 드러내어
보였건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소리를 질러 천지를 진동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사실이다.
세존이 태어나면서 그와 같은 행위를 실제로 하였거나
하지 않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경전이 그렇게 전하는 것은 모든 존재의 본래로
그러한 진리를 깨우쳐 주고자 하는데 뜻이 있기 때문이다.
삽계익(?溪益)이라는 스님의 이 말에 대한 게송이 매우
유명하다.
“일곱 걸음 두루 거닐어 온전한 진리의 몸을 드러내니
천상에나 인간 세상에 겨룰 이가 없네.
그러나 새벽에 걸어 온 것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어제 밤에 벌써 온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莫道早行人不見 須知更有夜行人].”라고 하였다.
끝의 두 구절이 특히 뛰어나서 인구에 회자된다.
세존이 그와 같은 행위로써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다 갖추고
있는 본연의 진리를 잘 드러내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세존이
그렇게 드러내기 전에 이미 다 갖추고 있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부처님은 몰랐다는 뜻이다.
오히려 한 발 늦은 일이라는 말이다.
한 발 늦은 일이니 공연히 헛수고만 한 격이 되었다.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갖추고 있으며 개개인이 다 완전무결한
도리를 안다면 눈이 밝은 사람으로서는 죄송한 일이지만
당연히 그렇게 폄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불교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와 같은 차원의 가르침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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