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스크랩] 1924년의 금강산 장안사, 유점사

마음정원(寂光) 2011. 3. 1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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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Curzon후작의 금강산 답사기행입니다.

원산에서 석왕사를 지나 외금강 구룡폭포와 만물상을 구경하고 백여섯구비라고 하는 온정령을 넘어 

내금강으로 들어가 장안사와 유점사를 돌아보고 찍은 사진과 이야기를

The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1924년 10월호에 게제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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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초입 입니다. 

Curzon씨는 원두막을 초가를 얹은 망보는 집이라고 표현했더군요.

동시에 땡볏에 길을가는 사람들의 쉼터라고 했읍니다.

매년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금강산과 사찰들을 찾아 옵니다.

금강산은 봉우리 마다 절경이요, 계곡에는 아름다운 폭포, 골짜기 마다 전설이 내려오는

이름 그대로 금강산 입니다.

온정리 마을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호텔이 있는데 산행은 그곳에서 시작하는게 관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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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Curzon씨가 찍은 장안사의 모습입니다. 그분 묘사에 의하면 장안사를 '영원한 안식처인 절'

이라고 표현했군요. 이어서 장안사는 지난 400년동안 금강산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입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절이 한때는 버려저서 황페한 때도 있었다고 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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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진은 한관수씨의 책 '세계의 명승 금강산'에 실려있읍니다.

찍은 연대는 알수 없으나 비교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한관수씨의 해설에 의하면 장안사는 신라 23대 법흥왕의 발원으로 진표율사가

서기 551년에 창건 했다 합니다.

장경봉, 석가봉, 지장봉이 칼날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300년 이상 묵은 전나무와 잣나무가

울울창창 우거진 속에 맑은 물소리가 울려 옵니다.

장안사는 유점사와 더불어 금강산 2대 사찰로 꼽힙니다.

웅장하고 화려함을 자랑하던 절이며 그중에서도 대웅보전과 사성전은 2층 건물로서 모양과 짜임새에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시대적 특성을 나타내는 훌륭한 건축물 이었읍니다.

독일의 유명한 건축가 Bruno Taut(1880-1938)씨는 한국 건축술에 크게 놀라 금강산에서 평생

우리 건축술을 연구하다 장안사 부근에 묻혔다고 합니다.

지금 장안사는 폐허가 되어 '장안사터'라 쓰인 푯말만이 외로이 서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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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있는 부도밭입니다. 

C.K. Edmunds씨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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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Robert Moore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절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에 부처님의 형상을 바위에 새겨 놓은 것입니다.

건너편 바위에는 53 불상을 새겨 놓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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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천연색 사진은 한관수씨가 최근에 찍은 삼불암 사진입니다.

장안사터에서 약 2Km쯤 떨어진 삼불안교를 지나면 길 양쪽에

삼각형 집채만한 바위가 양쪽에 서 있읍니다.

오른쪽 암벽에 높이 8m - 넓이 9m 의 훌륭한 솜씨로 다듬어 놓은 삼불 조각이 있읍니다.

나옹화상의 원불로서 오른쪽이 미륵불, 가운데가 석가불, 왼쪽이 아미타불입니다.

모두 서 있는 모습인데 손 자세가 조금씩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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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유점사의 파고다입니다.  C.K. Edmunds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불교는 기독교 서력보다 수백년 앞서 있읍니다. 인도에서 시작 되었지만 아마도 조선에는 중국을

통해서 전파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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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한관수씨의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년도는 알수가 없읍니다.

그분의 해설입니다.

금강산에서 최대의 사찰이 유점사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중기 남해왕때 53불의 도래로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경내에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많아 유점사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유점사는 능인보전, 약사전, 산영루를 비롯한 수많은 승방, 누각등이 즐비하여

40여동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찰이었다고 합니다.

1408년에 이미 3천간이 넘는 거찰이었으며 국왕의 원당으로 (왕실의 명복을 비는 절)

세조가 직접 유점사를 찾아 해마다 쌀 200섬과 소금 50섬을 주도록 했다고 합니다.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유점사터만 남아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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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924년 Curzon후작이 찍은 53불입니다.

한관수씨의 책에 있는 사진과 같습니다.

 

Curzon씨의 해설에 의하면

유점사는 금강산에서 제일 큰 사찰입니다. 건물이 22채나 있읍니다.

유래하는 전설로 인도에서 53명의 승려가 불교를 전하러 와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용 세마리가 나타나 공격해 왔다고 합니다.

용들은 거대한 바람을 일으켜 서 있던 나무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고 합니다.

후에 승려들이 보았더니 나무 뿌리 하나 하나에 부처님이 새겨진 작품으로서

대성공 이었다고 합니다.

유점사 53불은 이렇게 탄생했다고 합니다.

 

한관수씨의 해설에 의하면

유점사 53불은

법당 내부 두공이 15포가 되는 능인보전에는 신라 예술의 결정이라 할수있는 

53불이 (금 또는 금동제로 크기 4-15cm 정도의 부처)

느릅나무 등걸을 본떠 만든 향나무 가지 위에 봉안되어 있었읍니다.

 

위대한 유산들이 모두 소실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처 : 최강! 해태타이거즈!!
글쓴이 : 10번타자 기아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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