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스크랩] 생일날

마음정원(寂光) 2007. 3. 30. 06:34




 
 
                                      

                                                 생일날  

 

                                                                             승헌

 

                                                                                                                                            

                                                                                                

 오늘은 병원에 물리치료 가는 날이라 아침부터 바쁘다. 작년 5월, 설악산 봉정암에서 다친 무릎이 아직 안 좋아서

요즘 오전에는 병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바쁘게 병원에 갈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받았더니 시골에

계시는 은사스님께서 하신 전화였다.


미역국은 먹었니?

아뇨, 아직...

통장에 돈 조금 부쳤다.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어야지.

네, 감사 합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야. 다리치료 열심히 하고...

네.


 은사스님과 내가 서로 통화한 내용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보고형이 아닌 나는 간혹 걸려오는 은사스님과의 대화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승가에서

은사스님은 부모님 같은 존재다. 출가해서 스승을 정해 삭발염의하면 이제 속가의 부모님은 남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스님들은 출가와 동시에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고 불가의 인연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 생일날이라고 멀리 청도에 계시는 은사스님께서 아침 일찍 전화를 주신 거였다.

내가 내 생일이라고 무슨 미역국을 끓일까마는(아마 스님도 내가 미역국을 안 끓인다는 걸 알 것이다) 더욱이 출가한

스님이 무슨 생일이 중요하다고 형식적인 격식을 차리겠는가?

그런데 은사스님의 마음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상좌 생일이라고 용돈을 부치고 축하 전화를 하시는 게 꼭 세속의

부모님이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을 생각하는 그 마음 같이 느껴진다. 농사일이며 법당일이며 늘 눈만 뜨면 일이 많은

시골 절에서 공양주도 없이 손수 많은 일을 하시며 구순 노스님을 모시고 사시는 은사 스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은사스님 절에도 공양주가 없는데 우리 절에 공양주가 있다는 게 내겐 과분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월급을 많이 줘도 공양주 보살님 구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다는 얘길 도반스님들로부터 들은터라 나도 별로

생각은 않고 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공양주 보살님께 드려야할 비싼 임금을 생각하면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리라. 그러니 우리 절에 공양주가 없어서 무엇이든 내가 손 수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기법회나 행사가 있는 날은 신도들이 와서 청소도 하고 공양 준비도 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혼자서 생활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좀 귀찮기도 하고 해서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평소에도 때맞춰 잘 안 먹는 사람이 내 생일날이라고 뭐 달라지기야 하겠냐마는 왠지 오늘 아침은 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도 나이 탓이거니 생각하며 아침을 먹지 않은 빈속으로 병원에 다녀왔더니 어느 듯 점심때가 되었다. 아침을 굶어서인지

배도 약간 고프기도 했지만 병원에 환자가 많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의사 선생님의 진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나오니 기운이 없었다.

힘없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올라와 문을 밀치고 들어오니 신도들이 많이 와 있었다.

거기다 한상 가득 정갈한 음식을 차려놓은 식탁위에는 갖가지 떡을 올려 만든 대형 떡 케익과 백합과 장미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꽃바구니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일어서서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

사랑하는 우리스님 생신 축하 합니다.


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상 앞에 앉아있는 나는 쑥스러워 죽겠는데 신도들은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니 고맙기도 하고 좀 어색하기도 하다. 다들 언제 알고 깔끔하고 정성스러운 생일상을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절 불자들의 따뜻한 마음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혼자 사는 스님들도 때로는 이렇게 중생심의 자리에

머물고 싶은지....

이제 겨울도 저만큼 떠나고 봄볕이 따사로운 한낮, 신도들과 함께 어울려 맛있고 푸짐한 점심공양을 하며 모처럼 환하게 웃어본다.          

출처 : 불교명상음악과 염불
글쓴이 : 승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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