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뜨락

[스크랩] 염소 사육 할머니, 함양 안의고에 1억원 기부

마음정원(寂光) 2012. 3. 6. 12:55

 

염소 사육 할머니, 함양 안의고에 1억원 기부

입력 : 2012.03.02 19:48 = 조선일보

“함양 안의에서 태어나 자랐다. 모은 돈을 의미있는 곳에 쓰고 싶다”

고향인 경남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하비마을에 살면서 염소를 키우는 정갑연(79) 할머니는 2일 안의면의 유일한 고등학교인 안의고 입학식에서 학생들과 교직원들로부터 뜨거운 감사인사를 받았다.
정 할머니는 지난달 안의고 장학회인 ’금호장학회’에 염소를 팔아 모은 1억원을 선뜻 내놨다.
객지생활을 하다 1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염소를 키우고 밭농사를 하던 정 할머니는 지난해 연말 최용배 안의면장을 만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제 저 세상으로 가야 하는데 자식도 없다. 뜻이 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다”며 “염소를 팔아 한푼 두푼 모은 1억원을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 면장은 “고향에 있는 안의고가 명문학교로 부상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장학금으로 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상권 안의고 교장은 할머니를 학교로 초청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 했으나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나 입학식이 열린 이날 김 교장이 직접 하비마을을 찾아가 정 할머니를 학교로 모시는데 성공했다.
김 교장은 “할머니께서 기증한 1억원을, 안의고를 농촌 명문학교로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며 “할머니의 뜻에 따라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정 할머니는 밭에서 직접 기른 야채와 된장 등으로 하루 3끼를 해결하고 옷도 3~4벌 밖에 없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1억원을 모았다. 염소를 키우면서 매년 10여마리씩 장에 내다

 팔면서 수백여만원씩을 모았다.

지금도 산기슭 움막에서 염소 30마리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살고 있는 집에서 불이나 10평 남짓한 주택을 태웠지만 주변 도움을 받지 않고 집을 수리해 살고 있다. 김 교장은 “할머니께 ’어떻게 돈을 모으셨냐’고 물어보니 ’감기에 걸려도 병원 안가고 (옷을) 사지 않았다’고 말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안의고는 ’정갑연 장학금’을 제정해 매년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5명 정도를 뽑아 1만원씩 지원할 계획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인 안의고에는 1~3학년 남녀 173명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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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3 => 조선일보

전화기·냉장고·TV도 없이 홀로 염소 40마리 키우며 생활
작업복 서너벌이 옷의 전부… 평생 모은돈 고향 학교에 기부

할머니의 집은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심마을. 연암 박지원이 물레방아를 처음 만들어 설치했다는 곳이다. 이곳에서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농로를 지나 고개 너머 기백산 자락으로 1㎞를 더 가면 외롭게 서 있는 집 한채가 나온다. 정갑연(78)할머니가 홀로 사는 집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도 1㎞나 떨어져 있다.

평소 장 보러 나가는 일조차 없던 할머니는 2일 특별한 외출을 했다. 집에서 15㎞ 정도 떨어진 안의고교 김상권(55)교장이 RV 차량을 마련해 직접 모시러 온 것이다. 할머니는 "이 먼데까지 뭐하러 온다꼬…"하며 사양했지만 결국 교장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안의고교로 왔다. 이날 할머니는 평생 모아온 돈 1억원이 든 통장을 전달했고, 다시 교장 선생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일터인 염소 축사 안에 서 있는 정갑연 할머니의 얼굴에는 외롭게 지낸 세월의 흔적이 뚜렷했다. TV와 전화기, 냉장고 하나 없이 사는 할머니는 평생 모은 1억원을 학생들에게 선뜻 내놓았다. /안의고교 제공

할머니는 해발 400m에 위치한 자기 집에서 염소 40마리를 키우며 산다. 15평 넓이에 높이 1.5m인 축사는 시멘트 블록과 돌로 쌓았고, 지붕은 깨진 슬레이트와 녹슨 양철로 이어붙인 곳이다.

그 옆에 있는 할머니 집은 3평 단칸방과 염소 사료를 쌓아 두는 창고가 전부다. 방에 형광등은 켜져 있으나, 전화기도 냉장고도 TV도 없다. 옷장도 없는 방 한편에 쌓아둔 작업복 서너벌이 옷의 전부였다. 3월 초의 할머니 집은 겨울철 얼굴이 시릴 정도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무학(無學)의 할머니는 안의면 하비마을이 고향이다. 타지로 나갔다가 15년 전 홀몸으로 귀향(歸鄕)했고, 그때부터 염소를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염소는 요즘 시세로 한마리에 25만원 정도라고 한다.

