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간절히 화두 들어라 - 무여스님

마음정원(寂光) 2007. 11. 11. 23:39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간절히 화두 들어라***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심하는 것이 선의 시작이라 한다면 수행을 잘 해서 깨달음을 얻어 생사를 초탈자재하는 것은 선의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저 허공에 떠도는 구름이 일었다 흩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은 지, 수, 화, 풍 사대가 일시적으로 계합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인연으로 생긴 것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제행무상 생자필멸’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생멸법입니다. 생멸법을 넘어 초탈자재한 사람이 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삼매경지를 지나 언어도단 신행초멸, 말길이 끊기고 마음작용이 멸하는 그곳에 도달해야 참으로 생사를 초탈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는 천하 사람의 혓바닥을 끊는 곳이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체득하면 초탈자재한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함입니다. 그 간절함은 발심에서 나옵니다. 발심은 발보리심의 준말입니다. 보리, 즉 견성성불을 지금 해 마치겠다는 마음을 내어야만 합니다. ‘발심 있는 곳에 화두 있고 화두 있는 곳에 발심 있다’ 했습니다. 즉 발심만 하면 화두는 된다는 겁니다. 옛 선사들은 간절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며칠 굶은 사람이 밥 생각 하듯이, 노파가 집 나간 아들을 생각하듯이 화두를 들라 했습니다. 이렇게 화두를 간절하게 들면 선악의 망상도 떠나게 되고, 해태와 방일도 있을 수 없으며,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고 의단독로가 생깁니다. 그래서 참선인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화두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화두 이외에 어떤 것에도 관심과 흥미를 갖지 말고 오직 화두에 전력을 투구해야 합니다. 꿈을 꾸어도 화두참선 꿈을 꾸고, 망상을 피워도 화두 망상을 피워야 합니다. 또한 어떤 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화두를 먼저 챙겨야 합니다. 가령 물에 빠졌을 때도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라도 나오려고 허우적거리겠지만 참선인은 화두가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챙겨야 합니다. 선정도 오매일여의 선정에 들어야 합니다. 오매일여에 이르면 은산철벽이 가로막지만 그것도 뚫어야 합니다. 백척간두서 진일보 하듯이 더욱 지극히 애써서 화두를 들어야 생사를 해탈할 수 있습니다. 생사를 마음대로 하고 뛰어넘는다는 말은 우리 선가에서만 쓸 수 있는 대단한 말입니다. 불교의 이상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생사의 굴레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사 중에서 최초로 신비한 모습으로 입적한 사람은 선종의 삼조 승찬 대사라고 합니다. 승찬 대사는 수많은 대중이 모인 가운데 법회를 열고는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큰 나무 밑에서 가서 합장을 하고 그대로 가셨습니다. 당나라 관개지안 선사는 낮에 점심공양을 드시고 시자하고 차 공양을 하면서 옛날 사람들의 임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스님은 앉아서 가는 것도 얘기할 것이 없고, 서서 가는 것도 신기할 것 없으니, 어떻게 가는 것이 좋겠냐 하더니만 벌떡 일어나서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일곱 발자국을 걷고는 그대로 서 계셨습니다 시자가 그만 앉으라고 하며 살펴보니 벌써 가셨다는 겁니다. 당나라 운봉 스님은 여러 스님들 하고 과거의 스님들 가신 모습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는 특별하게 가고 싶다는 겁니다. 어떤 분이 물구나무서서 가는 것이 특별할 것이라 말하자 운봉 스님은 곧바로 일어서서 물구나무를 서고는 곧바로 가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장삼을 입고 거꾸로 섰는데 장삼 자락이 조금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사람들 중 한 여승이 시신 앞에 가더니 “이 무슨 꼴입니까. 살아계실 때에도 그렇게 괴각질을 하더니 돌아가셔도 이 모양이냐”며 막 호통을 치면서 슬쩍 건드리니까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더라는 겁니다. 그럴 정도로 생사를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런 죽음 앞에서 슬픔이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죽음도 미학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임제 스님 당시 늘 요령을 흔들며 다녔던 보화 중자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요령을 흔들며 옷 한 벌 해달라는 색다른 요구를 대중들에 했습니다. 유명한 스님이고 칭찬이 자자했던 분이라 신도님들이 앞 다투며 옷을 해드렸으나 모두 거절하시는 겁니다. 이 소식을 든 임제 선사가 바로 관을 하나 짜서 보내니 “참 좋은 옷을 얻었다”며 춤을 추었습니다. 스님은 곧 동문에서 죽겠다며 동문으로 향했습니다. 동문 앞에 관을 놓고는 주위를 보니 대중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는 겁니다. 스님은 “오늘은 날짜가 안 좋으니 내일 서문에서 죽겠다”며 입적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서문에는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스님은 “날씨가 안 좋다”며 내일 다시 북문에서 죽겠다며 또 연기했습니다. 대중들은 불평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북문에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스님은 그날도 안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문에 가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스님은 손수 관 뚜껑을 열고 들어갔고 그 때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못을 쳐달라고 부탁하고는 돌아가셨습니다. 그 얘기가 파다하게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 관을 열어 보자며 관을 열었는데 스님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때 공중에서 ‘딸랑딸랑’ 요령 흔드는 소리가 나더라는 겁니다. 모두 그 공중을 쳐다보니 아주 큰 빛이 밝게 비추더니 사라졌다는 겁니다. 옛 선사들은 이처럼 생사문제를 아주 자유자재로 했습니다. 선가에서는 죽음을 옷 갈아입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옷을 입다가 낡아지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이 몸뚱이도 늙고 병들면 새 몸으로 바꿀 뿐입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죽음은 오온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는 것”이라 했고 조선시대 기화스님은 “부스럼 딱지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직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상하다. 지금 내가 건강한 몸이지만 무상하여 변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속히 생사의 불구덩이해서 벗어나기를 구해라. 이것이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평생을 수행해 온 선승들은 입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맞이합니다. 여러분도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열반의 기쁨을 꼭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부처라는 것을 확고히 믿고 간절하게 화두를 드십시오.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부산 지사=주영미 기자/법보신문 무여 스님은 무여 스님은 1940년 경북 김천 출생으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상원사,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40여 년 동안 안거 한 스님은 1987년 이후 지금까지 경북 봉화 축서사에 주석하며 불자들을 선문으로 이끌고 있다. 칠불사, 망월사 선원장을 역임한 스님은 현재 봉화 축서사 선원장과 조계종 기초선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마음의 향기/니르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