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景公派(충경공파)
忠景公派에서는 忠景公 柳亮(유양)이 李朝 開國原從功臣(개국원종공신)이고 太宗(태종) 때 左明功臣(좌명공신)으로 文城府院君(문성부원군)에 봉해지고 藝文館大提學(예문관 대제학) 右議政(우의정)을 지냈었고, 그의 5代孫 인 松庵(송암) 柳權(유권)[忠肅公(충숙공)]이 仁宗(인종) 때 左議政(좌의정)을 지냈다. 柳權은 仁宗이 승하한 후 院相(원상)으로 庶政(서정)을 맡았으나, 明宗(명종)이 즉위하고 戚族(척족)인 坡平尹氏(파평윤씨)의 大尹(대윤) 尹任(윤임), 小尹(소윤) 尹元衡(윤원형) 사이에 政權爭奪戰(정권 쟁탈전)이 가열되면서 小尹一派에 의해서 유배 賜死(사사)되었다.
그에 앞서 中宗때 柳權은 吏曹判書(이조판서)로 있으면서 李芎(이궁)의 兵曹判書(병조판서) 任命을 반대한 일이 있었는데, 明宗 즉위 후 小尹一派와 손을 잡은 李芎이 右議政에 兵曹判書를 겸하게 되면서 사적인 원한을 푼 것이다. 이 무렵의 小尹에 의한 일대 숙청이 그 惡名 높은 乙巳士禍(을사사화;1545年)인데, 이 士禍 때 普州(보주) 柳氏의 吏曹判書 柳仁淑(유인숙)의 일가도 慘禍(참화)를 입었으며, 柳堪(유감) 大司諫(대사간) 全州柳氏, 柳希春(유희춘) 吏曹參判(이조참판) 善山柳氏, 柳景深(유경심) 大司諫(대사간) 豊山柳氏 등등도 罷職(파직) 당하고 귀향 가는 등 士禍(사화)의 여파는 柳氏들에게 크게 악영향을 미쳤다.
한편 忠景公의 伯氏派(백씨파) 府尹公派(부윤공파)에서 文興君(문흥군) 柳思瑗(유사원)左尹(좌윤)이 宣祖(선조)때 壬辰倭亂(임진왜란) 宣武功臣(선무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는 壬辰倭亂이 일어나자 請兵(청병)을 위한 急告奏聞使(급고주문사)의 書狀官(서장관)으로 明나라를 다녀왔으며, 丁酉再亂(정유재난) 때에는 明軍을 嶺南(영남)지방에 인도하는 등 전쟁 수행에 크게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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