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오스님의 능엄주 수행기
요새 선지식이 어데 있노
철오스님 / 어린이지도자연합회 회장
처음 머리를 깎고 절집에 들어 왔을 때 나는 참으로 불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선방에 앉기만 하면 한 철에 공부를 끝내겠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선방에 들어가니 한 철은 고사하고 수삼 년의 세월을 소리 없이 흘려 보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제하고 한 스무 날쯤 지났을까 우연히 송광사 객실에서 한 도반이 담양 보광사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담양은 가까운 곳이라 한번 찾아가 보기로 마음을 먹고 담양행 버스에 올랐다.
담양에서 다시 완행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에 내려 산길을 따라 한참 걷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에 올라 걸망을 풀고 마른 풀밭에 주저앉아 먼 산을 쳐다보니 희미한 초승달 빛이 꼭 답답한 내 마음 같았다.
차가운 냉기가 내 얼굴을 스치자 허무하고 쓸쓸한 마음이 갑자기 맑아지고 깨끗해지면서 잔잔한 평화가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한참 고요한 평화에 젖은 채 문득 ‘아! 중노릇은 이 맛에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미한 불빛을 좇아 절 마당에 이르니 저 쪽 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법당 문을 열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평소의 호기가 다시 치솟아서 사람 소리 따라 방문 앞에 서서 “객 문안이오.” 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방문이 열리고 모두 낯들이 익어 무척이 나 반가웠다.
모두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나서, 한 도반이 나를 보고 “요즈음 정진이 잘 돼요?” 하고 물었다.
“아이고! 말도 마소. 공부가 다 뭣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오.” 하고 대답하니 “얼굴이 훤하고 좋은데 와 그리 엄살을 떠요.” 하며 그 도반은 도로 되받아 쳤다. 그러면서 “그럼 큰스님한테 한번 찾아가 보소.” 하고 덧붙였다.
“요새 큰스님이 어데 있노, 요새는 선지식이 없는기라.” 하고 대답은 했는데, 문득 뇌리에 선지식이란 말이 꽉 차게 들어왔다.
‘선지식을 친견한다? 암, 좋지.’ 마음 속으로 결제하기 전에 선지식 친견을 위한 기도부터 해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았으니까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도반스님이 물었다. “차 안 마시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오?” “어디 조용한 곳 없 소? 기도 좀 하게.” 하고 내가 되물었더니 “수좌가 무슨 기도를 하오? 정진을 해야지.”라고 대답을 했다. “그 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선지식 친견을 제대로 하려면 기도라도 해야 안 되겠소?”
옆의 스님이 “기도를 얼마나 할 예정이오?” 하고 거들어 물어 보길래 “결제하려면 백일은 안 되고 한 삼칠일 정도면 되겠소.” 하니 도반스님이 “스님, 경남 고성 운흥사에 한번 가보소.
그 곳 영산전이 기도하기 좋소.” 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 며칠 쉬다가 고성 운흥사로 내려가기로 작정을 했다.
며칠이 지나 천년고찰 운흥사에 도착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주지실 문을 두드리니 수더분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띤 주지스님이 맞이해 주셨다.
얼굴을 들어보니 전부터 안면이 있는지라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영산전의 기도 허락도 받았다.
대강 청소를 마치고 내일부터 바로 기도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영산전에서 내려오니 주지스님이 나보고 기도 입재 장을 봐야 되겠다고 하시길래 “스님, 그냥 마지만 올리면 됩니다.” 하니 주지스님이 머리를 끄덕이셨다.
나는 기도 일과를 하루 4번 정근으로 한 번에 능엄주 28편, 그리고 새벽에는 108배도 같이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다음날 새벽 3시부터 기도는 시작되었고 나는 108배를 한 후 무조건 앉아서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라”하면서 능엄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흔히들 능엄주 십만 독하면 수능엄삼매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 때 나로서는 무조건 선지식 친견을 위한 능엄주 독송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힘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히려 탄력이 붙어 능엄주 108번이 쉽게 지나갔다.
아무튼 죽으라고 능엄주를 독송해 어느덧 2 주가 눈 깜박할 새 지나갔고, 3주째 접어들었을 때 새벽에 능엄주 독송을 마치고 나오니 온통 눈앞이 능엄주 천지라 공양상도 그렇고 방의 벽도 그렇고 쳐다보는 책도 온통 능엄주뿐 이었다.
