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의 향기
가을 / 법정스님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나무들을 바라볼 때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나는 새삼스레 착해 지려고 한다.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그래서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속이 빤이 들여다 보이는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 해진다깊은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들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한낮에는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우리가 알수 있는 일은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생자필멸. 회자정리 , 그런 것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순간 순간을 아무렇케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때오~ 아무게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