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마음

발심 수행과 기도

마음정원(寂光) 2007. 12. 11. 00:34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부처님> 

 

 

발심수행과 기도



덕조스님(길상사 주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발심(發心)이란 ‘마음을 낸다’ ‘보리심을 낸다’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마음을 낸다’는 뜻입니다. <발심수행장>은 원효스님이 쓰신 것으로 출가하신 스님들이 제일 처음배우는 것이 <계초심학>이고, 다음으로 <발심수행장>, <자경문>순으로 배웁니다. 이 책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사찰의 강원에서 학인스님들이 이 경을 읽을 때면 마음이 그렇게 청정해짐을 느낍니다. 한문을 낭낭하게 암송하는 것을 듣고 그 뜻을 새기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저절로 발심하는 마음이 우러납니다. 그 내용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들이 적멸궁에 장엄해 계시는 것은 많은 겁해에 욕심을 버리고 고행하신 결과이고, 중생 중생이 불타는 집에 윤회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에 탐욕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막지 않는 천당에 가는 사람 적은 것은 세 가지 독(탐욕,진애,우치)으로 자기의 재물을 삼는 까닭이고 유혹하지 않는 악도에 많이 가는 것은 네 가지 뱀(수,풍,지,화:육신), 다섯가지 욕심(재물,여색,음식,명예,잠)으로 망녕스리 마음의 보배를 삼는 까닭이다.


사람이 누가 산 속에 들어가 도 닦을 생각이 없으랴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애욕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비록 산에 들어가 마음은 닦지 못할 지라도 자신의 힘을 따라 선행을 버리지 말라. 세상의 욕락을 버리면 성현처럼 믿고 공경할 것이고 어려운 일을 참고 이기면 부처님과 같이 존경받을 것이다.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것은 악마의 권속이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은 법왕자의 아들이다.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 있는 사람의 거처할 곳이고 푸른 소나무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의 살아갈 곳이다. 주리면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를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갈증을 풀어라. 맛있는 음식을 먹어 어여삐 기를 지라도 이 몸은 결정 코 부서지고 부드러운 옷을 입어 수호 할지라도 명은 반드시 마침이 있다.


메아리 울리는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 우는 기러기를 마음의 벗으로 삼아라. 절하는 무릎이 얼음같이 시려도 불 생각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 듯 하여도 밥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된다. 백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일생이 얼마나 되는데 닦지 않고 놀기만 하겠느냐. 마음의 애욕 떠난 이를 사문이라 하고 세상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


이 글을 쓰신 원효스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즉 유심사상(唯心思想)을 널리 유포하신 분이십니다. 원효스님께서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길에 변방에서 하루 밤을 어떤 무덤 집(묘지)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손에 잡힌 바가지의 물을 달콤하게 마시고는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밝은 햇살아래서 지난밤에 마신 물그릇을 보니 해골바가지였습니다. 간밤에 해골 물을 마셨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장이 뒤틀려 구토를 하게 됩니다. 한참 구토를 하던 중 문득 ‘어제 밤에는 그렇게 달콤하게 마신 물이 지금 왜 구토를 느끼고 토해내는가? 어제의 마음은 무엇이고 지금의 마음은 무엇인가? 이처럼 더럽다 깨끗하다고 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마음은 한마음인데 무엇이 이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이 자신을 엄습하자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스님은 중국유학을 접고 의상스님과 헤어져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들 살림살이가 모두 이와 같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 마음의 평화는 욕심을 버리고 고행한 덕분에 생멸하는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을 얻는 것이고, 중생이 근심걱정 속에서 맴도는 것은 탐욕심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번뇌(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죽어서 천상에 가지 못하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는 욕심으로 오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강물에 따라 깊이가 다르듯 사람의 마음에도 깊이가 있습니다.
깊은 마음을 갖고자하면 고요히 참선하고 기도하십시오. 참선하고 기도하는 마음은 자기성찰과 함께 망상을 걷어내고 깊은 내면속으로 스스로를 인도합니다. 깊은 내면  속에서 자기모습을 바라보세요. 저는 가끔 내면에서 누군가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나태해졌을 때 들리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내가 정신을 차렸기에 나를 깨우는 소리이지만 스스로 정신을 못 차릴 때는 누구도 나를 깨워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작업은 고독한 일입니다.
고독은 위대한 천재의 친구라고 합니다. 수행자는 철저하게 고독에서 우뚝서야합니다. 고독하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철저히 외로워야하고 철저히 힘들어야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수행을 함으로써 수양(修養)이 되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말을 끊고 내면 깊숙이 천착해 들어가는 것은 마음의 심부(深部)에 도달하기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같이 있으되 홀로 하여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 ‘우리들에게 격랑의 파도가 있는데, 바다에 가면 욕망의 파도를 이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 표면에 일어나는 일들에 끄달리기 때문에 우리는 조그만 상처나 통증에도 온통 마음을 빼앗깁니다. 마음의 상처보다 외부의 조그만 하나의 상처인 사소한 일에도 걱정되고 편안해질 수 없습니다. 표면에 너무 치우치다보니 깊은 곳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깊이가 있으면 남들의 이야기에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일 뿐입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남들이 던지는 한마디에 스스로 걸려들고 맙니다. 참선이나 명상은 고요히 자신을 지켜보는 시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요히 앉음 속에서 보석을 캐어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5분 앉으면 5분 부처요, 10분 앉으면 10분 부처가 됩니다. 좌선하고 기도하는 순간은 비록 망상과 싸울지라도 사악한 마음은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 순간은 부처의 마음을 만들어가고 지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우리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자유롭다고 합니다. 밖에서 많은 것을 끌어들이려하는 것 보다 마음의 풍요를 안은 자가 행복한 것입니다. 마음이 풍요로운 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마음이 빈곤하면 자꾸만 남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가 충일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같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깊을수록 신심이 더욱 커지고 업장소멸도 됩니다. 마음에 깊이가 깊어갈수록 병도 나지 않습니다. 얄팍한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자주 아파합니다. 병이란 외부의 대상과 갈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만사가 태평합니다. 그야말로 무사무병(無事無病)입니다.