할머니는 바깥나들이도 전혀 하지 않았다. 최용배 안의면장은 "내 친구가 산행을 하던 중에 '산골짜기에 할머니 한 분이 외롭게 살고 계신다'는 말을 전했고, 이후 몇차례 찾아가면서 안면을 트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최 면장이 할머니의 은행 적금도 도와드리고, 자기 친구와 함께 밑반찬 같은 것도 전해 드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밥에 생된장, 푸성귀로만 식사하십니다. 병원도 안 가고 장도 전혀 보지 못하세요. 자신을 위해 돈 쓰는 것을 지금껏 본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최 원장은 "혼자서 정말 검소하게 사시는 분"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장학금 기탁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최 면장에게 "자식도 없는 내가 더 늦기 전 뜻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왕이면 지역 인재육성을 위해 모은 돈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이 뜻을 최 면장이 학교에 전했다. 가난한 할머니가 내놓은 거액에 오히려 학교 측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할머니는 기념식도 마다했지만 학교 측에서 "어려운 분이 내놓은 돈을 덥석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굳이 초청해 이날 학교까지 와서 사진을 찍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김상권 교장은 "할머니가 내놓으신 돈은 천금보다 귀한 것"이라며 "할머니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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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3.05 03:01 => 조선일보

1억 장학금 기탁 정갑연씨 "적어서 얼마나 창피한지…"
1억원 외에 조금 있는 돈, 그것도 다 내놓으려 했지… 그런데 '아프면 어떻게 할거냐'는 거야
할 수 없어 병원비만 남겨놨어… 죽을때까지 나라 도움 안받고 내 힘으로 살다 가고싶어

"작아서(적어서) 얼마나 창피했는데…."

염소 팔아 평생 모은 돈 1억원을 고향인 안의고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한 산골짜기 '염소할머니'(본지 3일자 A11면) 정갑연(78)씨는 집을 찾은 기자가 "어떻게 장학금을 내놓으시게 됐느냐"고 묻자 처음엔 "난 모르는 일('돈 낸 사실이 없다'는 뜻)"이라며 딴청을 부렸다. 거듭 같은 질문을 하자 어렵게 이런 답을 내놓았다. "성금 내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지. 일찌감치 마음먹은 일을 이제서야 한 것뿐이라오."

4일 경남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기백산(해발 1331m) 자락엔 봄비가 제법 굵게 내렸다.

해발 400m인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할머니는 혈육이나 다름없는 염소 30여 마리가 춥지 않도록 축사 입구 등에 헌 이불조각 등을 덮어주고 있었다. 집에는 우산 하나가 없어서 할머니는 비를 맞고 있었다.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쾌척한 ‘염소 할머니’. 4일 오후 경남 함양군 안의면 산골 집에서 정갑연 할머니가 염소들에게 둘러싸여 1억원을 기부하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어려운 형편이신데 돈이 아깝지 않았느냐"고 하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아깝기는 하지만 (난) 아이도 없고, 돈 쓸 데도 없는데…"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래도 돈 쓸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모처럼 긴 답을 내놓았다.

"난 피가 이상한지, 잘 아프지도 않아 병원에도 안 가요. 간혹 새끼염소 감기약 사러 면 소재지에 가는 것 외에는 외출할 일도 없지. 그러니까 옷은 작업복 몇 벌이면 충분해. 옷이 비싸기도 하고, 돈이 아까워 사지도 못해. "

"한 푼도 안 쓰고 어떻게 사시느냐"는 질문을 하자 할머니는 "염소 사료값이 1년에 300만~400만원은 드니까…(돈 안 쓰는 건 아니다)"라며 빙긋이 웃었다.

"여름철엔 산에 방목해두면 자기들이 인근 야산에서 풀을 뜯어 먹어 사료값도 절약돼요. 난 일 년에 쌀 40㎏들이(8만5000원 정도) 2포대면 되고. 생선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늘 먹는 대로 김치에 밥이면 최고야"라고 했다.

할머니는 직접 담근 생된장과 손수 재배한 푸성귀, 상추, 산에서 캔 나물만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젊어서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한 뒤 딸 하나를 홀로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유일한 피붙이인 딸도 일곱 살 때 병으로 숨졌다. 이후 할머니는 서울로 올라가 공사 현장 막일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았지만 50세를 넘기면서 공사현장서도 받아 주질 않았다.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 비위 맞춰주지 않아도 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재미있고 좋더구먼"이라고 했다.

기부 제안을 먼저 꺼낸 사람도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약간 모은 돈이 있는데 좋은 일에 쓰고 싶다"고 최용배 안의면장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최 면장이 "정 그러시면 고향 후배들을 위해 쓰시면 어떻겠냐"고 해서 장학금 기탁이 성사됐다. 할머니는 "장학금으로 기탁한 1억원 외에 돈이 조금 더 있다"고 했다.

"다 내놓으려고 했는데 '아프면 어떻게 할 거냐'며 주위에서 말리는 바람에 한참을 싸우다 병원비 정도 남겨 놓고 장학금을 내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자기 마지막 소망으로 "죽을 때까지 정부지원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살다 가는 것"이라고 했다. 형편이 어렵다고, 또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에 기대 사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할머니는 "죽기 전 조금이라도 여유가 되면 어린 학생들을 위해 가진 것 다 내놓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출처 : 풍장백세(風長百世)
글쓴이 : 柳在昌(寂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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