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아차림과 수용
게슈탈트는 알아차림 명상을 심리치료에 활용한 유럽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면에 미국 쪽에서는 인지행동의 전통에 새롭게 등장한 ‘명상치료(Meditation Therapy 혹은 Mindfulness Therapy)’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게슈탈트에서는 Awareness란 용어를 더 잘 사용한 반면에, 인지행동의 전통에 기반한 명상치료에서는 Mindfulness란 용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이들의 원음은 모두 알아차림(sati)에서 비롯된 영어 번역어로서, 결코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새롭게 등장한 명상치료의 특징은 전통적인 인지행동치료에서 비과학적이란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던 인간의 영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치료적 상황에 도입한 점입니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그룹은 알아차림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MBSR), 알아차림에 기반한 인지치료(MBCT), 변증법적인 행동치료(DBT), 수용전념치료(ACT) 등인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알아차림 명상과 더불어서 ‘수용(acceptance)’을 강조합니다.
기존 인지행동치료의 핵심된 용어가 ‘통제’라면, 새롭게 등장한 명상치료의 결정적인 키워드는 바로 ‘수용’입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치료적 기술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고, 철학과 심리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내포합니다. 보통 ‘삶이란 고통이다’고 말할 때, 부정적인 증상으로서 고통과 싸워서 제거하려하거나 아니면 회피하라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용은 알아차림과 동의어로서, 현재의 경험, 고통을 존재하는 그대로 자각하여 허용함을 의미합니다.
사실 근대 서구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은 싸우고, 투쟁할 것을 명령합니다. 자아를 실현하고 전쟁터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권장합니다. 이점은 경쟁이 치열한 현대에서 정치, 경제, 교육 거의 모든 정책에서 여전히 유효한 관점으로 채택되고, 현실 속에서 강력한 동기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지구의 온난화,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 자원의 고갈로 인한 전쟁들, 급증하는 정신질환들, 이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영적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입니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통제는 우리를 고요함과 평화에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류를 더욱 깊은 불안과 공포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통제와 수용에 대해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일명 ‘이산화탄소 흡입실험’입니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의 오염을 상징하는 은유입니다.
참가들은 이산화탄소를 10분 간격으로 두 번 흡입하게 되는데, 이때 정신이 몽롱해지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경험합니다. 이때 현재의 경험을 통제하도록 지시받은 집단은 심각한 고통과 더불어서 실제로 발작을 일으켜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그대로 알아차리고 수용하도록 훈련된 집단은 대부분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참가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고통에 대한 통제와 회피는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오히려 더욱 고통을 증가시킨다는 실험결과입니다. 이 실험은 현재의 고통을 충분하게 경험하면서, 그것들을 그 자체로 알아차리고 수용하여 바라보면 고통은 점차로 스스로 물러간다는 명상치료의 중요한 원리를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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