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뜨락

'나'를 바로 보는 행복

마음정원(寂光) 2015. 12. 9. 23:19



    '나'를 바로 보는 행복 부자는 퇴폐적일 거라고, 권력자는 야비한 모리배이고, 그중 최고의 권력자는 진정한 친구는 없을 거라고, 유명인은 허영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은 가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을 덮어놓고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무지한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안락하게 헛 사는 삶보다, 불행하게라도 잘 사는 삶이 더 행복에 가까운 거라고 믿게 만든 힘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왜 어떤 이는 수십억원의 재산을 가지고도 노후를 걱정하고, 또 어떤 이는 단칸방에서도 오늘 이 따뜻한 밥상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가? 왜 어떤 이는 큰 권력을 쥐고도 세상에 대한 불만뿐이고, 또 어떤 이는 야채장사를 하면서 낙천적인가? 왜 어떤 이는 자폐아를 키우면서도 문득문득 행복의 미소를 짓고, 또 어떤 이는 부족한 것이 없는 데도 성격파탄자가 되는가? 너무 가난하면 수치스러울 일이 많고 너무 부자가 되면 신경 쓸 일이 많아진다는 얘기에 공감하는 측면이 있고, 건강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수긍해서 건강관리도 하는 편이건만, 살아볼수록 강해지는 믿음이 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다 라는 믿음이다. 보고 듣는 것 많은 세상이니 시선을 밖에 두면 갖고 싶은 것이 많게 마련이다.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을 때의 설렘이 있다. 그러나 큰 기쁨은 있어도 긴 기쁨은 없는 법! 뿌듯함은 포만으로 사라지고 설렘은 시간과 함께 저만치 간다. 순간순간 조건 충족이 행복감을 줄 수 있지만 행복은 아니다. 어쩌면 행복은 정신없는 세상 닮아 정신없이 살게 되는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지금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내 열등감은 무엇이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일인지도. 가끔씩 조용히 앉아 기도를 해보면 느낀다. 자유롭다고 믿고 살아온 내가 얼마나 부자유한지. ‘나’를 가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왜 그리 많은 벽에 둘러싸여 갇혀 있는지. 뭔가 더 가져야 한다는 욕심의 벽, 남에게 뒤떨어질 수는 없다는 경쟁심리의 벽, 무겁고 고단한 인생이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자괴감의 벽,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어버린 고정관념의 벽, 그리고 오랫동안 익숙해져온 아집의 벽, 벽들…. 기도나 명상은 그런 벽들로 둘러싸인 ‘나’를 바로 보는 일이다. 자기를 바로 보자고, 자기는 본래 구원되어 있다고 한 이는 성철스님이었다. 자기를 바로 본 이는 누더기 옷도 초라하지 않고 차릴 것도 없을 만큼 소박하기만 했던 식사 중에도 넉넉하기만 한데 ‘나’를 바로 보지 않고는 순간순간 행운처럼 찾아오는 행복감도, 순간순간 운명처럼 덮쳐오는 비극적인 사건만큼이나 불안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를 바로 본 사람은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도 빛난다. 평생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지낸 이우라 아야꼬는 이렇게 고백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그래서 미우라 아야꼬는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다고 했지만 그렇듯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다. 그 뜻을 파악할 때까지 고통은 계속되지만 그 뜻을 자각하고 나면 고통조차 오늘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이 된다. 그렇게 이해할 때 ‘벽암록’의 이 말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인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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