속담에 중(衆)이 고기맛을 알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맛이란 무엇입니까? 낚시꾼은 손맛이, 노름꾼은 판맛이 있어야 한답니다. 무엇인가 맛을 본 사람은 그것에 중독이 되게 마련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맛을 느끼기 시작하면 아무리 말려도 그 일을 그만두려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법희선열을 느끼고 그 맛을 아는 순간부터 동정일여(動靜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에 이르게 됩니다. 스님들의 참선수행도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고 또 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보아도 들어도 의문이 생기지 않으면 학습에 진도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좌복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참선하는 사람이 화두에 의문이 걸리지 않으면 참선이 되지 않습니다. 공부는 의문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 생길 때 비롯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기도의 탄력, 흔히 말하는 기돗발을 받아야만 기도의 맛을 알게 되고, 이러한 기도 맛을 본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무엇엔가 맛을 느끼려면 처음에 노력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고통을 이기고 맛을 알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지극한 즐거움 속에서 지내게 되지요. 그러므로 수행은 고통이 아니라 그대로 극락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행과 기도의 맛을 느끼면 수행은 더욱 깊어지고 종내에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과 기도를 하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없고 오로지 지극정성이 있을 뿐입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이 망상을 깨트리고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수행은 단번에 해치우는 단거리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처럼 꾸준히 달리는 완주를 요하는 것입니다. 백일기도 등 일정을 정하여 놓고 기도에 임했으면 끝가지 여일하게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함에 있어 유의해야할 사항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기간에는 부부지간에도 다투지 마십시오.
다툰 마음속에는 미움이 남아있기에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기도기간에는 모임에 가지 마십시오.
모임에 가면 자연히 남의 말을 하게 되고 또 남과 비교하게 되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마음이 흩어지게 됩니다.

셋째, 기도기간에는 새로운 일을 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일을 벌리면 그곳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기도에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넷째, 잠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자십시오.
잠이 부족하면 피곤해서 기도에 불참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수면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집중을 용이하게 해줍니다.

다섯째, 기도를 하기 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여놓고 기도에 임하십시오.
가정의 어머니로써 어머니의 역할을 해놓지 않고 기도한다면 그 사람은 기도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아내로써 남편으로써 또는 부모로써 자기 몫을 다해놓고 기도에 임하셔야합니다. 그러면 생활도 단조로워지고 기도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가 잘되고 잘 이루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여섯째, 기도가 몸에 익으면 가급적 잠을 줄이고 기도하는 시간을 늘리세요.
기도가 탄력을 받으면 정신집중이 훨씬 용이하여 집니다.

끝으로, 눈과 귀를 막으십시오.
기도할 때는 눈과 귀를 막아야 합니다. 기도기간 중에는 TV를 보지 마시고 전화기 사용을 하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곳에 눈이나 귀를 어지럽게 하는 일을 삼가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는데 공해가 될 뿐입니다.


기도는 오로지 한마음으로 순일하게 해야 합니다.
기도에 왕도는 없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정진하고 또 정진하십시오. 마음은 본래 무일물(無一物)이라고도 하는데 무일물(無一物)중에 만유(萬有)가 있습니다. 바다 같은 넓은 마음이 무진장(無盡藏)한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사신다면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넓어지고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탐(貪),진(瞋),치(癡), 삼독심(三毒心)을 놓아버리세요. 놓아버리는 연습을 거듭하고 거듭하는 작업 속에서 마음을 조복 받을 수 있습니다. 거듭되는 행과 실천을 통해서 마음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신심은 베품과 닦음으로써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비심과 보시, 정진을 통한 닦음으로써 참된 신심에 이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 불퇴전의 믿음이야말로 일을 성취시키고 나를 성장시켜줍니다.


이 무더운 여름은 여러분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굳이 여름 더위를 잡으려 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물러가기 마련입니다. 덥다고 하지 마시고 더위와 여러분이 하나 되는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마음, 선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진하다보면 더위는 어느새 지나가버립니다. 이 8월의 무더위를 슬기롭게 극복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길상사 홈 (http://www.kilsang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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