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의 향기

[스크랩] 수행엔 높낮이 없으니 분별심부터 버려라 - 철오스님/선학원중앙선원장

마음정원(寂光) 2007. 8. 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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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한 가운데 있는 선학원을 찾았다. 선학원은 조계종의 산실이요, 일제 때 반일독립사상의 기초가 되는 스님들이 모여 활동하였던 곳이다. 정화운동을 벌일 때도 중심이 되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한국 선을 풍미했던 큰스님들이 여기서 모여서 살았으니, 이곳 법당에 들어서면 새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오염되지 않은 사천에서 살다가 서울에 오신지 4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공기가 탁하여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다면서 철오 스님은 차를 권하였다.

스님은 중앙선원장에 취임한 후 사찰재정운영을 신도들에게 모두 맡겼다. “원장에 취임, 인수인계하는 자리에서 신도들을 불러놓고 장부를 모두 공개하였고, 신도들의 서명도 받아 놓았어요.”스님이 소임을 맡은 동안에는 사찰의 재정은 사무장과 신도들이 하고 철오 스님은 감독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남방불교 국가에서 하는 것처럼 수행자로서 돈에 대해서는 일체 관리를 하지 않고 신도들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가 자주 소개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위빠사나와 간화선의 차이점을 물었다.

“위빠사나는 통찰지인데, 법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해서 보는 것이 위빠사나이며, 불교수행의 시작은 사띠수행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띠에 의해서 위빠사나가 이루어지고 선정(사마타)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마음은 모양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양이 없는 것까지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 대상을 챙겨서 보는 것이 위빠사나입니다. 간화선은 화두라는 의문을 던져서 모든 생각과 관념을 멈추고서 화두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즉 화두란 부처님이 깨친 위빠사나의 직관과 같은 것입니다.”

선학원 선원장 소임을 맡았으니 간화선을 최상승이라고 말할 것 같았는데 철오 스님은 “모든 수행에는 높낮이가 없다.”고 하였다. 자기 근기에 맞아 깨달으면 그것이 최상승법이지, 깨닫지 못했을 때는 어떤 것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어떤 것이 최상승이다 아니다 라고 편 가르고 분별하기 좋아하는 우리를 두고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였다.

“분별하지마라는 것은 사물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분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분별지 차별지를 통해서 사물을 보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어떤 상대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내 견해를 앞세우고, 내 판단과 내 정서를 앞세워서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분별심이지요. 사람들은 자기의 구미에 맞으면 좋아하고 나와 견해가 다르거나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때는 싫어합니다. 이것이 바로 분별심이지요.”

견해를 일으킨 내가 실제로 없는 것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분별심 없는 것이란다. 이것은 바로 무아를 여실히 깨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분별심이 아니며, 어쨌든 이것도 수행하지 않으면 증득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철오 스님은 머리를 깎을 때 한 가지 원이 있었다. “250개의 계율을 제대로 지키는 비구가 되고 싶었어요. 지키지 못할 법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중노릇하면서 계율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기에, 50대에 와서는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그 마음을 버렸어요. 계를 지킨다는 그 마음을 버리니 오히려 계율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계 없는 수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계를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만 수행자의 삶은 계율에서 옵니다.”

철오 스님은 신도들이 기도를 부탁하면 ‘오계는 생활의 신조이기 때문에 기도 중에는 꼭 오계를 지켜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낸다고 한다.

옹골찬 마음으로 출가를 했지만 공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선방에서 참선을 해도 공부가 잘 되지 않아 고성 운흥사에서 기도를 하였다. 운흥사 영산전에서 능엄주 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흔히들 능엄주 십만 독만 하면 수능엄삼매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때 나에게 있어서는 무조건 선지식을 친견하는 것이 급선무였지요. 3주째 접어들었을 때 능엄주 독송을 하고 나오니 온통 눈앞에 능엄주 천지로 보였어요. 밥알 하나하나 마다 능엄주가 들어있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해서 21일 동안 능엄주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그때서야 능엄주가 걷히고 산천의 푸릇푸릇함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기도를 마쳤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선지식을 만날 방법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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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갈 곳도 없고 해서 청년회시절부터 쫓아다니며 법문을 들었던 삼묵 노스님이 생각나서 찾아갔다. 삼묵 노스님이 머무는 진해 진흥사에 갔더니 저녁 공양 때가 되었다. 그런데 공양상에 큼직한 바다 꽃게가 된장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오신채를 일절 먹지 않았기 때문에 철우스님은 깜짝 놀랐다. 철오 스님의 경직된 모습을 본 삼묵 스님은 게송 한 구절을 읊어주었다.

명명무오법 오법각미인 무위역무진 장사양각수(明明無悟法悟法却迷人 無爲亦無眞長舒兩脚睡) 밝고 밝아서 깨칠 법이 없도다/ 깨칠 법이 오히려 미한 사람을 더욱 미욱하게 하네/ 깨칠 일도 없고 역시 깨칠 도리도 없으니/두 다리 죽 뻗고 낮잠이나 자자.
이 게송을 듣자마자 마치 어둠 속에 있던 두 눈이 환하게 밝아지듯이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세상의 선지식들에게 속지 않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철오 스님은 올바른 신심으로 마음을 제대로 챙긴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선지식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 법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것이 바로 법이다. 법을 보려면 지금 내가 이끌리고 있는 것, 집착하고 있는 것을 놓아야만 가능하다. 자기 자신을 바로 봐 버리면 세상도 그대로 환하게 보이게 된다는 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철오 스님은
철오 스님은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삼묵 스님에게 육조단경을 배우러 다녔던 것이 출가의 계기가 되었다.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출가해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선우도량 공동대표를 맡아 선우논강 법석을 개설하여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스님은 함양 법인사에서 어린이 법회를 지도하며, 대한불교 어린이 지도자연회창단을 만들었다. 어린이 포교에 남다른 원력을 세워 1988년 포교대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에는 포교대상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금은 선우도량 공동대표이며, 선학원 중앙선원장이다.

 

출처 : 산사의 풍경소리
글쓴이 : 寂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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