그 때부터는 잠을 자도 꿈 속에 그대로 능엄주뿐이었다. 그렇게 온통 능엄주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기도 중에는 한 번도 대중 스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고 오직 영산전에서 능엄주하고만 지냈다. 마지막 기도 회향 마지를 올리고 나오니 비로소 능엄주가 걷히고 어느덧 푸릇푸릇한 산의 풍광도 보였다.
그런데 기도를 마쳤어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선지식 친견을 위 한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냥 평소의 무심함 그대로였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돌아다니는 버릇이 다시 도진지라 걸망을 메고 무조건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막상 나와서 보니 갈 곳도 마땅히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진해 진흥사에 계신 삼묵 노스님이 생각났다. 삼묵 노스님은 내가 출가하기 전 청년회 시절부터 쭉 찾아다니며 법문을 들어 왔던 터라 출가 후에도 두어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문득 그 노스님이 생각난 것이다.
진흥사에 도착하니 마침 저녁 공양 목탁이 울렸다. 재빨리 법당에서 삼배를 드리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 계신 삼묵 노스님은 대단한 괴각이라 곡차도 아주 잘 마시고 힘도 천하장사여서 종종 젊은 스님들과 부딪혀 주장자로 스님들을 혼쭐내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었다.
마침 공양 상이 들어와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공양 상에 같이 앉았다. 그 상에는 노스님과 부전스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앉았다. 허기가 져서 수저를 들고 상을 바라본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 상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큼직한 바다 꽃게가 잔뜩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기는 물론이고 오신채를 일체 먹지 않았었다.
놀란 나를 보신 노스님은 꽃게 다리를 하나 척 들고 “철오 수좌, 먹어 봐. 참 맛있어.” 하신다.
난감해 하는 내 표정을 보신 스님은 껄껄 웃으시고, 옆에 있던 부전스님은 옆 눈으로 보면서 배시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기분이 나빠 옆에 있는 부전스님을 날카롭게 째려 보았다.
꽃게를 한 입 드시던 노장스님께서는 “철오 수좌 들어 봐. 몸을 다스리는 것은 下根器요, 중생을 다스리는 것은 中根器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上根器다. 이 마음은 먹고 안 먹고에 걸리는 것이 없는기라, 알겠는가.” 하신다.
나는 다시 노스님께 “아이구, 스님. 저 같은 것이 어찌 그 근기 안에 속할 수 있겠습니 까.” 하니 노스님께서 갑자기 역정을 내시면서 큰 소리로 “뭐라! 이 세 근기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냥 세 근기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 것을 노스님은 오히려 세 근기 밖의 큰그릇으로 잘못 알아들으시고 고함을 치신 것이었다.
“철오 수좌, 공양하고 내 방에 와.” 하시곤 수저를 놓으시고 당신 방으로 건너 가셨다. 나도 수저를 가만히 놓고 노스님 방으로 따라 들어가 공손히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노스님은 붓을 들어 이미 갈아놓은 먹물에 적셔 한 게송을 단번에 쓰시고는 나에게 던지며 외우셨다.
明明無悟法 悟法却迷人
명명무오법 오법각미인
無爲亦無眞 長舒兩脚睡
무위역무진 장서양각수
밝고 밝아서 깨칠 법이 없네
깨칠 법이 오히려 미한 사람을
더욱 미혹하게 하네
깨칠 일도 없고 역시 깨칠 진리도 없으니
두 다리 주욱 뻗고 낮잠이나 자자
나는 이 게송을 듣자마자 마치 감겨진 눈이 떠지듯 갑자기 두 눈이 환해지며 활짝 열려지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경이롭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세상의 모두에게 속지 않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노스님께 다시 삼배를 드렸다. 평소에 막행막식하신다고 별로 존경하지도 않던 노스님인데 이렇게 막중한 은혜를 입을 줄이야….
참으로 선지식이란 따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심으로 마음을 제대로 챙긴다면, 평소의 우리 주변 모두가 나 자신을 위한 올바른 선지식이 아니던가!
