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의 향기

가을에 띄우는 편지 - 무비 큰스님

마음정원(寂光) 2005. 11. 17. 12:54


무비큰스님께서

 

가을에 띄우는 편지 (불교신문)

어른이 떠난 황망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종단의 화목’입니다

높은 하늘은 감청색이요, 넓은 들판은 황금색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등하가친(燈下可親)이라고 하여 경전읽기도 알맞고,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하여 뛰어놀기도 좋은 계절이 가을이라고 했습니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에 맞추어 자식농사도 함께 거두기 위하여 입시기도에 여념이 없는 모든 수험생 부모님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올리며 좋은 결과를 위해 함께 축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늘 정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여일하게 수행하는 모든 불자님들께 출가자로서 평소에도 늘 고맙게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종단의 어른을 황망히 보내버린 모두의 허허로움은 계절의 스산함과 함께 무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제 그 망연함과 서운함을 뒤로 하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화목일 것입니다. 화목을 깨뜨리면서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포살을 할 때마다 법사는 맨 처음 대중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화합하십니까?”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 이렇게 물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만큼 깊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덧붙인다면 산승은 이 화합이란 말은 화목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화목이 맞다’고 참으로 확신합니다. 화합이라는 단어에는 뭔지 모르지만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화목이란 말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자연스럽고 따스함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보름 만에 모든 제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제일 먼저 물어본 말도 ‘화목’입니다.

부처님이 ‘화목하냐’고 첫마디를 시작한 그 깊은 뜻을, 제자들을 데리고 오래오래 살아 나이가 들만치 드니 이제나마 어슴프레 알 것도 같습니다. 어찌 보면 견성성불 하는 일보다도 화목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견성성불이야 개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화목은 대중적인 일인 까닭입니다.

화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화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사상을 집대성해놓은 〈법화경〉도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상불경보살은 ‘모든 이를 공경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부대중이 항상 서로서로 공경한다면 화목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제 선택의 날이 점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입장이나 관점이 다른 이유로 선택의 결과가 다르다 하여 서로의 화목이 깨진다면 그 선택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런 선택이라면 그 선택마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점이라고 할지라도 부처님의 최고 관심사는 ‘화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목을 도모하려는 그 마음이 불교에도 플러스가 될 것이요, 자기 수행에도 도움 될 것임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평범한 상식입니다. 화합보다 더 중요한 수행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수희찬탄공덕을 설해놓았던 것입니다.

이 가을 모두가 청량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그 푸른 하늘만큼 명징했으면 좋겠습니다. 투명함과 맑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모두가 화목하길 기원하면서 이 편지를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나무화목보살마하살.

무 비 범어사 승가대학장

[불교신문 2170호/ 10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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