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보살의 마음 한가운데서 불국토 열린다 - 지광스님

마음정원(寂光) 2008. 1. 26. 10:44

보살의 마음 한 가운데서 불국토 열린다

 

금강경 첫머리에 마음을 항복받는다는 가르침이 나온다.(云何降伏其心) 항복이란 말 자체가 강력하기도 하고 강제성을 띤 단어로 느껴진다. 우리는 항상 불교를 佛法이란 말로 대체해 쓰기도 한다. 법이란 말이 인식의 표준이 되는 규범이라 할 때 강제성을 띤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오계에도 보면 살생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등등 강제성을 띤 가르침들이 등장한다. 戒定慧三學에서 戒의 의미 역시 防非 止惡의 강제성을 띤다. 諸惡莫作(악행을 하지 말라)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수행은 따지고 보면 자율적 자기 강제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법도 강제규정이 대부분이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파국이다. 강제로 지켜야만 하는 교통법 세법 등등은 공공의 복리증진과 공동체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강요된 공덕도 공덕이라 하는 가르침 역시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세금을 잘 내지 않으면 차압이 들어오고 압류가 된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월급은 누가 주고 학교는 또 어떻게 세우며 도로는 또 어떻게 보수하는가. 나라법의 강제가 있기에 이만큼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법도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들이 많다. 욕심을 내려놓고 독심을 내려놓으라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6바라밀행 가운데 보시바라밀이 으뜸인 이치 또한 여기에 있다. 베풀라 하지만 제대로 베풀기 쉬운가. 이웃종교에서는 십일조다 교무금이다 해서 강제성을 띈 헌금을 내게 한다. 심지어 동유럽을 제외한 구라파 대부분의 나라들은 종교세를 징수한다. 강제하는 것이다. 불교도 불법인 이상 자율적 강제가 덕목일 수 있다. 모든 수행은 자기에의 엄격이고 자신에 대한 준엄한 채찍이다. 이기심을 압도하기 위해, 악심과 독심을 녹이기 위해 보시바라밀행을 강조한다 해도 크게 잘못될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항상 남을 사랑하라, 자비로우라 하지만 입으로만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 모두가 공업중생인 바에야 진지하고 심각한 자세로 남을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하고 대승불교의 전형으로 칭송하지 않는가. 경전들마다 보살심을 가진 사람들을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하시고 위대한 권능을 베푸신다하시지 않으셨는가.(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진정 스스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남에게 베풀고 펼치는 보살들이야말로 부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옹호하시며 가피를 내리신다. 그들을 제외하고 누구에게 가피를 내리시겠는가? 진정 부처님의 가피를 바라는 사람은 자기 강제 속에 살라! 자신에 엄격하라. 그 길 가운데 부처님의 보살핌이 항상 하실 것이다. 인간사회의 전 과정은 어떻게 보면 탐욕의 연장선상에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근대문명 자체가 탐욕의 문명이었다. 종교도 그에 한몫 거들지 않았는가.

 

참다운 수행자는 자기 강제 속에 산다. 이기적 사고를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세계와 교류를 하려면, 가피를 힘입으려면 편협한 사고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비움의 자리가 만들어질 때 그 자리는 진정 진리와 가피로 가득 찰 것이다. 수행은 진정 즐거운 자기 억제요 자기통제다. 자기 강제이다. 法劍을 휘둘러 삿된 마군과 그릇된 이기심, 독심들을 제거하라. 자기 강제 속에서 진정한 공덕과 가피의 길을 열라. 참다운 가피는 자기 강제를 통한 보살의 삶 가운데, 기도자의 삶 가운데 열린다.

 


서울 능인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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