오늘도 나는 내 상좌에게 바른 신심으로 마음을 제대로 챙기라고 닥달을 하고 있다. 예순을 눈 앞에 둔 나 자신의 본분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도…
[동학사 / 『동학』 수행의 길목]
요새 선지식이 어데 있노
철오스님 / 어린이지도자연합회 회장
처음 머리를 깎고 절집에 들어 왔을 때 나는 참으로 불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선방에 앉기만 하면 한 철에 공부를 끝내겠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선방에 들어가니 한 철은 고사하고 수삼 년의 세월을 소리 없이 흘려 보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제하고 한 스무 날쯤 지났을까 우연히 송광사 객실에서 한 도반이 담양 보광사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담양은 가까운 곳이라 한번 찾아가 보기로 마음을 먹고 담양행 버스에 올랐다.
담양에서 다시 완행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에 내려 산길을 따라 한참 걷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에 올라 걸망을 풀고 마른 풀밭에 주저앉아 먼 산을 쳐다보니 희미한 초승달 빛이 꼭 답답한 내 마음 같았다.
차가운 냉기가 내 얼굴을 스치자 허무하고 쓸쓸한 마음이 갑자기 맑아지고 깨끗해지면서 잔잔한 평화가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한참 고요한 평화에 젖은 채 문득 ‘아! 중노릇은 이 맛에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미한 불빛을 좇아 절 마당에 이르니 저 쪽 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법당 문을 열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평소의 호기가 다시 치솟아서 사람 소리 따라 방문 앞에 서서 “객 문안이오.” 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방문이 열리고 모두 낯들이 익어 무척이 나 반가웠다.
모두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나서, 한 도반이 나를 보고 “요즈음 정진이 잘 돼요?” 하고 물었다.
“아이고! 말도 마소. 공부가 다 뭣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오.” 하고 대답하니 “얼굴이 훤하고 좋은데 와 그리 엄살을 떠요.” 하며 그 도반은 도로 되받아 쳤다. 그러면서 “그럼 큰스님한테 한번 찾아가 보소.” 하고 덧붙였다.
“요새 큰스님이 어데 있노, 요새는 선지식이 없는기라.” 하고 대답은 했는데, 문득 뇌리에 선지식이란 말이 꽉 차게 들어왔다.
‘선지식을 친견한다? 암, 좋지.’ 마음 속으로 결제하기 전에 선지식 친견을 위한 기도부터 해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았으니까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도반스님이 물었다. “차 안 마시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오?” “어디 조용한 곳 없 소? 기도 좀 하게.” 하고 내가 되물었더니 “수좌가 무슨 기도를 하오? 정진을 해야지.”라고 대답을 했다. “그 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선지식 친견을 제대로 하려면 기도라도 해야 안 되겠소?”
옆의 스님이 “기도를 얼마나 할 예정이오?” 하고 거들어 물어 보길래 “결제하려면 백일은 안 되고 한 삼칠일 정도면 되겠소.” 하니 도반스님이 “스님, 경남 고성 운흥사에 한번 가보소.
그 곳 영산전이 기도하기 좋소.” 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 며칠 쉬다가 고성 운흥사로 내려가기로 작정을 했다.
며칠이 지나 천년고찰 운흥사에 도착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주지실 문을 두드리니 수더분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띤 주지스님이 맞이해 주셨다.
얼굴을 들어보니 전부터 안면이 있는지라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영산전의 기도 허락도 받았다.
대강 청소를 마치고 내일부터 바로 기도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영산전에서 내려오니 주지스님이 나보고 기도 입재 장을 봐야 되겠다고 하시길래 “스님, 그냥 마지만 올리면 됩니다.” 하니 주지스님이 머리를 끄덕이셨다.
나는 기도 일과를 하루 4번 정근으로 한 번에 능엄주 28편, 그리고 새벽에는 108배도 같이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다음날 새벽 3시부터 기도는 시작되었고 나는 108배를 한 후 무조건 앉아서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라”하면서 능엄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흔히들 능엄주 십만 독하면 수능엄삼매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 때 나로서는 무조건 선지식 친견을 위한 능엄주 독송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힘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히려 탄력이 붙어 능엄주 108번이 쉽게 지나갔다.
아무튼 죽으라고 능엄주를 독송해 어느덧 2 주가 눈 깜박할 새 지나갔고, 3주째 접어들었을 때 새벽에 능엄주 독송을 마치고 나오니 온통 눈앞이 능엄주 천지라 공양상도 그렇고 방의 벽도 그렇고 쳐다보는 책도 온통 능엄주뿐 이었다.
