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숲

[스크랩] 윤회와 해탈이 그대마음의 소산이다./"티벳사자의 서" 중에서

마음정원(寂光) 2015. 5. 2. 07:29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인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그대의 혼미한 마음으로 인해 윤회의 수레 바퀴에 휘말려 들어간다. 그대의 마음이 붓다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그 마음이 니르바나(涅槃)를 흐리게 하는 장애물이다.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해탈과 윤회가 갈린다. 해탈과 윤회는 한 찰나에 갈린다. 마음이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올바른 생각이나 그렇지 못한 생각이나, 모두 같은 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간섭이나 판단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머무는 마음 그 자체는 자유다. 잘못된 생각 조차도 그대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우주의 실상(實相)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이 머무는 곳은 어디이며, 최후에는 어디로 사라져 가는가? 모든 생각은 물에 비친 까마귀 그림자와 같다. 까마귀가 연못 위로 날아가 버리면 물에 비친 그림자도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와도 마음은 연못처럼 늘 깨끗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늘 깨어 있는 마음은 하늘처럼 투명하게 비어 있다. 이 근원적인 직관 지혜의 투명성 속에 만물이 깃들어 있다. 그대의 마음이 모든 현상과 존재를 만들어 낸다. 마음은 투명한 지성으로 스스로를 깨닫는다. 마음을 공간에 빗대어 설명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공간이라는 말로는 마음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은 투명하게 비어 있는 지성이다. 하지만 공간은 비어 있는 허공일 뿐 지성이 없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말로는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 동요하지 말고, 마음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라. 이 세상의 모든 피상적인 현상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과 존재, 윤회와 해탈이 그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을 바꿈으로써 외적인 세상을 변형시킬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피상적인 관찰자들은 여섯 존채 차원의 윤회를 절대적인 실재로 주장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현상의 다름을 보는 사람은 수행의 9단계 역시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흑백 논리의 오류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고, 깨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 파드마 삼바바의 <티벳 사자의 서> 중에서 --.
        
        사르나트 / 명상음악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해솔 원글보기
메모 :

'명상의 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어 버리는 것의 소중함  (0) 2015.09.16
[스크랩] 동행-관허스님  (0) 2015.06.19
[스크랩] 명상음악/마음  (0) 2015.04.02
명상  (0) 2015.03.24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근송 - 해성스님  (0) 2015.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