그 때부터는 잠을 자도 꿈 속에 그대로 능엄주뿐이었다. 그렇게 온통 능엄주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기도 중에는 한 번도 대중 스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고 오직 영산전에서 능엄주하고만 지냈다. 마지막 기도 회향 마지를 올리고 나오니 비로소 능엄주가 걷히고 어느덧 푸릇푸릇한 산의 풍광도 보였다.
그런데 기도를 마쳤어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선지식 친견을 위 한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냥 평소의 무심함 그대로였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돌아다니는 버릇이 다시 도진지라 걸망을 메고 무조건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막상 나와서 보니 갈 곳도 마땅히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진해 진흥사에 계신 삼묵 노스님이 생각났다. 삼묵 노스님은 내가 출가하기 전 청년회 시절부터 쭉 찾아다니며 법문을 들어 왔던 터라 출가 후에도 두어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문득 그 노스님이 생각난 것이다.
진흥사에 도착하니 마침 저녁 공양 목탁이 울렸다. 재빨리 법당에서 삼배를 드리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 계신 삼묵 노스님은 대단한 괴각이라 곡차도 아주 잘 마시고 힘도 천하장사여서 종종 젊은 스님들과 부딪혀 주장자로 스님들을 혼쭐내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었다.
마침 공양 상이 들어와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공양 상에 같이 앉았다. 그 상에는 노스님과 부전스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앉았다. 허기가 져서 수저를 들고 상을 바라본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 상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큼직한 바다 꽃게가 잔뜩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기는 물론이고 오신채를 일체 먹지 않았었다.
놀란 나를 보신 노스님은 꽃게 다리를 하나 척 들고 “철오 수좌, 먹어 봐. 참 맛있어.” 하신다.
난감해 하는 내 표정을 보신 스님은 껄껄 웃으시고, 옆에 있던 부전스님은 옆 눈으로 보면서 배시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기분이 나빠 옆에 있는 부전스님을 날카롭게 째려 보았다.
꽃게를 한 입 드시던 노장스님께서는 “철오 수좌 들어 봐. 몸을 다스리는 것은 下根器요, 중생을 다스리는 것은 中根器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上根器다. 이 마음은 먹고 안 먹고에 걸리는 것이 없는기라, 알겠는가.” 하신다.
나는 다시 노스님께 “아이구, 스님. 저 같은 것이 어찌 그 근기 안에 속할 수 있겠습니 까.” 하니 노스님께서 갑자기 역정을 내시면서 큰 소리로 “뭐라! 이 세 근기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냥 세 근기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 것을 노스님은 오히려 세 근기 밖의 큰그릇으로 잘못 알아들으시고 고함을 치신 것이었다.
“철오 수좌, 공양하고 내 방에 와.” 하시곤 수저를 놓으시고 당신 방으로 건너 가셨다. 나도 수저를 가만히 놓고 노스님 방으로 따라 들어가 공손히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노스님은 붓을 들어 이미 갈아놓은 먹물에 적셔 한 게송을 단번에 쓰시고는 나에게 던지며 외우셨다.
明明無悟法 悟法却迷人
명명무오법 오법각미인
無爲亦無眞 長舒兩脚睡
무위역무진 장서양각수
밝고 밝아서 깨칠 법이 없네
깨칠 법이 오히려 미한 사람을
더욱 미혹하게 하네
깨칠 일도 없고 역시 깨칠 진리도 없으니
두 다리 주욱 뻗고 낮잠이나 자자
나는 이 게송을 듣자마자 마치 감겨진 눈이 떠지듯 갑자기 두 눈이 환해지며 활짝 열려지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경이롭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세상의 모두에게 속지 않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노스님께 다시 삼배를 드렸다. 평소에 막행막식하신다고 별로 존경하지도 않던 노스님인데 이렇게 막중한 은혜를 입을 줄이야….
참으로 선지식이란 따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심으로 마음을 제대로 챙긴다면, 평소의 우리 주변 모두가 나 자신을 위한 올바른 선지식이 아니던가!
오늘도 나는 내 상좌에게 바른 신심으로 마음을 제대로 챙기라고 닥달을 하고 있다. 예순을 눈 앞에 둔 나 자신의 본분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도…
[동학사 / 『동학』 수행의 길목]
'불교의 이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팔대참회문 [염불독송] (0) | 2005.08.24 |
---|---|
달마조사 (0) | 2005.08.22 |
육조단경 / 법륜스님 강의 (0) | 2005.08.21 |
오 계 (五戒) (0) | 2005.08.21 |
백중 (0) | 2005.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